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애(西厓) 유성룡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깊은 이다. 역사는 반성이라고 외친 이가 바로 그다. 임진왜란때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그냥 있었던게 아니었다. 그가 충무공을 바로쓰고 적극 배려했기 때문이다. 충무공이 명장(名將)이라면, 그는 명신(名臣)이다.
그가 영의정때 일이다. 왜군의 침략이 심상찮아 조정에서는 훈련도감을 설치했다. 그러면서 조총(鳥銃)을 만들자는 논의가 한창였다. 그렇지만 조총의 만드는 기술은 물론 사용법도 아는 이가 없었다. 며칠이 걸려 그는 조총에 대해 배웠고, 사격술도 배워왔다.
수심이 가득찬 선조가 주재한 어느 날 회의에서 조총 얘기가 나왔다. 그는 ‘감히’ 임금이 딱 버티고 있는 어전에서 조총을 쏘는 흉내를 내면서 효용성을 설명했다. 그는 우유부단한 선조에게 국방의식을 강조하며, 임금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자 유성룡과 정적이자 라이벌인 응교 박동현이 반박하고 나섰다. “조선의 영의정이 주상전하 앞에서 친히 총쏘는 시늉까지하니 대신의 체통이 서겠느냐”고 꼬집었다. 유성룡은 회의가 끝나고 밖으로 나온 대신들에게 박동현을 칭찬했다.
유성룡은 온화했다. “박동현의 말이 참으로 옳다. 임금 앞에서 강직한 말을 하는 신하가 있으면 나라를 잃지 않는다. 떳떳하게 자리에 오른 자만이 떳떳하게 말한다. 박동현처럼 옳다 그르다를 분명히 말하는 이가 있는데 우리 조선은 반드시 중흥(中興)하지 않겠는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힘든 일에 직면하면 당태종 이세민의 ‘정관 정요’를 찾았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글이나, 백범일지, 그리고 ‘서애전집’을 꺼내 들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역시 링컨 전기나 서애 유성룡 선생의 전기를 감명깊게 읽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다음 달이면 출범한 지 1년이 된다. 현직 대통령 탄핵속에 궐위로 탄생된 정부다.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중에 내각을 꾸리는데만 195일이 걸렸다. 지각이라도 엄청난 지각이다. 김종필 총리 인준지연에 따른 출범 174일 만에 조각을 마친 DJ정부의 기록을 깬 최장기 지각 내각의 완성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잡음인사'는 여전하다. 임명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낙마'와 '위법결론'이 그렇다. 모든 언론과 야당이 그의 뇌물성외유와 셀프기부를 문제 삼았다. 청와대는 그제서야 그를 말끔히 정리하지 않은 채,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다. 선관위가 16일 저녁, 국회의원 재직때 5000만원 후원은 공직선거법위반이라고 해석했다. 야 4당이 그를 외유출장의혹으로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것과 맥락이 같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5월 10일 출범 후 국정 수행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김 원장 인선처럼 유독 인사에서 만큼은 잡음이 컸다. 그 중에도 인사청문회를 거쳐 물러난 이도 있고, 강행처리되어 임명된 경우도 있다. 물론 김 원장처럼 인사청문회없이 많은 이가 ‘부적격’시비가 이어졌다.
따져보니 낙마한 내정자들도 문재인 정부가 역대 제일 많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DJ정부 때인 2000년대 처음 도입됐다.어림잡아 보면 DJ정부에서 16명이 추천돼 2명이 낙마했고, 노무현정부에서는 81명의 지명자 중 3명이 낙마했다. 이명박 정부에선 113명 중 10명, 박근혜정부에선 98명중 9명이 물러났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33명이 추천돼 5명이 낙마했다.
낙마율을 보면 노무현 정부가 3.7%로 가장 낮았고, 이명박 정부 8.85%, 박근혜 정부 9.18%, 김대중 정부 12.5% 순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15.15%로 가장 높다. 문 대통령이 병역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인사검증 5대 기준을 제시해 검증했다는데도 이렇다.
금전적 부당이득, 권한남용, 거짓말, 음주운전, 이념 및 가치관 논란 등도 도마위에 올랐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작년 5월 10일 이낙연 전남지사를 총리 후보자로 첫 지명부터 말썽을 빚었다. 그의 국회임명동의안 절차는 순탄하지못했다.
언론 등 일각에서 위장전입과 아들의 병역면제, 부인 그림 강매 의혹 등을 지적했다. 야당은 한발 더나가 맹공을 가했고, 결국 이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은 지명 21일 만인 5월 31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불참속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총리 임명동의안의 '반쪽 통과'를 비롯해 조각구성까지 험난했다. 18명의 장관중 안경환·조대엽·박성진 후보자는 지명 후 검증 과정에서 낙마했다. 여기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4명은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채 임명됐다.
강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의혹과 자녀의 이중국적 문제 등으로 송 장관은 위장전입과 음주운전 무마 의혹, 고액 자문료 수수 문제 등으로 공분을 샀다. 홍 장관은 부인과 딸이 거액의 재산을 증여받은 것이 문제가 돼 '편법' 증여 논란이 불거졌다.
장관 후보 중 낙마자가 나오고,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채 장관으로 임명되자, 야권은 청와대의 인선검증라인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때 낸 '인사 5대 원칙'에서 후퇴한 것이라고 비판도 나왔다. 대선 때 병역 면탈·부동산 투기·탈세·위장 전입·논문 표절 등 5대 비리해당자는 고위 공직에서 배제할 것을 공약했다.
‘로비성 해외출장’의혹의 김 원장의 위법해석과 낙마가, 그래서 심각한 것이다. 여권에 우호적이던 정의당까지 야 4당이 사퇴 촉구를 떠나 청와대의 인선이 계속 말썽이니, 나라가 걱정이다. 내정된 장관 또는 청와대 참모들의 낙마와, 국회동의안 채택없이 임명, 지각하며 내각을 꾸린 일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김 원장 쪽이나, 청와대는 인수위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해 적임자 인선에 난맥상을 보였다고 해명한 것 뿐이다. 김 원장의 경우도 국회의원들의 피감기관 '스폰서 외유는 관행였다'고 말한다. 적폐, 즉 그릇된 관행을 고치겠다는 현 정부의 입장과는 배치되는 일이다. 보수진영이 ‘문재인 정부 공격용’으로 의혹을 키운다는 주장도 없지않다.
인사권자인 문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 인사의 기준은 궁극적으로 국민 눈높이가 될 수밖에 없다. 김 원장의 과거 행적만으로도 국민의 기대와 바람을 충족하지는 못한 것은 분명하다. 김 원장의 낙마는 너무 늦었다. 국민 눈높이에서, 잘못을 지적해 온 시민단체 출신인 그이기에 실망이 더 크다.
왜냐면, 김 원장 거취 문제는 임계점에 닿아서야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청와대다. 김 원장이 인선에 헛점이 있었다면 더 버티게 해선 안되었다. 이 ‘김기식 리스크’가 남북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까지 악재로 작용했다. 또 문 대통령에게 바르게 말하는 이도 없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김원장으로는 금융권 적폐청산이 불가능하다’고 직언했어야 옳다.
문재인 정부들어 숱한 인사잡음, 여야 대치, 그리고 갈등과 당사자 낙마 등은 역사이며 반성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래서 서애 유성룡처럼, 문 대통령에게 사안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바른 말로 지적할 수 있는 각료가 필요한 것이다. 각료중에 일부는 '떳떳하지 못하게 임명됐으니까, 떳떳한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본다'는 오해를 불식시켜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