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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 신채호...청주는 기념식, 대전은 침묵
대전 출신 항일 독립운동가 신채호...청주는 기념식, 대전은 침묵
  • [충청헤럴드=송준호 기자]
  • 승인 2017.12.0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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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출신인 항일 독립운동가인 단재(丹齋) 신채호(申菜浩) 선생의 탄신 137주년을 맞아 청주에서는 탄신 행사를 가졌지만 정작 고향인 대전에서는 변변한 사업 없이 침묵했다.

단재 신채호선생 [사진= 단재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신채호 선생 [사진=단재 선생 기념사업회]

◇단재 선생은 누구=신채호 선생은 1880년 11월 7일 충청남도 회덕군 산내면(현재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 도림마을)에서 태어나 19세에 성균관에 들어가 박사가 되고 독립협회, 만민공동위원회에 참여해 체포 투옥됐다가 풀려났다. 이후 낙향하여 예관 신규식 선생이 충북 청원군 낭성면 인차리에 설립한 문동학원의 강사로 부임,개화와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대전시 중구 어남동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사진=대전시 제공]
[사진=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본격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나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에서 주필로 민족 정기를 불어넣었다. 이후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가 '조선상고사'를 집필했으며 임시정부를 수립했으나 이승만이 미국 윌슨 대통령에게 조선을 위임 통치해달라는 서신을 비밀리에 보내 이승만이 국무총리가 되자 "이완용은 일본에 나라를 팔아먹고, 이승만은 미국에 나라를 팔아먹었다"며 임시정부에서 나와 의열단을 만들어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가 1928년 자금 조달차 대만으로 가다 체포되어 10년형을 선고받고 뤼순감옥에서 1936년 2월 뇌일혈 삼일간 방치되었다가 별세한 분이다.

​◇생가가 있는 대전은 침묵, 충북은 각계 기념사업 활동=이런 단재 선생의 항일 독립운동이나 저서 등이 기득권(이승만, 안창호, 김구)에 묻혀 방치되어왔고, 근래 들어 양친 부모님과 독립운동가인 김원웅 전 의원이 주도해 대전시가 생가 복원 등을 마쳤지만 그의 애국·애민 사상 등이 묻히고 있다.

충북 청주에서는 단재 선생이 22살 때인 1901년 쯤 충북청원군 낭성면 인차리의 신규식 선생의 문동학원에서 강사로 활동한 업적을 살려 기념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 중구 어남동 단재 신채호선생 생가[사진=대전시 제공]
대전시 중구 어남동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 [사진=대전시 제공]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는 지난 8일 오후 6시 충북도청 강당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7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행사는 음악그룹 '나비야'의 공연을 시작으로 단재의 약력 보고, 김성장 시인의 헌시 낭송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제11회 전국단재역사퀴즈대회와 제8회 전국 단재청소년글짓기대회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불리는 단재는 '조선상고사'의 저자로서 역사학자이자 언론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일제에 체포돼 중국 랴오닝성 다롄시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기념식에 앞서 단재 신채호 선생 기념사업회는 임시총회를 통해 단재기념사업회·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의 통합을 결정했으며, 초대 대표를 충북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유인태 전 의원이 맡았다.

사무실도 충북 청주에 두고 활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충북은 단재 선생의 얼을 기리기에 각계가 참여한 기념사업회를 만드는데, 고향인 대전에는 생가를 복원한 것 외에는 내놓을 만한 이렇다 할 기념사업 하나가 없어 안타깝다.

대전 지역 사학자인 A 씨는 "대전이 낳은 실천하는 사상가이자 항일 운동가인 단재 선생에 대해 중구 어남동에 생가 복원만 했지, 이렇다 할 기념사업조차 없다는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투옥되어서도 동아일보, 매일신문 등에 기고하며 독립운동을 한 지식인이자 역사가인 단재 선생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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