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가 낳은 영원한 한화맨인 한화 투수 출신인 정민철 국가대표팀 투수 코치 겸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45)이 "인생은 M이다"라고 말해 체육인들을 감동시켰다.
그는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 신흥초-충남중-대전고를 졸업한 뒤 1992년 한화이글스의 전신인 프로야구단 빙그레에 입단해 한화에서 투수와 투수 코치로 활동하다 2009년 은퇴하며 통산 393경기 161승 128패, 10세이브, 평균 자책점 3.51, 탈삼진 1,661개로 KBO리그 역대 다승 2위이자 우완 투수 1위에 빛나는 위업을 남겼다.
![대전출신인 영원한 한화맨인 정민철 국가대표투수코치와 MBC 야구해설위원이 지난 10일 2018 KBO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인생은 M이다'라고 밝혀 감동을줬다.지난 2009년 한화에서 은퇴하는 모습[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1/1735_2002_1628.jpg)
그 때문에 1994년 평균 자책점·탈삼진 1위, 1997년 탈삼진 1위에 올랐고 등번호 23번은 한화의 영구결번이 됐다.
10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8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정민철 위원은 '선배와의 만남' 시간을 통해 신인 선수들과 '피와 살'이 되는 대화를 나눴다.
그는 대화 주제는 '2등의 삶은 없다. 오직 최고를 향해 달려라'였다
그는 "신인 선수들은 계약금이나 지명 순위에 따라 자신의 위치를 생각할 것이다"라고 지적한 뒤 "그러나 프로에선 모두가 같은 선상에서 출발한다"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나 역시 1992년 계약금을 적게 받고 빙그레 프로야구팀에 입단했다"라면서 " 박찬호, 조성민, 임선동 등 다른 동기 선수들에 뒤져 열등감도 있었지만 그것을 자양분으로 삼았다"라고 했다.
그는 키가 작아 학창 시절 유급을 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중학교 때 몸이 작아 유급을 하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라면서 "(어린 나이에 야구선수로서)고난의 시간이었지만 1992년 한화(빙그레)에 입단한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1999년 한화의 첫 우승도 경험했다"라며 좌절하지 않고 일어섰던 일을 예로 들었다.
그는 "우승 후 일본 명문 요미우리에 좋은 조건으로 입단했다"라면서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지만 정점을 찍는 순간이 위험하다"라고 털어놨다.
![대전출신인 영원한 한화맨인 정민철 국가대표투수코치와 MBC 야구해설위원이 지난 10일 2018 KBO신인 오리엔테이션에서 '인생은 M이다'라고 밝혀 감동을줬다.지난 2009년 한화 은퇴후 방송해설위원으로 취재하는 모습[사진=정민철 홈페이지]](/news/photo/201801/1735_2003_209.jpg)
그는 "그동안 본인한테 약속했던 루틴과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된다"라며 "나태했고, 연습을 소홀히 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참담한 실패를 하고 돌아왔다"라고 고백했다.
정 위원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2군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라며 "자존심 상하고 팀에도 미안하고, 속상했다"라며 "하지만 인생은 오르락내리락 하는 'M자'와 같다. 실패를 견딜 줄 아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핑계 대지 않고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 도전하지 않고 실패하는 건 나약한 행동이다.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역설했다.
그는 신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프로에선 언론, 팬, 가족 등 모두의 시선이 여러분에게 쏠린다"라면서 "그러면 그럴수록 자존감을 지키며 스스로를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마인드컨트롤을 강조했다.
그는 kt 강백호 선수를 지목한 뒤 "지금 여기 강백호 선수가 있다. 팬들은 타율 4할을 치고, 30홈런을 쳐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그러나 작은 플레이로 기쁨을 느끼며 성장해야 할 나이에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힘들 것이다"라고 충고를 했다.
그는 한화의 등번호 23번이 영구결번인 것에 대해 "나의 가장 큰 자부심이 영구결번"이라며 "힘들거나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그러한 자부심이 (돌출 행동을) 억제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어 "프로에서는 뜻하지 않게 공격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 "그럴 땐 후배인 여러분도 각자 자부심을 갖고 참아내길 바란다. 강해지기 위해 자제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