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산업 대형 프로젝트 '보이지 않는 힘' 우려

[충청헤럴드 박정하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신약 개발 관련 대형 프로젝트 사업인 'K-바이오 랩허브(Hub)' 후보지 유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12일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모를 시작하자마자 대전을 비롯해 인천과 포항, 청주 등 4개 지자체가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정부 주도 국책사업에 '정치논리'가 개입될 수 있다는 경고등도 켜졌다.
18일 과학계와 산업경제계는 너도 나도 뛰어드는 'K-바이오 랩허브' 사업이 자칫 지역이기주의나 정치권의 과도한 입김으로 첨단의료복합단지사업, 로봇랜드사업 등의 재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재계 인사는 "지리적 핸디캡도 고려하지 않은채 지난 2009년 정치논리로 대구가 유치한 첨단의료복합단지의 현주소만 봐도 국가 주도 미래산업에 정치가 개입되면 안 된다는 사례를 보여준다"며 "10년이 지난 2018년 기준 대구 의료산업의 전국 비중은 생산액 1.1%(전국 11위), 종사자 수 2.1%(전국 10위)로 초라한 성적을 냈고, 관련 기업 유치 및 전문 연구원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꼬집었다.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인 인천로봇랜드 조성사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 2009년 경남 창원(마산)과 인천 두 곳이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이후 청라경제자유구역에 공익시설인 23층짜리 로봇타워와 5층짜리 연구개발(R&D)센터만 세워졌을 뿐 대상부지 76만9279㎡ 대부분이 기반시설 공사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테마파크와 수익시설 등이 들어설 계획이지만 투자유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실상 방치 상태다.

국비 2500억 원이 투입되는 'K-바이오 랩허브'는 신약 개발 등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바이오 창업기업 50개가 실험·연구부터 임상·시제품 제작까지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 대형 프로젝트이다. 정부는 7월까지 최적지 1곳을 확정한 후 예비타당성 평가 등을 거쳐 오는 2024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지자체의 미래를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는 'K-바이오 랩허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모더나'를 배출한 미국 보스턴 바이오 스타트업 지원기관인 '랩 센트럴'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유치전에 뛰어든 지자체들이 앞다퉈 최적지임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계와 산업계는 유치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정치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객관적 평가로 선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성장 발판이 될 중요한 국책사업을 진행할 때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의 정책전환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덕연구단지의 한 관계자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자체의 경우 재정여건을 감안할 때 막대한 국비에 매칭 능력을 감당할 곳이 거의 없다. 정부가 지역 공모사업을 할 때는 원칙적으로 수도권 지역은 배제하는 균형발전을 고려해야 한다"며 "공모사업을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은 지자체의 추진 의지이고, 각 지자체의 사업환경, 교통 등 각종 인프라를 기준으로 적정성 따져 선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의 한 중소벤처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후보지를 선정할 때 공급자 중심이 아닌 수요자 중심의 정책전환을 반드시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한 정책은 수요에 맞춰 공급이 이뤄줘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데 , 그동안 정부 정책은 공급자 편의에 치우친 면이 적지 않다"며 "K-바이오 랩허브 같은 창업지원시설은 창업수요가 어느 지역에 많은지 수요파악을 한 후에 입지를 선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 산업생태계는 대기업을 정점으로 하청업체가 연계된 '수직적 원청-하청 관계'가 일반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하청업체간 가격경쟁 등을 통해 대기업 자체 수요에 맞는 기형적 구조를 갖게 된다"며 "바이오 산업의 경우는 대기업과 수평적 관계를 형성해 중소벤처기업간 상호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기업 관계자도 "k-바이오 랩허브가 조성될 경우, 중소벤처기업과 대기업간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을 평가지표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며 "기술개발 수요와 분야를 설정하고 연구개발과 초기 시제품 생산 및 전임상 단계까지는 중소벤처기업들이 담당해야 한다. 기술력과 사업성을 인정받는 기술에 대해서는 대기업들이 기술이전,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사업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과학계와 산업계의 목소리에 대전시는 적극 환영하는 분위기다.
민선 4기 이후 첨단의료복합단지, 로봇랜드, 자기부상열차 상용화사업 등 굵직한 국가 사업에서 줄곧 미역국을 마셨던 대전시로서는 'K-바이오 랩허브' 사업 만큼은 '정치논리'를 빼야 한다는 과학계와 산업계의 입장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대전시 관계자는 "과학기술 기반과 연구환경 등 각종 인프라를 갖춘 대전이 앞서 모든 사업에서 최적 후보지로 손색이 없었지만 굵직한 국책 사업들이 선정될 때마다 해당 지역의 '정치적 역량'과 입김에 따라 좌우되면서 고배를 마셨다"며 "국내 최고의 연구과학인력이 집적된 대덕특구와 연계해 사후 활용, 경제성 등 부분을 적극 어필했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여러차례 좌초된 만큼 'K-바이오 랩허브'는 반드시 유치하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