
우리네 삶은 어쩌면 체면과 형식으로 점철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이 이야기하였던 페르소나인 가면을 쓰고 살고 있나 봅니다. 융은 '사람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며 여기서 그림자와 같은 페르소나는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이며 자아의 어두운 면'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자아의 어두운 면을 숨기려 그리도 열심히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우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그의 실체에는 관심이 없고 그의 페르소나만 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핸드폰 전화번호부에 수많은 사람의 연락처가 있습니다. 수백에서 수천 명의 전화번호가 있을 것입니다. 그중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또 우리는 그의 실체를 알려고 노력이나 하고 살까요.
이틀 전 아주 자주 만나는 분으로부터 이런 문자가 왔습니다. '행복마루가 기업컨설팅 & 점검 진단도 하나요?' 저와 십수 년 된 사이이고 매주 미술공부를 같이하고 있고 한 달에 한 번씩 골프도 치는 사이입니다. 부부간에도 얼마 전에 같이 만났습니다. 그런 분이 제가 하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카톡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그분이 으레 제가 하는 일을 잘 알고 계시려니 생각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 행복마루 컨설팅과 관련된 기사를 두 개 보내드렸습니다. 몇 시간 후 그분으로부터 온 카톡은 이렇게 시작하였습니다. "행복마루 컨설팅이 위 기사와 같은 일을 하는 줄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를 너무도 잘 아는 분이 저희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다른 분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사실 회사 경영을 하면서 홍보니 마케팅이나 광고니 하는 주제로 늘 회의도 하고 고민도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 주위에 있는 분들이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른다면 그것은 그분들의 잘못이 아니라 제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돌이켜 생각하면 어떤 기회가 되어 제가 하는 일을 설명해 드리면 "조 대표가 그런 일을 하는지 잘 몰랐어요."라는 말씀을 한 분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숨긴 적도 가장한 적도 없습니다. 늘 열심히 이야기하고 홍보한 편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결과는 제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저도 그분들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분들 회사를 방문한 적도 없고 그분들이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서 서로 잘 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가정, 일터 등에는 관심이 없고 그와 같이 어울리는 시간과 공간에만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사실 우리의 진짜 모습은 가정과 일터에서 드러납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가정을 방문하는 일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예전에는 집들이라 하여 결혼을 하거나 새로 집을 마련하면 친구들이 찾아가 저녁도 얻어먹고 밤새 고스톱도 치곤 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그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그와 더 가까워졌습니다. 우리는 페이스북을 통해 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그]와 만나지만 [그]와 만난 것은 [그]의 사진일 뿐 [그]는 만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금년 초봄 친한 친구의 초대를 받아 그가 학장으로 있는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신입생들을 상대로 강의할 일이 있었습니다. 제 딴에는 재미있게 강의한다고 하였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별로였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그 친구가 아이들에게 제 강의에 대해 간단한 리뷰를 하고 다음 일정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평소 제가 잘 알던 그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맛깔스럽게 이야기하고 아이들로부터 까르르하는 웃음을 이끌어 내는 그의 솜씨는 달인의 경지에 있었습니다. 대학교수를 오랫동안 하였으니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무슨 비결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어 물었습니다.
"교수가 되고 몇 년이 되었을 때 대학원생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한 학생이 어렵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교수님은 너무 야단을 많이 치세요. 한 번도 칭찬을 하지 않으세요.' 나는 그때 충격을 받았지. 그 후로 어떻게 하면 칭찬할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지내고 있지. 아마 오늘 어린 신입생들과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일 거야."
그 친구는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고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멤버이고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이인데 사실 저는 그의 진면목은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그저 대학교수려니만 생각하였을 뿐입니다. 사실 저에게 각인되어 있는 그의 모습은 노래방에서의 그입니다. 오랫동안 그를 만났지만 저는 그의 [엔터테인먼트 페르소나]와 만 만나고 살았던 것입니다. [교수 페르소나]는 이제야 만나 본 것입니다.
저는 [어떤 페르소나]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살고 있을까요. 골프 땜방 고민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페르소나], 그 [페르소나]보다는 제 민낯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저도 그의 민낯이 보고 싶구요. 그래야 진정한 의미에서 친하고 오랜 사이라는 의미의 친구(親舊)가 되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