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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니라 다행’…부끄러움과 미안함의 참회록
‘내가 아니라 다행’…부끄러움과 미안함의 참회록
  • 안성원 기자
  • 승인 2019.11.21 1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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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원의 ‘틈’] ‘민식이법’ 등 아이들 생명안전법 통과촉구 국민청원 20만 명 돌파에 부쳐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첫 질문에 나선 고(故) 김민식 군의 부모, 김태양·박초희 부부.

충남 아산의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故) 김민식 군의 이름을 따서 만든 ‘민식이법’. 스쿨존 안전시설 의무화와 처벌 강화 내용을 담아 발의된 이 법안을 비롯해 아이들의 생명과 안전을 다룬 5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지난 20일자로 20만 명을 넘어섰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서 19일 저녁 생방송으로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첫 질문에 나선 민식 군 부모의 하소연이 국민들을 움직였다. 방송이후 연예인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인사들이 SNS를 통해 청원 동참을 호소했고 하루 만에 청와대가 공식답변에 나서도록 만들었다. 

그동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법안 통과를 위해 노력해온 부부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마침 민식 군을 사망케 한 40대 운전자에 대해 조사를 벌이던 경찰이 그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무언가 바른 방향으로 정리되는 느낌이다. 

그런데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사건 초기부터 취재해 오던 기자 중 한 명으로서 기쁜 게 당연할 텐데 안도감 뒤에 설명하기 힘든 ‘답답함’이 남는다. 이번 글에서는 이 ‘답답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먼저, 개인적으로 이번 취재는 너무 버거웠다. 기자의 아들과 동갑이었던 9살 민식이의 죽음은 그 어떤 사건의 취재보다 충격적이었다. 사고 지점은 평소 아무렇지 않게 자주 오갔던 그 길목이었고, 민식이의 엄마아빠는 가까운 주변인의 지인이었다. 우리 아이와도 자주 거닐던 길에, 나 역시 스쿨존임에도 불구하고 과속하곤 했던 곳이었다.

게다가 민식이의 사고가 안타까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나라면 어땠을까’, 나아가서 ‘우리 일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 그래서인지 민식이 일을 접한 뒤로는 아이와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불편했다. 그리고 다른 매체를 통해 관련 소식을 들을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지금 이럴 때인가’라는 채찍을 스스로에게 휘둘러야 했다. 

첫 국민청원 실패에 밀려오는 실망감에 외면했던 미안함

특히, 민식이법 통과를 위한 첫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채우지 못한 채 종료됐던 시점이 떠오른다. ‘역시 정치권은 아이들 이야기엔 관심이 없는 걸까?’라는 적잖은 실망감에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실패했다는 패배감 때문인지 민식이법과 관련된 동향을 외면하기도 했다.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한 순간이다. 

하지만 민식이의 엄마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진 악플에 시달리면서까지 기회가 될 때 마다 언론과 카메라 앞에 나섰고 스쿨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부르짖었다. 사고로 아이들을 잃고 관련 안전법에 이름이 들어가게 된 다른 부모들과도 연대하며 멈추지 않았다. 기자도 ‘이대로 끝나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게 된다. 

그리고 아산뿐 아니라 이웃 천안과 충남도, 국회에서까지 ‘민식이법’ 이야기가 등장하게 됐다. 급기야 이제는 대통령까지 관심을 가지며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람을 느끼면서도 신생 지역 인터넷신문 기자로서의 한계도 실감해야 했다. 어찌됐든 20만 명을 넘긴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를 들여다 보니 3개월여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정말 제대로 된 법안이 만들어지고 실효성 있는 제도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자 역시 ‘민식이법’을 계기로 학교주변의 안전이 너무나 허술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을 ‘부끄러운 아비’로 불렀던 민식이 아빠와 마찬가지로 기자 역시 안전에 무관심한 어른이자, 한 아이의 아비로서 부끄러웠던 대목이다.

실제로 충남도의회 조철기 의원(민주당·아산3)이 충남도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스쿨존으로 지정된 도내 유치원과 초등학교 570교 중 과속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54개교(9.5%)에 불과했다. 

지역별로는 보령이 가장 높은 16.2%를 기록했고 천안 16%, 논산 14%, 아산 12.5%, 서천 6% 순으로 집계됐다. 부여와 청양, 홍성 등 세 지역은 스쿨존에 과속단속 카메라가 단 한 대도 설치되지 않았다.

환하게 웃는 사진 속 민식이의 모습. 
환하게 웃는 사진 속 민식이의 모습.

아이들 안전에 방관했던 부끄러움…‘민식이법’ 정착, “이제 시작”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관 의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스쿨존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는 총 4099건이며 이로 인해 59명이 사망했고 490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런 형편임에도 전국 스쿨존 1만6000여 곳 중 과속 단속 장비가 설치된 곳은 820곳에 불과하다. 전체의 5%도 채 안 된다.

그나마 민식이 사고가 발생한 아산시는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이다. 민식이 사고지점 인근 용화초에 안전휀스, 고원식횡단보도, 차선도색 등 시설물을 긴급 설치하고 올 12월까지 예비비를 투입해 신호등, 무인교통단속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이다. 

또 지난 11일까지 어린이보호구역 128개소(초등학교 46, 특수학교 2, 병설유치원 39, 유치원 15, 어린이집 26)와 노인보호구역 39개소(경로당 34, 의료복지시설 5), 장애인보호구역 2개소까지 집중 점검, 긴급 예산을 편성해 12월 중순까지 시설물 보강을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아이들의 안전이 중요한 건 누구나 안다. 충남도가 도정 제1의 과제로 추진 중인 ‘저출산 극복’을 위해서도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아이들 생명 안전법에 무관심했던 국회 탓만 해서도 안 된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민식이법’을 대표발의 했던 강훈식 의원(민주당·아산을)이 21일자로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는 낭보를 전해왔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제 시작이다. 더욱 많은 관심과 실천이 필요한 시기다. 아직 남아있는 답답함은 법안이 통과되고, 제도가 자리잡으면 털어낼수 있을까‥

어쩌면 하늘의 민식이가 선물한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틈’은 기자가 취재 현장과 현실의 사이에서 느낀 단상을 풀어놓는 코너입니다. ‘틈’이라는 이름은 ‘간격’을 뜻하는 단어 본래의 사전적 의미와 ‘통하게 하다’라는 뜻의 ‘트다’의 명사형을 칭하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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