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오래 해본 사람들은 말한다. 열심히 발품 팔아서 표좀 긁어모았다 치자, 말 한마디 실수로 한번에, 단칼에 훅 가는게 선거다라고. 이 말은 내가 잘해서 당선되기보다는 상대가 실수해서 당선되는 예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총선을 10개월 가량 남긴 엄중한 시점에서 국정원장과 민주당 선거기획 책임자가 기자까지 동석해서 4시간 넘게 자리를 가진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맞지 않는 일이다. 양정철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자 실세라고 알려져 있지 않는가.
전 정권에서 국정원이 국내 정보수집 문제로 그리도 혼쭐이 나고, 역대 정보수장들이 감옥에 가고, 결국 국정원 개혁을 통해 국내 첩보활동은 금하는 것으로 했는데, 누가 봐도 의혹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다.
이를 해명한다고, 당초 해당 동영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여성이 동석했다하고, 문제가 확산되는듯 하자 조기에 진화할 요량으로 MBC 국장급 기자를 커밍아웃시키는 프로세스다. 자기가 듣기에는 '정치 이야기는 없었다'는 것이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나싶다.
대형 방송사 국장급 기자가 평소 친분이 있어 동석했다 치자, 그 정도 식견있는 기자가 불과 몇일 전의 엄중한 자리, 밥상 술상 채려진 석상에서 오간 대화를 마치 국외자인양 '둘 만남에 부담스러웠던지 절 끼운것같다' '정치 이야기는 없었던 것같다' 이런 식으로 흡사 끼워맞추려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같다.
이 시기에 국정원장 만난 것이 과연 상식에 맞는 일인가. 총선 이야기는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도대체 누가 믿겠나. 그리고 기자가 동석한 것을 무슨 알리바이나 의혹해소, 내지는 투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쯤으로 생각했는지 알 수 없다.
기자라는 직업이 자유로운 전문직에, 정치권 등과의 접촉 지면이 넓은 관계 등으로 인해 기자직에서 하루 아침에 정치인으로 입문하는 예가 얼마나 수두룩한 일인가. 따지고 보면 현역 정치인들 중에 판검사, 변호사, 그리고 공직과 언론인 빼고 또 얼마나 되는가. 통상적으로도, 기자를 '내부용'으로 십분 활용하고 공천자리를 하나 주기도 하고, 선거 후 요직으로 갈아타게 해주는 일은 일상이 돼있는 일.
그렇지 않다면, 대선 캠프에서 같이 뛰었던 관계 등으로 인해 양 원장이 서 원장과 김 기자, 이들 둘 다 점지해 내년 총선에 투입할 요량이라도 했다는 얘긴가. 정치 얘기 오간게 없었다면, 선거공작만 있었다는 얘긴가.
당장에, MBC노조가 30일 '국장급 기자가 자초한 의혹조차 이해를 못하나?' 제하의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 따르면, "국정원장과 민주당 민주연구원장이 비공개로 만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그 자리에 MBC 국장급 기자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회사 구성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면서 "국정원장이 그런(실세인) 사람과 만나 ‘외국생활의 소회와 개인적 인연,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는 김현경 MBC 국장의 설명을 그대로 믿을 국민이 얼마나 있겠는가?"라고 꾸짖고 있다.
국정원장이 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는 민주연구원장에게 이미 실시된 국정원 개혁만 설명하고 총선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게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이 성명은 "MBC의 국장급 기자가 회동에 합석한 것도 부적절했다. 기자란 어느 상황에서든 정보가 있으면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직업이다. 그런데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대화가 오갈 수 있는 자리에 MBC 기자를 불렀다는 것은 그를 기자가 아닌 동업자 내지 내부자로 여긴 결과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당사자인 김현경 국장은 ‘누구와 누가 만난다는 사실만으로 소동이 발생해 상당히 당혹스럽다’고 말했다는 것과, 기자로 국장까지 오른 사람이 무엇이 부적절하고 국민의 의혹을 받는 것인지 이해조차 못하고 있는 듯한 반응에 저으기 놀라고 있는 것이다.
성명은 이어 "MBC의 수준이 어찌 이리 되었나"라고 반문 한 뒤 "국정원장과 여당 총선 지휘부 인사가 비공개 회동하는 것은 국민의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경솔하고 경우에 따라 불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제발 좀 인식해주기 바란다"고 질책하고 있지 않는가.
제발 기본과 상식으로 이해되고, 기본과 상식으로 설명되는 두 원장의 회동 자리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