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고려장 이야기에서는 늙은 어머니의 지혜를 빌려 나라의 위기를 면하게 되고, 늙은 말이 길을 찾고, 늙은 양이 샘을 찾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두 다 경험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경험에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이 있다. 직접 경험은 어떤 일에 자신이 몸소 참여하여 얻는 경험을 말하고, 간접 경험은 자신이 직접 부딪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한 말이나 글을 통해 얻는 경험을 말한다. 직접 경험은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실패의 부담도 크다. 그에 비해 간접 경험은 주로 책을 통해서 얻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들고, 실패의 부담도 적다. 오이 농사를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오이 재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농사를 짓는다면 어떻게 될까? 품종 선택, 모종 심기, 거름주기, 물주기, 방제하기, 수확하기, 판매하기 등 경험해야 할 일이 수도 없이 많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확을 올리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오이 재배에 대해 섭렵한 다음에 농사를 짓는다면 첫 해부터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 따라서 아둔한 사람은 자기 경험으로 얻으려 하고,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 얻으려 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도 독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간접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하다 보니, 직접 경험의 소중함을 폄하한 생각이 든다. 모든 경험이 간접 경험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 체육 분야에 있어서는 간접 경험보다는 직접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지만, ‘백견이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고 하고 싶다. 직접 악기를 연주해 보고, 그림을 그려보고, 물건을 만들어 보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자기의 재능을 파악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김연아가 스케이트를 타보지 않았고, 이창호가 바둑을 둬보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김연아와 이창호는 없을 것이다. 내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꺼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무턱대고 꺼낼 수도 없다. 꺼낼 기회가 와야 한다. 그런 기회는 다양한 경험에서 비롯될 수 있다.
대학에서 논술을 본다고 하니까 논술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초등학교에서도 방과후학교에 논술부가 개설되어 학생들에게 논술을 가르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은 대학수학능력고사가 끝나면 서울에 있는 학원에서 한 달 정도 논술 특별 지도를 받는다고도 한다. 논술이 무엇인가? 주제에 따라 자기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조리 있게 서술하는 것이 아닌가? 글을 쓰려면 자기의 생각을 꺼내야 한다. 마치 단지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과 같다. 단지에 물건이 가득 들어 있으면 쉽게 꺼낼 수 있지만, 단지가 텅텅 비어 있으면 꺼낼 것이 없어 꺼내지 못한다. 물건은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일 것이다. 경험을 통해 단지에 물건을 많이 저장해 둔 학생은 쉽게 꺼내어 글을 쓸 수 있지만, 경험이 없는 학생은 꺼낼 물건이 없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단지에서 물건을 어떻게 꺼낼지 요령을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단지 속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아 두는 것이다. 따라서 논술 학원에서 논술을 공부하는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험의 자녀 교육을 위해 여행을 권하기도 한다.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생활 풍습도 다르고, 건물이나 자연 환경도 다르기 때문에 보고 듣는 것이 다양하여 견문을 넓힐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1990년 7월 13일에 승용차를 구입했다. 승용차가 있으니 여행하기에 편리했다. 여행하기를 좋아했던 우리가족은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전국을 돌아다녔다. 차를 구입하고 나서 일주일도 안 된 초보운전자가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고속도로를 타고 인천으로, 강원도 간성 통일 전망대까지 갔다가, 동해안을 타고 울진까지 내려와서 내륙도로를 통해 대전까지 약 1,500km를 여행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90년 7월 중순부터 1994년 12월 말까지 약 4년 6개월 동안은 여행을 많이 했다. 그 시기는 필자의 아들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해당된다. 그 때는 주5일 수업제가 적용되지 않던 시기라 토요일에 여행 준비를 하여 출근했다가, 퇴근하면서 아내와 아들을 태우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전국의 관광지나 유적지를 관광하거나 국립공원 정상을 등반하였으며, 집에는 일요일 저녁에 도착하였다. 겨울 방학 때는 주로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 백령도, 홍도 등의 유명한 섬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주말과 방학을 이용하여 여행하다 보니 나중에는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필자의 아들은 성장하며 여행으로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독립기념관에서는 순국선열들의 애국심을, 현충사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행주산성과 진주성에서는 국민들의 단결된 힘과 논개의 정신을, 경주와 부여, 공주에서는 백제와 신라의 문화를 체험했을 것이다. 또한, 국립공원 정상을 등반할 때는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인내심을 길렀고, 정상에 우뚝 섰을 때는 성취감을 느꼈을 것이다. 유적지 답사 및 여행뿐만 아니라 다른 경험도 많이 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춘천의 마임 축제도 관람하였고, 연극, 뮤지컬, 오페라, 국악 공연 등도 관람하였으며, 미술관에서 미술품도 관람하였다. 그러한 경험은 필자 아들의 성장에 직접경험의 긍정적인 힘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