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반도가 참혹히 전장화했고, 무고한 수백만 양민이 스러져간 동족상잔의 비극의 시작, 그날이다. 대한민국을 수호하다 순국하신 선열들과 세계 각국의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날이다. 동시에 역사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우리의 결의를 다지고 안보태세를 되새기는 날이기도 하다.
1950년 6월 24일 북한이 전면적인 남침을 준비하고 있을 때, 한국군 지휘부는 비상경계령마저 해제하고 장병들을 외박과 모내기휴가를 내보냈었다고 한다. 심지어 모 공병대대장은 '위장결혼'을 구실로 전날 부대원들을 서울로 모이도록 함으로써 정작 25일 당일 부대 지휘부가 텅 비어 공병작전을 펼칠 수 없게 했다는 사실이 한국전쟁 관련 문헌에서 증언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한 '경계 해제' 상태였다고 하지 않는가. 최근 동해안에서 발생한 이른바 '해상판 목선 노크귀순' 저리가라 할 법하다.
한때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정치를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고 하는 푸념이 일상이 됐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안보에 있어서, 한때 국민들은 흔전만전 안보의식이 희석돼있어도 "후방의 고향 부모 형제들을 위해" 군이 국민들을 지키는 보루가 되겠다고 했던 것이, 9.19 군사합의 이후 정부와 군대가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국방력을 등한시하니, 국민이 오히려 국방력 강화를 독려하는 형국이 됐다고 하는 시대가 된게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군 간부는 국가에 대한 소명(召命)의식을 바탕으로 부대와 장병들을 싸워 이길 수 있는 모습으로 발전시켜나가기보다는, 진급과 살아남는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일반 대기업보다 더한 '월급쟁이' 수준으로 전락했다는 자조가 나온다. 그런가 하면, 실전적 훈련보다는 사고예방을 우선시함으로써 사병들과 군 인권센터 등 민간단체의 눈치를 살피는데 익숙한 실정이라는 얘기다. 최근 우리 군의 현 주소가 69년 전과 무엇이 다른지 점검해야 할 때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이든, 외교든 그 목적은 전쟁 걱정없는 한반도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장밋빛 북핵 비핵화 논의가 당장의 한반도 평화의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느끼는 착시현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시진핑-김정은 회담 이후 더욱 가파르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에 따라 G20회의를 마친 후 오는 29일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당장에 남-북-미 3자 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릴 것만 같은 기대감이 만연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간 김정은-트럼프간에 오간 친서외교의 꽃을 피우는 것이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는 것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권이던 임기 내에 모든 것을 이루려고 조급해서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완성할 수 없고, 그렇게 하려는 것이 자칫 실수를 범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북측과 다른 이유는, 북은 김정은 1인 독재체제이니 늘 롱텀(long-term)으로 대화를 하고, 전략을 짤 수 있지만, 우리는 늘 5년 단임인 까닭에 늘 조바심이 쳐지고, 당장에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두 차례 회담을 했으나 손에 쥔게 없는 북-미 간에도 트럼프 대통령 역시 4년 임기에 재평가를 받아야 연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늘 보여주는 외교, 성과가 있는 듯이 보여줘야 하는 정치여야 하는 까닭에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은 그럴 수 없는 일. 영세 중립국 스위스도 국민개병제를 시행하면서 안보만큼은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우리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북한의 비핵화와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굳건한 안보태세가 가장 강력한 지렛대인 점을 국민들이나, 군이나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다. 전쟁없는 한반도는 그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는 말보다 더한 금과옥조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