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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소소한 일상] 짧은 머리에 문신 눈썹
[조근호의 소소한 일상] 짧은 머리에 문신 눈썹
  •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 승인 2018.09.03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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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후배들 중에 머리를 삭발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민머리, 빡빡이 등등으로 불리는 머리 형태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입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는 대표적인 민머리 족입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민머리라 그를 떠 올리면 다른 모습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그에게 왜 민머리를 하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 이것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크리에이티브(창조적)한 사람은 특징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가 길거나 수염이 있거나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을 다닐 때 머리를 밀고 수염을 기른 뒤 프레젠테이션을 했더니 고객들이 제 외모만 보고 '디자인 잘하게 생겼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로 쭉 이런 외모를 유지했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자신의 직업 특성을 인상에 심는 방법으로 민머리를 택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민머리를 한 예술인들이 꽤 많습니다. 연예인들도 많고요. 제 기억 속에 최초의 민머리는 스님이 아니라 '율 브리너'라는 영화배우였습니다. 강인하고 잘생긴 그는 늘 민머리였습니다. 정말 멋있었지요. 그래서 제 기억 속에 '민머리는 멋있다'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김봉진 대표와 함께 하는 모임에 또 한 명의 민머리가 탄생하였습니다. 아라리오뮤지엄의 김지완 관장이 어느 날 머리를 빡빡 밀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모임의 막내라 늘 조용히 선배들 이야기를 듣고 가는 친구였습니다. 모임 내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가 삭발하고 민머리로 나타나자 존재감이 극대화되었습니다.
특히 김봉진 대표와 두 사람이 같은 민머리라 선배들이 농담으로 "둘이 옆에 나란히 앉지 마라. 눈이 부시다. 쌍라이트네."하고 놀려댔습니다. 미술관 관장을 하는 그로서는 무엇인가 엣지있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착하고 순한 그의 인상에 무엇인가 하나가 덧붙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민머리가 덧붙여진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아무 말을 하고 있지 않아도 예술가 같고, 창조적으로 느껴지고 무엇인가 내면에 단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머리가 크고 두상이 동글동글하여 민머리가 자신의 원래 머리인 양 잘 어울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 관장을 볼 때마다 "삭발 정말 잘했네. 그 머리 스타일 꼭 고수해요."하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이처럼 삭발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이미지를 줍니다. 그 때문에 국내외 연예인들이 자신의 특징을 가지기 위해 민머리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특정 영화에서 특별한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삭발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의 세상에서는 저항의 표시로 삭발을 하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그 어느 경우나 원래의 인상에 강인함을 덧붙여 줍니다.
저는 후배들의 민머리를 볼 때마다 "언젠가 나도 삭발을 해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아내에게 이야기를 꺼냈다가 핀잔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평생 똑같이 2:8 공무원 머리를 하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지만 오랜 공무원 생활에서 대부분 검사들이 하는 머리 모양을 따라 한 것이 오늘날의 헤어스타일이 된 것입니다.
사실 자신의 인상이라는 것이 어느 날 나는 내 인상을 이렇게 만들겠다고 결심을 하고 만드는 경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오랜 세월 그저 그렇게 흘러가다 굳어진 것이 더 많을 것입니다. 가르마 하나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인상인데 내 마음대로 하고 살기가 쉽지 않은 듯합니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에 삭발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 말고 수염은 또 어떤가요. 여행 중에 며칠 수염을 미처 못 깎은 기억이 있습니다. 왠지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수염도 외국 사람들은 패션의 하나로 멋있게 하고 다닙니다. 사실 우리 선조들께서는 수염 패션의 지존이었습니다.
'에헴'이라는 의성어를 연상하면 갓 쓰고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이 저절로 연상이 됩니다. 그런 선조를 둔 우리들은 수염에 대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수염을 기른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본인들은 자숙의 의미로 수염을 기른 것 같았으나 여론은 의외로 부정적이었습니다. 수염 때문에 손해를 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수성 전 총리, 영화배우 신성일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수염을 멋지게 기른 사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수염의 상징은 여러 가지인 것 같습니다. 거친 남성을 표현하기도 하고 고생과 고뇌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배우들이 영화에서 수염을 길러 자신의 이미지를 변신하곤 하지요. 특히 미소년 배우들이 자신의 유약한 이미지를 거친 이미지로 변신하기 위해 많이 사용하지요.
우리는 평생 살면서 민머리와 수염에 도전해 볼 수 있을까요. 굳이 관상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의 이미지를 자신이 고민하여 자신이 선택해 볼 수 있을까요. 평생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이 만들어낸 평균의 이미지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요. '중년의 한국 사람'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에서 탈출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작은 탈출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미 저의 모습을 보신 분들은 "조 대표 인상이 무엇인가 달라졌어요."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저의 인상이 바뀐 것입니다. 60년을 하고 살았던 인상을 바꾸어 본 것입니다. 저에게 잘 맞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꾸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제 이미지를 제 의지로 바꾼 것입니다.
두 가지를 하였습니다. 첫째는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차마 머리를 밀지는 못하고 밀고 싶은 심정을 담아 짧게 잘랐습니다. 그것도 정확하게 말하면 제 의지는 아니었고 주위에서 미용실을 소개해 주면서까지 헤어스타일을 바꾸라는 통에 어찌어찌해서 머리를 짧게 잘랐습니다. 두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어색합니다.
두 번째는 눈썹을 문신하였습니다. 저는 원래 눈썹이 반쪽밖에 없었습니다. 몇 년 전 같이 근무하는 변호사가 "눈썹 문신을 하시면 훨씬 인상이 좋아지실 겁니다."라고 이야기하였지만 별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귓전으로 흘려들었는데 늘 머리에 그 소리가 뱅뱅거렸습니다.
두 달 전쯤 딸아이가 눈썹 문신을 하였다면 엄마 아빠도 해보라고 권하기에 엉겁결에 "그래."하고 답한 것이 눈썹 문신을 하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수염을 기를 용기는 없어 작은 버전의 변신을 한 것이지요.
짧은 머리와 눈썹 문신. 저에게 어떤 이미지 변화를 가져다주었을까요. 젊음과 강인함입니다. 만족합니다. 검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져다 주는 인상에서 조금은 일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일탈하여 탈출하려면 삭발하고 수염을 길러야겠지요. 언젠가 저에게 그런 날이 올까요. 일상을 탈출하고 싶을 때마다 그리워할 것입니다.

민머리에 수염을 기른 채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모습. 중년 남자의 로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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