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이 되면 훈풍이 불고, 봄비가 내려 겨우내 잠들었던 대지가 태동을 한다. 생명체가 언 땅에서 뿌리를 녹이고, 틈새로 보이는 하늘빛을 따라 잎을 피워 올리는 일이야말로 버거운 일이아닐 수 없다. 재생에 대한 믿음과 결실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섰을 때만이 동면체는 스스로 몸을 곧추세워 건강한 호흡을 시작할 수 있다. 언 땅 속의 움직임은 경이롭기에 오히려 잔인하다는 역설의 시어를 탄생시킨다.
해마다 다른 형상으로 다가오는 봄은 늘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그러기에 봄은 기다리는 이들에게 희망이며 꿈이다. 그러나 ‘춘래춘 불사춘’이라는 문장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귀에 거슬리는 몇몇 위정자들의 망언 때문이다.
지난 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가리켜 ‘폭동’으로, 그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언급한 사람이 있었다. 또한, 한 야당 대표는 해방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활동으로 국민이 분열했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이러한 위정자의 비상식적인 발화는 대중으로 하여금 자칫 역사해석에 대한 오류를 낳을 위험이 있다. 진상규명된 역사적 진실들을 외면하고 사익에 따라 시공을 넘나드는 인기몰이식 발화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과거를 지배했던 자들이 현재와 미래를 지배하기 위한 도발적인 발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에 역사학계는 "5.18과 반민특위에 대한 망언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며 “공공선에 봉사해야 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략을 추진하기 위해 민주적 공동체의 근간을 부정하는 발언을 일삼는 상황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반민특위 해체로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픈 근대사의 오점이며, 정의에 대한 가치 정립에 실패한 일 임도 잘 알고 있다. 또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규명의 과업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위원회의 구성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자유한국당에서 뒤늦게 5.18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논란을 일으킨 의원들에 대한 징계가 이루어지고, 반민특위발언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이 있기는 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다수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 E. H. Carr의 말처럼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객관적 사실을, 현재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으로 이어지기에 때로는 엇박자의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역사적 사실 속에 자리하고 있는 진실을 왜곡하고 망언을 하는 것은 정치가로서의 기본적인 자세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방법은 사익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정확하고 공정해야 한다. 역사나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편견이나 선입견이 있었다면 이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만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카뮈는 “과거의 죄를 처벌하지 않는 것은 미래의 죄를 용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략적인 혹은 이해관계로 사실을 왜곡하고 현재를 지배하려는 정치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자리하기 힘들다. 아직도 과거를 조작하는 행위를 통해 현재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편견이라 말 해주고 싶다.
저 화려하게 피어 오르는 봄꽃 밑에는 지금도 옹골차게 올라오는 생명의 소리들이 가득하다. 그 씨앗들이 올곧게 자랄 수 있도록, 예쁘고 진실된 언어들로 울타리를 만들어 주자. 그리고 잔인한 4월의 땅 위에 서서 역사를 바로 읽고, 진실만을 이야기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