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ㆍ충청지역의 지역경제가 썩 좋지 않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문제는, 경기전망치가 오늘과 마찬가지로 내일도 어둡다는 점일 것이다. 실제로, 대전지역 경기전망 실사지수(BSI)만 봐도 그렇다. 최근 대전상공회의소가 지역 제조업체 300개사를 대상으로 ‘2019년 3/4분기 기업경기 전망’을 조사한 결과, 기업경기실사지수가 기준치(100)에 못 미친 '71'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지수 '71'이면 보통 나쁜 것이 아님은 금새 알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일은, 이러한 지역 경기상황을 타개할 '큰 활력소'가 나타나야 할텐데, 우리 지역에서 그같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보도를 통해 알고 있는 바이지만, 지난 2월 광주시가 정부와 대기업 등 3자가 뜻을 모아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출범시킨다는 소식은 그저 귀여겨듣기에 충분했을 정도가 아니라 지역민들에게는 충격적인 얘기였다. 이를 출범시킨 배경에, 광주시가 '좋은 지역 일자리' 창출을 위해 얼마나 고심하며 발로 뛰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평가할 만하다. 광주시가 빛그린산업단지 내에 자동차 생산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현대차가 지난해 5월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설립단계로 이행될 수 있었다. 광주시와 현대차가 각 7000억원을 투입해 이 산업단지내 62만평방미터 부지에 1000cc 미만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연간 10만대 양산하는 합작법인을 설립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장 설립시 정규직 근로자 1000여명, 간접고용까지 합하면 1만2000명까지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그것도 초임 연봉 3500만원대의 대부분 고임금 일자리다. 다만 고용되는 근로자의 임금은 자동차 업계 평균임금의 절반 수준만 지급하는 대신 각종 후생 복지 비용으로 소득 부족분을 지원하게 되는데, 이 부분을 정부와 광주시가 맡는 식이다.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부터의 지역 경제 유발효과는 또 얼마나 크겠는가. 대도시 경제 하나쯤은 크게 요동칠 법하다.
그런데 이는 이미 지난 2014년 윤장현 전 시장이 '광주형 좋은 일자리 1만개 창출'이라는 공약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어 광주시에 사회통합추진단을 신설해 전담케 하고, 지난 2017년 노사민정 22개 기관이 참여해 광주형 일자리 기초 협약을 체결하는 등 노력을 배가시켜왔던 것이 꽃을 피우며 현대와 노동계 직접대화를 통해 결실을 맺은 셈이다. 지역의 단체장이나 지역 정치인이 허투루 공약한 것이 아닌, 진정으로 지역을 위해 고심한 바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아주 독창적인 것은 아니란 지적도 있다. 독일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의 '아우토 5000' 프로젝트를 벤치마킹한 것인데, 지난 2001년 경기침체로 자동차 생산량이 급감한 폭스바겐이 자회사 형태로 자본을 투자해 당시 자동차 생산직의 80% 수준의 월급으로 5000명의 일자리를 만든데서 착안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한 광주시가 기존에 자동차 산업이 발달한 기반 위에서 그같은 일자리 사업 추진이 용이했다는 점은 십분 이해가 간다.
같은 규모의 도시임에도 대전의 그것을 굳이 비교하고 싶진 않지만 대전의 소위 '대전형 일자리'가 초라하기 그지없다. 대전시가 지난해 대전형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일자리 ‘두 드림(Do Dream)’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했던 것인데, 굳이 설명하자면 이는 ‘파트타임형’,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제3섹터형’ 사업으로 3개월 동안 장기미취업자와 생계곤란자 등 취업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운영했던 것에 불과하다. 대전시가 2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던 것도 초라할 뿐아니라 예산도 10억원에 그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그로부터 한 달쯤 뒤 대전시와 대전테크노파크가 과학기술분야 대전형 일자리 창출사업에 참여할 기업과 이공계 청년 및 고경력 과학기술인을 모집한다고 공고낸 것까지는 보도가 됐으나 이후 얼마나 성과를 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니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법하다.
그런데 각 지자체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피나는 노력은 광주만이 아니다. 24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당 중진 등이 참여한 확대간부회의 자리에서 "오늘은 반가운 소식을 먼저 전해 드리겠다"고 운을 뗀 뒤, "광주형 일자리에 이어 노사민정이 함께 이룬 두 번째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인 ‘구미형 일자리 협약식’이 내일 개최된다"며 소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내에 ‘상생형일자리특위’까지 만들어 전폭적으로 지원해왔는데, 이번 합의로 지역경제에 큰 활력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는 얘기다.
구미형 일자리 사업은 알다시피 LG화학 노사, 경북도, 구미시 등이 합의하면서 이룬 개가다. 더욱이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로 각종 소재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을 받게 될터이니 더욱 시의적절히 맞아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배터리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는 구미형 일자리는 지자체가 각종 투자여건을 지원하는 투자촉진형 일자리다. 상생형 일자리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 구미형 일자리는 일자리창출 뿐만 아니라 해외의존도가 높은 첨단소재 ‧ 부품 국산화 클러스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만큼, 국가균형발전특별법과 세법개정 등 법적, 제도적인 지원을 당에서 아끼지 않도록 하겠다는 부분도 귀에 쏙 들어온다.
문재인 정부 초기 청와대에 일자리위원회를 두고,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 것이 그저 전시용 패널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없지 않았지만, 정부만 쳐다보고 있을 것도 아니었다. 좋은 일자리 창출은 지역 자치단체가 밤낮없이 고민하고 발로뛰어 창출해낼 수 있음을 앞서 광주와 구미시는 보여주는 것이라 해서 틀리지 않는다. 반면, 대전과 충남을 보자. 스케일부터가 다르지 않은가. 또한, 이제까지는 지역 현안이라 해서 정부의 혁신도시 지정에 목을 매며, 공기업 이전을 갈구하는 것으로 묻혀져온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 정치권 인사들도 그것으로 역할 했다고 큰 소리 치기에는 너무 초라한 행색이 아닐까.
노사, 그리고 지역자치단체와 기업이 만드는, 상생형 일자리사업은 타협과 상생을 통한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아간다고 한다. 좀 거창하게 말해 국민소득 4만불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의 모델이 될 것이란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지역민들로서는 그러한 지역일꾼, 지역 출신 정치인들을 보길 원한다. 뺏지 달고 중앙정치무대 활동한답시고 지역민들 살림 도외시하고, 가끔 지역구 관리한답시고 내려와 얼굴좀 비추곤 하는 정치인들의 고심은 도대체 어디있을까. 언제까지 남의 도시 성공사례에 부러워하기만 할 건가. 너무 자잘한 성과에 자화자찬식 보도자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정말 '뉴딜급'의, 지역 경제를 견인할 진정한 '큰 활력소'로서의 대전형 일자리사업, 충남형 일자리사업은 불가능하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