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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선생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선생님도 만만치 않습니다
  • 충청헤럴드
  • 승인 2021.06.14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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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자양초 교사)

‘아무튼 출근’ 이라는 프로그램이 나름 인기를 얻으며 방영 중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일상, 그중에서도 직장 생활을 간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여 시청자들에게 공감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얼마 전 이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의 출근기를 다루었다. 평범한 선생님의 출근부터 퇴근까지의 일상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방영되었는데 교사 생활 5년 차, 젊음의 생기가 도는 선생님과 초등생활 1년 차, 온 우주의 생기가 흘러넘치는 아이들의 하루는 보는 내내 흐뭇한 마음을 갖게 했고 놀랍게도 안타까움과 스릴감까지 느껴지게 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뒤 나는 교사가 아닌 주변 사람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질문과 격려를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정말 저렇게 많은 말들을 쏟아내느냐?’, ‘1학년인데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선생님이 여벌 옷을 준비하고 있는 거 맞냐?’, ‘진짜 급식시간에 선생님은 밥도 제대로 못 먹냐?’ 등등….

질문들을 종합해보면 실제 영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TV 속 장면들이 일상적인건지 아니면 방송에 나온 그 학급이 특별한건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에 ‘정말 그렇다. 저 학급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라 오히려 나는 현실 세계의 순한 맛이라고 느꼈다’라고 답하면, ‘와, 진짜 예전과 정말 달라졌네’, ‘애들 가르치는 거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들 진짜 고생한다’, ‘나는 진짜 못하겠다. 수고 많다’라는 격려가 이어졌다. 

사실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난 다음 ‘역시, 교사가, 그리고 그중에도 초등교사가 제일 편한 게 맞네’라는 반응이 나올까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그동안을 되짚어보면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 1위가 교사라는 통계 자료는 먹고살기 편하며 직업의 문턱이 제일 만만해서 그렇다는 논리를 위한 자료로 사용되었고, 학교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이야기 속 결말은 ‘나도 교사나 할 걸 그랬다’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프로그램 속에 나오는 장면들은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정말 순하고 순한 맛이었기에(물론 어렵고 힘든 장면임은 분명하다.) 내가 담당 PD도 아닌데 시청자의 반응이 괜히 걱정되고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그리고 바람직한 반응이라니!

내가 TV 속 주인공이 아님에도 뿌듯했고 나의 고됨과 힘듦을 이제야 인정해주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사실 누가 알아달라고 교사가 된 게 아니고,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나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살면 되지’라고 주문처럼 외우면 살아왔지만, 잊을 만하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선생님이 제일 편하지’, ‘아, 나도 선생이나 될 걸 그랬다’라는 말이 얼마나 기운 빠지게 하고 상처가 되는 말이었지 아마 몰랐을 거다. 

사실 요즘 직장은 교사나 공무원처럼 정년이 보장되는 곳보다 일 년도 버티기 힘든 곳이 많고, 근무 여건 또한 교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곳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선생님도 힘들어요’라고 쓰면 오히려 그분들께 상처를 드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과 염려가 든다. 만약 그랬다면 그건 저의 부족한 경험과 메마른 감수성 때문이며 좀 더 넓고 깊은 생각과 경험을 쌓도록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말씀드리며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다만 ‘아무튼 출근’ 선생님 편을 발판 삼아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선생님’이라는 직업 역시 그리 ‘만만한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웬만한 어른이면 다 아는 내용을 가르친다고 해서 가르침이 쉬운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하교한 후에 노는 것이 아니며 교과서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교실에는 학생 수만큼의 다양한 세계가 있으며 그 세계를 아우르며 가르치는 한 명의 선생님이 계시고 교실 밖을 벗어나면 일반 직장 세계와 같은 직업 고충이 따른다. 

이러한 이해의 바탕 속에 비판할 것이 있으면 비판을 하고 꾸중을 할 것이 있으면 꾸중을 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서 부모님의 학창시절에 있었던 경험을 가지고 현재 자녀들의 선생님들을 비난하지 않기를 바라며 신문 기사나 TV에서도 만만한 가십거리로 교사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란다.  

교사도 그리 만만한 직업은 아니라는 최소한의 존중(존경이 아니고 존중임을 강조합니다)이 기저에 깔리고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비판과 상생을 위한 토론 거리가 오고 가기를 바란다. 그러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우리 교사들도 그동안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는 데에 썼던 에너지를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랑하는 데에 쏟아부을 것이라는 약속을 감히 드리면서 글을 맺는다.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자양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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