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써 다섯번째의 아픈 봄이다.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팽목항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교사 등 탑승객 476명이 승선했으나 수습된 시신 299명과 5명의 실종자 등 304명은 불귀의 몸이 되고 말았다.
그날 바다에는 국가가 없었고, 있었다면 부끄러운 국가의 민낯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던 것을 국민들은 질타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었고, 정치에 올바른 역할을 확인하는 물음이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크게 흔들어놓았다. 권력을 바꿨고, 여야 진영을 바꿨다. 공수가 교체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는 물음은 있다. 과연 세월호 참사에서 얻은 교훈, 곧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 사회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느냐다. 그에 대한 답은, '아니올시다'다. 청와대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결코 안전한 나라도, 국민들이 맘편히 먹고 사는 나라도 아직은 아니다. 완전한 진실규명의 과제도 남았다.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권력이 들어섰음에도 잇따른 인재로 무수한 참사와 희생자는 끊임없이 발생했다. 세월호의 아픔이 진정으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다시는 그러한 사고가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참 희한한 점이 있다. 당연히, 그날의 아픔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 사회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다. 유가족들은 유가족들 대로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 잃은 보상금으로 10억원을 받았다고 해서 씻길 일은 아닐 것이다.
괴로운 쪽은 또 있다. 국가권력을 이양받았던 당시 여권, 곧 지금의 한국당은 한국당대로 더 괴로울 수 밖에 없다. 보수진영에 대해서 '세월호의 저주'처럼, 무서운 영화를 본 뒤에 밤마다 찾아 오는 가위눌림처럼 끊임없이 괴롭힌다. 무서운 환영(幻影)이다.
그러잖아도 4.19, 5.18 광주사태, 그리고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춘투'로 잔인한 계절을 보내곤 하는데, '세월호'는 엎친데 덥친 격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원내대책회의에 앞서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을 유도한 뒤 모두발언에서 "피해자분들과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어린 자식을 안타깝게 잃은 어머님, 아버님의 아픔을 좀 나눠지고 싶다"고 밝히면서도 "그날의 아픔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일패도지를 딛고 권토중래(捲土重來)의 의지를 불태우겠다는 건가. 듣기에 따라서는, 잊지 못하겠다는 의미는 중의적(重義的) 표현으로 들릴 수 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등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단체들은 전날 진상규명 과제를 제시하며 기자회견을 열고, 304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13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법적으로 책임질 부분이 아닐 수는 있을 지언정 명단에 드는 것만으로도 여간 곤혹스런 일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그러자 한 전직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한 폭언을 쏟아냈다는 이유로 4.16연대측은 그를 상대로 고소고발을 추진하겠다고 분노를 삭이지 않고 있다.
불과 2개월 전, 보수진영은 국회 한 토론회 자리서 5.18광주민주화운동 폄훼발언으로 논란을 빚은데 이어 이번에는 세월호 유가족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피소될 처지에 놓였다. 보수진영이 5.18과 4.16 프레임안에 꽁꽁 묶이는 형국이라 아니할 수 없다. 세월호의 아픔이 씻겨지기 위해서는 한 세대가 흘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래저래 보수진영에겐 더 이상 잔안할 수 없는 4월이다. 잔인한 4월을 노래한 시인 엘리엇도 상상못했을 터. 숙명적으로, 2개의 나라가 존재할 법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