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헤럴드=국회 강재규 기자] 한때는 상대의 내민 손길이 곧 맞닿을 듯하던 정치권이 저멀리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형국이다.
한미 정상간 통화 내용 유출 사건,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서훈 국정원장의 회동을 둘러싼 '관권선거 논란'이 다시금 정치권을 뒤흔들면서 여야의 대치가 장기화 태세로 접어들고 있다.
여야 격렬한 공방전이 거듭되면서 여야 주요 정당의 원내사령탑 교체를 계기로 호프회동 등 대화 가능성이 열리는 듯하던 국회는 언제 회복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장담키 어려운 파행 형국으로 추락하는 실정이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은 29일 한미 정상 통화 누설 건을 '국가기밀 유출, 국기 문란 사건'으로 명명하며, 엄중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그렇게도 한미 동맹 훼손을 우려하던 한국당이 외교 안보를 위협하고도 국민 알 권리로 물타기 하려 한다"면서, "물타기로 어물쩍 넘어가려는 행태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미동맹을 정쟁에 끌어들여 훼손하려 한 본질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거듭 분명하게 지적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또, 강효상 의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하는 등 초강경 모드로 돌입한 상태다. 민주당은 "한국당은 '제 식구 감싸기'를 멈추고 출당, 제명 등 엄정하게 조치하라"고 압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민주당의 공세에 더해 급기야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을지태극 국무회의에 참석, "국가의 외교상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변명의 여지 없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정부로서는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고 한국당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당을 겨냥,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 간의 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 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자유한국당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의 '부적절한 만남'에 선거 공작의 냄새가 난다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지하 선거 벙커 같은 곳에서 여론을 움직이고 선거를 기획하는 건가 싶다면서, 북한 전문기자까지 동석했는데 내년 총선에서 '북풍 정치'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나 원내대표는 "대한민국 최고 정보 권력자와 민주당 내 최고 공천 실세, 총선 전략가의 어두운 만남 속에서 우리는 당연히 선거공작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면서 "으레 살생부, 뒷조사, 사찰, 이런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서훈 국정원장이 정치 중립의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다며 전날 검찰 고발에 이어, 즉각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이들 거대 여야 정당과는 달리 제3당격인 바른미래당은 여전히 내홍을 앓고 있어 언제나 잠잠해질 지 가늠키어려운 상황이다. 대략 1주에 이틀, 최고위원회가 열리는 날마다 얼굴을 마주보며 설전을 펴느라 시끄럽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퇴진을 주장하는 유승민·안철수계에 호남계·당권파가 맞서는 형국인데,
급기야 이날 오전에는 선출직 최고위원 5명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병국 혁신위원회 구성안'을 내놨다.

5선 정병국 의원에게 전권을 주고 손 대표는 사실상 2선 후퇴, 단계적 퇴진을 하는 모양새로 가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면전에서 굴욕을 당한 손 대표는 이들의 정치공세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퇴진을 전제로 한 혁신위원회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했다.
이처럼 '손학규 대표 퇴진'을 공약으로 건 오신환 원내대표가 당선된 이후, '한지붕 두 가족'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모습을 바꿔 계속 반복되고 있다.
한 때, 바른미래당 오 원내대표가 중간에서 조율하며 성사시킨 원내 3당 원내대표 호프 회동은 그저 반짝 이벤트로 사라졌고, 물고 물리는 난타전 속에 국회 정상화의 궤도는 끝없는 평행선을 향해 달려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