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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원의 틈]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안성원의 틈] “누가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 안성원 기자
  • 승인 2019.06.14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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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충남야구협회 갈 길을 묻다"-1] …‘한 사람의 열 걸음’ 보다 ‘모두의 한 걸음’을 기대하며
최근 충남야구계가 진통을 겪고 있다. 엘리트 체육의 한 축인 천안 B중학교 야구부 감독의 사퇴를 둘러싼 의혹들이 폭로됐고, 충남소프트볼야구협회(이하 충남야구협회)는 통합 이후 집행부와 생활체육 야구인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충청헤럴드>는 이 같은 충남야구계의 현 실태를 점검하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충남야구협회가 변화의 시기를 맞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변화를 원하는 구성원의 자발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자료사진]

[충청헤럴드 내포=안성원 기자] 천안 B중학교 야구부 사태에 대한 언론보도 이후 진상규명을 위해 충남도교육청이 감사에 들어갔다. 이후 사법기관의 조사로 확대될 지 감사결과에 충남 야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4일 충남도교육청에 따르면, 김지철 교육감은 보도 직후 감사와 별도로 주무부서에게 야구뿐 아니라 도내 모든 학교 운동부를 대상으로 운영 매뉴얼을 새로 만들 것을 지시했다. 또 금품, 폭력 방지 등 체육지도자에 대한 교육도 강화키로 했다.

충남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도 B중학교 사태와 관련, 도교육청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오인철 위원장은 13일 “학교 운동부를 이끌고 있는 지도자의 비리와 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학생들의 학습권과 인권마저 침해되고 있다. 운영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도교육청은 TF팀을 꾸려 운동부 운영가이드 제작에 착수할 방침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다. 본 기자 역시 이번 취재를 위해 학부모와 충남야구협회, 학교 관계자, 체육회 및 교육청 담당자 등을 만나봤지만, 요식적인 행정절차만으로는 달라질 게 없다고 확신한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사실 운동부와 관련된 의혹이 드러난 건 처음이 아니다. 폭력사태, 승부조작, 금품수수 등 지겨울 만큼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터지는 게 체육계의 비리다. 학연·지연으로 공고하게 구축된 ‘권력 구조’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기에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충남 야구계도 비슷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인기스포츠 운동부는 같은 병을 앓고 있을 수도 있다. 

실제로 기자가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충남 야구계를 향해 ‘문제가 있다’,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던졌다. 그렇기 때문에 뒤늦게 감독에 나서는 교육청의 모습에 ‘그동안 정말 몰랐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든다. 제보한 사례들은 다양했고 수위는 상상 이상이었다. 

‘불만’ 쌓아놓고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학부모들

다만 정작 구체적인 증언이 필요할 때는 취재원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야 했다. 무슨 이야기든 표면으로 나오는 순간 야구계에서는 누가의 제보인지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그랬다. 기자가 확인 차 던진 질문에 대뜸 ‘OOO 이야기죠?’라는 물음이 자동적으로 돌아왔다. 때문에 수많은 의혹들을 검증하고 지면에 담는 데는 실패했다. 가장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충남을 떠나 타지에서 운동을 시키고 있는 학부모들도 속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야구계 이야기라면 지역을 떠나 전국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라고 들었다”, “우리 아이는 아니고..”라는 가정을 전제로 한 의혹들은 쳇바퀴 돌 듯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한 채 반복해야 했다.

물론, 그 중에는 구체적인 ‘증언’에 나선 학부모도 있다. 하지만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는 듯하다. 

B중학교 해임 감독과 관련해 언론에 제보한 모 학부모는 보도 이후 해당 감독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겠다’는 전화를 받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아이는 타 지역까지 소문이 퍼져 진학이 막혔다. 다른 방법을 찾아 수소문했지만 진학은 무산됐고 ‘부정 청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기자에게 끝내 마지막 말을 꺼내지 못했던 수많은 학부모들은 아마도 이런 상황을 두려워했으리라. 학부모들은 다른 학부모를 믿지 못하고, 지도자들을 믿지 못했다. 체육회는 물론 교육청 직원들도 못 믿고 있었다. 오직 “내 아이가 무사히 졸업할 때까지만 별 일이 없길..” 이 마음만 간절했다. 

어떤 이는 지금의 상황을 학부모들이 자초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린다. 그러나 자식 가진 부모가 같은 심정인 것을.. 어찌 그들을 탓할 수만 있겠는가. 충남 야구계 구성원 대부분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변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도교육청 감사 결실, 학부모 적극적인 참여에 달렸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도교육청의 감사와 매뉴얼 개발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다만 기자가 취재에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도교육청도 감사에 난항을 겪고 있는 듯하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아직 조사 중이라는 말밖에 할 순 없지만,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증언이 필요하다. 그래서 언제 끝날지도 기약이 없다”며 말을 흐렸다. 

충남도체육회 역시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워낙 많은 가맹단체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체육계의 특성상 어려운 일인 건 이해한다. 하지만 충남야구협회의 건을 취재하면서 ‘중립’의 역할을 빙자해 ‘방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역할에 대한 회의감을 떨치기 어렵다. 

물론, 도교육청과 체육회가 아무리 잘 하고 싶어도 결국엔 변화를 필요로 하는 야구인들 스스로가 나서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이번 취재를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고심했다.  특정인이나 일부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모두가 한 걸음씩이라도 앞으로 내딛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기자는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보다 취재원들이 전한 충남야구협회에 바라는 말들을 정리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야구계의 학연·지연이 두텁다. 차라리 지역출신이 아닌 지도자가 오는 것이 학생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학부모 A씨 

“학부모가 돈을 걷는 관행이 B중 야구부만 그런 것 같은가? 아마 조사하면 학교 운동부 대부분이 문제가 될 것이다. 우수한 지도자는 그만큼 돈을 요구한다.” -감독 B씨

“충남야구협회가 학생과 동호인을 위한 단체가 아니라 군림하고 있다. 통합된 협회라면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 -생활체육협회장 C씨

“어른들의 싸움으로 아이들이 상처를 받아선 안 된다. 야구계가 파벌과 정치적 논리로 움직이는 걸 보고 배운다면 올바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학부모 D씨

“야구협회 집행부가 척박한 환경에서부터 야구발전과 저변확대를 위해 노력한 공은 인정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한 만큼, 협회도 제도적으로나 인적으로나 변화가 필요하다.” -감독 E씨.

 

‘틈’은 기자가 취재 현장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라는 뜻의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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