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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아, 오만 접고 통 큰 골목대장이 돼라!
미국아, 오만 접고 통 큰 골목대장이 돼라!
  •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편집인(전 대전일보사 대표.발행인.사장)]
  • 승인 2018.02.10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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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편집인(전 대전일보사 대표.발행인.사장)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편집인(전 대전일보사 대표.발행인.사장)

이른 새벽, 평창 올림픽 행사에 참가했던 중앙 언론사 대표의 전화벨에 깼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미국이 오만한 골목대장이 됐다고 흥분했다. 외교적 결례와 무례에 대해 끼어들 틈도 없이 말이다. 얘기는 도널드 트럼프와 가까웠다가, 해임설이 돌다가, 살아났다가 종잡을 수 없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의 평창 행보 때문이다.

어젯밤 70억 지구인들의 겨울 대잔치인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됐다. 평화, 화합, 비전 등의 온갖 갈등을 씻고 미래로 가자는 게 슬로건이었다. 냉전덩어리 한반도, 남한과 북한을 갈라놓은 휴전선 바로 코앞에서 말이다.

-미국 부통령, 외교 전례 깨고 늦장 입장.

그래선지 펜스 부통령과 아베 일본수상, 시진핑 주석의 특사인 한정 상무위원,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친여동생 김여정 중앙당 제1부부장이 개막식에 참석했다. 남북한 선수들이 같은 옷, 같은 장갑, 같은 모자를 쓰고 한반도기를 들고 동시 입장해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북한의 이런 화해 제스처가 거짓이 아니길 바란다. 지금으로는 위장평화공세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북한이 과거 6.25 직전 고 조만식 선생과 남파된 프락치 주모자 간의 포로교환 합의를 파기한 뒤 몰고 온 한국전쟁이 생각나서다. 6.25를 일으켜 한국군과 유엔군 18만 명이 생명을 잃고, 저쪽도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 무고한 우리 국민도 99만 명이 숨졌다.

뿐만 아니다. 충남 서천 출신 구득환 국회의원 등 8만 5,000명의 각계각층의 고위 인사들을 납치해 갔다. 정치인들과 저명한 학자·종교인·공무원들이 상당수다. 이를 목격한 북한주민 300만 명 이상의 주민들이 공산학정을 탈출해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래서 북한의 유화제스처를 심각하게 봤던 것이다.

그러나 어젯밤 올림픽 개막과 이전 각국 지도자들의 리셉션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미국의 통큰 정치'가 필요하다고 전해줬다. 곧 미국이 이번 평창에서 보여준 '속좁은 외교'는 그저 오만함이었다고 혹평을 했다. 세상에서 많이 갖고 힘센 골목대장 역할을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얘기는 펜스 미 부통령의 언행이다. 그는 개막식 날인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하는 평창겨울올림픽 사전 환영 리셉션에 '사실상'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펜스 부통령의 불참 탓에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첫 북-미 정상급 만남도 무산됐다. 사전에 조율된 정상급 인사들의 공식 행사에서 펜스 부통령은 이 약속을 깼다.

-문 대통령 환영사 땐 아예 아베 일 총리와 별도의 방에서 대화.

한쪽에선 펜스 부통령의 처신, 미국의 힘을 보여준 것이니 이해하자고 한다. 외교적 상식을 벗어난 결례일 뿐이라고 덮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미국이 북한을 향한 민낯을 그대로 보였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이 만나고, 향후 북-미 대화로 연결하려는 정부의 대북정책도 당연히 꼬이게 됐다.

평창에 나간 현장 기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 블리스힐스테이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한 외국 정상급 인사와 배우자,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등 국내외 주요 인사 200여 명을 초청해 사전 리셉션을 열었다.

문 대통령과 영부인 김정숙 여사가 앉을 원형의 주빈석(헤드 테이블)에는 12명이 앉게 됐다. 김영남 위원장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부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한정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 부부,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부부, 구테흐스 사무총장 총 12명으로 정해졌다.

미리 돌린 보도 자료에 의하면 펜스 부통령의 자리는 문 대통령의 왼쪽 첫째, 김 위원장의 자리는 문 대통령의 오른쪽 넷째에 배치됐다. 문 대통령 부부는 귀빈들을 따뜻하게 맞으려고 1시간 전에 행사장에 나왔다. 그러면서 귀빈 한 사람 한 사람과 인사와 악수로 대화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그러나 사전 조율된 펜스 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오후 6시에 정해진 행사 시작 시각을 10분이나 지난 뒤 나왔다. 이들은 다른 귀빈들 같이 문 대통령과 별도의 사진촬영도 없었다. 6시 11분쯤 화기애애한 리셉션장 분위기가 심드렁했다. 문 대통령은 당혹했을 테지만 표정은 이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수상의 오만함은 더 있다. 문 대통령이 리셉션 환영사를 하는 동안에도 그들은 다른 방에서 대화를 나눴다. 환영사를 듣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였다. 문 대통령이 환영사를 마칠 때까지 펜스 부통령과 아베 총리는 입장하지 않은 채 별도의 방에서 두 사람만 따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하다못한 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이 아니었다면 한 자리에 있기 어려웠을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함께하고 있고 함께 선수들을 응원하며 미래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환영사를 했다 문 대통령은 그리고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던 방으로 가 한·미·일 3자 사진촬영을 했다. 세 사람은 6시 39분쯤 나란히 리셉션장으로 입장했다. 행사 시작 40분을 넘기고서야 참석하는 펜스와 아베였다.

-김영남.김여정 빼고 악수한 뒤 '휑'하니 사라져.

리셉션 행사가 이제부터는 잘 되겠지 했지만 더 가관이었다. 현장 기자와 현장 참석자들의 말로는 펜스 부통령은 주빈석에 앉지 않은 채 김영남 위원장을 뺀 나머지 정상들과 악수를 한 뒤 6시 44분께 행사장 밖으로 바로 퇴장했다. 힘있고 가진자의 특징인 주최국과 참석자들에 대한 결례를 넘어 무례, 오만뿐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 측의 펜스를 감싸는 태도는 더 우습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펜스 부통령의 오만한 행동에 “펜스 부통령은 미국 선수단과 6시 30분 저녁 약속이 돼있었고 사전 고지가 된 상태였다. 테이블 좌석도 준비되지 않았다”라고 애둘러 해명했다. 이어 “포토세션에 참석한 뒤 바로 빠질 예정이었으나 문 대통령이 ‘친구들은 보고 가시라’라고 해 리셉션장에 들른 것”이라고 거들었다.

윤 수석의 말대로면 오전에 밝힌 “헤드 테이블 좌석 배치에 관해 북·미 양쪽의 양해를 받았다”라며 펜스 부통령이 리셉션에 참가한다고 설명한 것은 뭔가. 청와대 측이 “펜스 부통령과 김영남 위원장이 한 자리에 앉는 것만도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도 평가한 것은 어쩔 것인가. 실제 만찬이 시작되기 전 헤드 테이블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라는 명찰이 놓여있었다

이를 보면 결국 펜스 부통령은 충동적이고, 돌발적인 오만으로 리셉션장을 박차고 나간 것이 된다. 외교사에도 드문 일이다. 외교를 모르는 외교 후진국이나 독재의 나라에서 흔히 보는 태도인 것이다. 이를 본 전·현직 유엔 고위급 관계자나 외교전문가들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될 일이라고 펜스 부통령을 꼬집었다.

문제는 북한 김영남 위원장이나 김여정 제1부부장과 한 자리에 앉는다는 사실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만하고 심각한 외교적 결례는 문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남북 대화에 이은 북-미 대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리셉션 참석 약속 파기라는 외교적 무례를 무릅쓴 채 노골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이를 알 수 있는 대목이 있다. 개막 하루 전에 펜스 부통령을 만난 문 대통령은 이번 평창 평화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대화를 확대해, 북·미 대화를 통해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정책을 설명하고 우방국의 인내와 협력을 요청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한반도 평화구상을 모를 리 없는 펜스 부통령은 “미국은 북한이 영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북한 핵무기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포기하는 그날까지 미국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압박을 계속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한국에 오기 전에도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 한 정상회담을 통해 “곧 북한에 가장 강력하고 공격적인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펜스 부통령의 이 같은 돌출과 무례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단계적 대북구상에 차질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의 북한에 대한 대북 강경론 때문이다. 한국민에게 보여주는 그의 태토와 무례로 뜻밖의 녹록잖은 장애물을 만나게 됐다.

6.25 전란 이후 태어난 지금의 60, 70대들이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닐 때의 유행어가 있었다. 학교에서든 '미국×을 믿지말고, 소련×에게 속지말라. 안그러면 일본×이 일어선다'라던 말이다. 행사를 주욱 취재한 한국의 주요 언론사 간부는 '그말 있제... 미국 × 믿지 말라고 하던 것"이라며 개탄했다.

힘없는 우리는 혈맹이고 6.25의 위기에서 생명까지 던지며 건져준 고맙다는 미국. 또 오만한 무례가 그들의 문화라면 우리가 이해하겠지만 말이다.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이는 자리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도 있다.  한·미·일과 유엔 등 국제사회가 진정으로 추구하는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도움의 방편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논리가 아니다. 우리를 얕보고 무시하며 제멋대로 하려는 미국은 통이 큰 외교를 해야 제대로 된 골목대장 노릇을 해야 한다. 큰 자, 많은 것을 가진 자, 힘있는 자 쪽에서 통 크게 나와야 대화가 되고, 발전하는 법이다. 속 좁게 노는 미국, 우리는 펜스 부통령을 통해 본 미국의 오만함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있는 자가 그걸 버린 통 큰 모습이 곧 미래를 함께가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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