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경원과 조국은 같은 서울대 법대 82학번이다. 한쪽은 야당 원내대표이고, 다른 한 쪽은 현 정부 권력 중심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내다 막 옷을 벗고 나온 '햇 정치인'이다. 향후 범여권의 권력암투에서 피를 보며 싸워 대권주자로 나서든 아니든 그건 차후의 일이다. 그리고 범여권에는 그 외에도, 나름 충분히 몸집 불려온 임종석이든, 현 이낙연 총리든 대선급 주자들은 얼마든 있다. 그건 그때의 일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 26일 퇴임한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해 독설을 날린 것을 보면, 아무래도 싸움 방식이 좀 잘못된 것같다는 생각이다.
때마침, 황교안 당 대표가 28일, 북한의 지난 25일 두발의 미사일 발사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조선에 엄중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무력시위' '자멸적 행위를 중단하라' 는 등 대남 협박에 대해 "한반도 평화는 신기루"라며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 등을 주장하는 내용을 포함, 나름 입장을 정리해 밝힌 부분과 정확히 오버랩되는 것같아 하는 말이다. 보기에 따라선 잇단 실책으로 비춰진다.
결국 황 대표의 입장문에 대해 민주당은 "참으로 단견이다. 한심하다. 명색이 제1야당의 대표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준"이라는 핀잔만 듣고 끝났다.
나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정권의 무능, 무책임, 그리고 권위주의 정치를 온 몸으로 상징하는 듯했던 그가 청와대를 떠난다. 물론 ‘청와대를’ 떠난 것이지 문재인 대통령 곁을 떠난 것은 아니다. 조국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행은 이미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이직 휴가’ 정도의 시간을 번 셈이다"고 했다.
그리 독설같아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시작한 나 원내대표의 글은 다시 "조 수석, 정말 열심히 일했을 것"이라며 "그래서 말해주고 싶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대한민국을 위해서 통치 권력에서 떠나달라"고 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회 청문보고서 없이 장관직 등에 무임승차한 사람이 무려 16명"이라며 "이미 경질됐어도 몇 번은 경질이 됐어야 할 민정수석"이라고 지적했다. 인사검증 책임자로서 조 전 수석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 "마지막에는 철 지난 ‘친일 프레임’으로 온 사회를 분열시켰다"며 "해야 할 일은 정작 안 하고, SNS를 붙들고 야당을 향해 친일을 내뿜는 민정수석이라... 옳고 그름을 논하기에 앞서 청와대 참모진의 품위와 격을 떨어뜨린 행위"라고 비난했다.
나 원내대표는 이어 "이제 그가 이끌게 될 법무부는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무차별 공포정치’의 발주처가 될 것"이라며 "당장 이 폭주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라고 적었다. 또 "그런 와중에 ‘조국 띄우기’에 혈안이 된 한 노회한 정치인의 마지막 응원이 애처롭기까지 하다"며 "우리 정치가 정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한탄했다.
팩트는 틀리지 않아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한국당의 조국 전 민정수석에 대한 싸움방식은 결코 이롭다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황교안 당 대표나 나경원 원내대표가 직접 나서서 싸워봤자 손해다. 저쪽은 단기필마, 혼자 병영에서 나와서 싸우는 식이다. 오로지 페이스북이라고 하는 무기 하나 들고서.
더욱이 조 전 수석은 8월 장관임명 절차가 있기전까지는 자유로운 몸이 아닌가.
기왕에 한국당이 조국과 맞짱을 뜨려면, 비슷한 전사(戰師)를 불러내서 그로 하여금 싸우도록 해야 한다. 조국은 얼마전, 스스로에 대해 "맞으며 가겠다"고 했었다. 그는 자신이 맞을 수록, 정권의 홍위병들이 에워쌀 것이고, 스스로의 몸집을 키우는 셈이되기에 조금도 손해볼 것이 없다.
하지만 야당으로서는 당대표나 원내대표가 피흘리며 싸워봐야 이득될 게 없다. 아니 오히려 모양새만 더 사나워질뿐이다.
예상했던 대로 조 전 민정수석은 청와대를 나서자 마자 28일 페이스북 도발을 재개했다.
지난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법학에서 ‘배상’과 ‘보상’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면서 '친일 도발'을 벌인데 이어 불과 일주일여 사이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날 참여정부 시절 민관공동위원회가 펴낸 백서의 주요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 및 대법원 판결의 입장을 부정하고 매도하면서 ‘경제전쟁’을 도발했”다고 적었다.
조 전 수석은 “한국의 일부 정치인과 언론은 이에 동조하면서 한국 정부와 법원을 비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 전 수석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 “일본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물적 범위에 포함되지 않음” “한국 국민은 징용 자체의 불법성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협정에 의해 소멸되지 않았으므로 일본을 상대로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음” 등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백서 일부 내용을 올렸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보상’을 다시 요구하는 것은 안되지만, 한국인 개인이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건 가능하다고 재차 강조한 것이다.
때문에 야당이 조국 전 수석에 대해 대응을 하려거든, 이제는 다른 전사나 논객을 끌어들여서 하는게 백번 옳다. 그리고 그게 격에 맞다. 공연히 야전에서, 골목에서 싸울 일을 정식 링위로 올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