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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칼럼] 나마스떼의 여행과 사진-남아프리카공화국
[포토칼럼] 나마스떼의 여행과 사진-남아프리카공화국
  • [충청헤럴드=이필구 기자]
  • 승인 2018.02.12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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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12 머나먼 자유로의 여정

크루거 국립공원 사파리 관광을 마친 우리는 12월 7일 오후 넬스푸르트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케이프 타운에 도착, 이곳에서 3박하면서 여유있게 도시 곳곳을 돌아본다. 남아공은 남한의 약 12 배의 넓은 국토에 우리와 비슷한 약 5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이다. 그 중 백인은 약 13%, 흑인 75%, 나머지가 혼혈인 등이다. 주요 도시로는 입법 수도이며 대표적인 관광 도시인 케이프 타운, 가장 큰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인구 약 1,200 만), 행정 수도인 프리토리아, 사법 수도인 블룸폰테이 등이 있다. 그 중 해안에 위치한 케이프 타운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기후도 온화하고, 훨씬 깨끗하고 안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1886년 금광이 발견되어 골드러시로 세워진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와 인근의 프리토리아는 자동차 번호판에 함께 GP라는 문자를 사용하는데, 치안 상태가 좋지 않아 위험한 곳임을 비꼬아서 사람들은 ‘Gangster’s Paradise’라고 할 정도이다.

테이블 마운틴
테이블 마운틴

8일 아침 케이프타운의 랜드 마크인 테이블 마운틴 탐방으로 도시 관광을 시작한다. 360 도로 회전하는 케이블카로 해발 1,080m의 정상 부근까지 올라 1시간 정도 둘러 보며, 시내와 사방의 바다 경치를 즐긴다. 1488년 포르투갈의 항해가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유럽인 최초로 발견한 이 산은 예로부터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하는 선원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지질학적으로는 약 4-5억 년 전에 얕은 바다에 형성된 거대한 사암이 지각 운동으로 융기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길이가 약 3.2km인데 왼쪽에는 데블스 피크라는 원뿔 모양의 산이 있고, 오른쪽에는 라이온즈 헤드와 시그널 힐이 있다. 데블스 피크는 구름이 걸려 있는 때가 많아 이를 악마의 담배 연기라 빗댄 것이고, 사자 머리 모양이라 해서 라이온즈 헤드, 예전 바다로 들어오는 배들을 감시하고 신호를 보냈던 곳이어서 시그널 힐이라 한다. 

희망곶 (Cape of Good Hope)
희망곶 (Cape of Good Hope)

이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소 희망곶(희망봉은 잘못 번역된 말이라 생각되어 고쳐 본다)을 찾아 간다.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 약 1시간의 미니 트레킹을 하여 대륙의 최남단 희망곶(Cape of Good Hope)를 찾아가, 그 옛날 범선을 타고 인도를 향해 멀고 험한 바다를 항해하던 뱃사람들의 고되고 긴 여정을 상상해 본다. 우리도 인생 역정에 고난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이들처럼 꿋꿋이 버티고 희망을 다시 불태워야 할 것이다. 이 도시는 1652년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아시아 무역의 보급기지로 건설되었다가 영국에게 빼앗겨 영국 식민 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현재는 남극 관측의 보급 기지로도 이용되고 조선, 기계, 냉장, 농수산물 가공 등의 상공업과 금융업도 발달했으며, 항구와 도로, 공항을 갖춘 교통의 요지로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다.

프랑슉
프랑슉

9일에는 남아공을 세계 9위의 와인 생산국으로 성장시킨 밑바탕이 된 프랑슉을 찾아 나선다.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풍광이 좋은, 광대한 규모의 분지인데, 산기슭과 평야가 온통 포도밭이다. 우리는 한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을 시음하고, 포도 농장 안의 레스토랑에서 소풍나온 듯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프랑슉은 프랑스 사람들이 사는 골짜기라는 뜻이란다. 예전 유럽에서 신구교도 사이의 분쟁이 있을 때, 프랑스와 스페인 등은 구교도의 나라였고,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신교도의 나라였다. 각국의 소수 종파 사람들은 박해를 많이 받게 되었는데, 이 때 프랑스의 신교도 농민들이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피신해 왔다. 당시 남아공을 지배하고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이들을 남아공으로 이주시켜 식민지를 개척하게 하였다. 이 이주 프랑스 농민들이 오늘날 남아공 와인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들이다. 이 밖에도 물개 서식지인 도이커 섬, 쇼핑몰과 식당, 카페 등이 집중된 워터 프론트, 펭귄 서식지 볼더스 비치 등을 둘러보며 남아공 여행을 마무리한다. 

볼더스 비치
볼더스 비치

여기서 오랜 시간 흑인들을 차별하고 학대했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과 이에 항거하여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찾기 위한 머나 먼 여정을 되짚어 본다. 남아공은 세계에서도 가장 풍부한 광물 자원을 보유한 나라로 금, 망간, 크롬, 형석의 매장량이 세계 1위이고, 우라늄, 다이아몬드, 철광석 등 다양한 자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1967년 세계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을 성공시키고, 핵무기를 개발, 보유했다가 스스로 폐기하는 등 의학, 과학등도 높은 수준에 있다. 아프리카에서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현저하게 경제 규모와 수준이 높고, 한때 란드화가 달러의 가치를 능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에 의한 고립 등으로 많이 쇠퇴했었다.

워터 프론트
워터프론트

아파르트헤이트가 종식되기까지에는 남아공의 양심으로 불리는 투투 대주교, 살아있는 성자로까지 추앙받는 넬슨 만델라 등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끊임없는 투쟁, 이에 따른 국제사회에서의 호응과 도움이 있었다. 특히 투투 대주교,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흑인은 물론 백인들에게까지, 나아가 전 세계인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들이 비폭력의 평화로운 방법의 항쟁으로 일관한 점이다. 27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만델라의 첫 마디는 백인을 향한 보복이 아니라, 용서와 화합이었다. 진실은 규명하되 용서하고, 화합하여 정의로운 새 나라를 함께 건설해 나가자는 것이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어 그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구성하여 투투 대주교를 의장에 임명하고, 그 이념을 현실화해간다. 이에 투투 대주교는 ‘무지개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며, 다양한 인종 사이의 화합과 공존을 추구해 나간다.

워터프론트의 넬슨 만델라 모형
워터프론트의 넬슨 만델라 모형

만델라가 20 세기를 대표하는 위인으로 크게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해 준 것은 바로 27 년 동안의 긴 수감 생활이었다. 그는 이 긴 고난의 시간을 통해 오히려 스스로를 속박했던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한 차원 더 높은 세계로 정신적인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좁은 관점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본다면 그 피해자는 오직 흑인이다. 그러나 좀더 넓고 깊은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피해자는 남아공의 흑백 모두의 국민이고, 나아가 존엄성을 훼손당한 인류 전체인 것이다. 그는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오래고 더 깊은 사색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적 한계를 벗어나 더 높은 차원에서 시대의 비극을 바라보는 혜안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꿋꿋하게 흑백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고매한 인격과 사상으로 무장하게 된 것이다. 
그의 진실하고 고귀한 언행에는 인간의 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담겨 있고, 행동하는 양심과 지성의 한결같이 타오르는 불꽃은 세계인의 마음에 큰 울림으로 다가 온다. 살아 있는 성자라고 불림에 손색이 없다.
또 그는 국민들의 열광적이고도 절대적인 신임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1차 임기를 마치고 바로 퇴임한다. 그가 장기 집권을 하고자 했다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국민들이 더욱 바라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초연히 권좌를 내주고 떠났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뒷모습인가? 주변 아프리카 나라의 대부분 정치 지도자들이 장기 독재 집권을 하며 부정부패를 자행하는 것과 너무도 대비된다.
그의 주옥 같은 어록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똑같이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이 억압받고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한 그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나의 의무였고, 앞으로도 몇 번이고 그렇게 할 것이다.'
'직함을 가진 사람이 꼭 영웅은 아니다. 어느 공동체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세계를 자신의 활동 무대로 삼고, 빈곤과 문맹, 교육 부재 같은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가장 큰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의 영웅이다. 어느 나라의 수장이든 이런 자질이 있다면 그는 나의 영웅이다.'
'안타깝지만 인류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은 우리 모두의 탓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곳에서 우리 인간은 협상과 대화, 이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어떻게든 핑계를 찾아내 폭력을 쓰려 한다.'
  오늘날 흑인들의 인권도 많이 개선되고,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란 자부심을 갖고 생활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만델라와 투투 대주교가 열망했던 꿈은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극심한 빈부의 격차, 일부 소외된 지역의 치안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실제로 케이프타운 외곽의 가난한 사람들의 집단 거주지를 지나면서 본 모습은 한심스런 것이었다. 함석으로 지붕과 벽을 이어 만든 오두막들이 다닥다닥 붙어 큰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전기를 보내주고 공동 수도와 공동 화장실을 만드어 주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내부까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화재와 위생 문제 등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 뻔하다. 그런 곳일수록 왜 그리도 아이들은 많은지......  또한 농촌지역에서 점점 심각해져 가는 백인 농장주 살해 범죄가 매년 수십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 나라의 경제 침체와 인종 간 긴장 상태, 이에 따른 폭력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여전히 다른 산업과 함께 농업 부문에서도 백인들에게 부가 편중된 상황에서 흑인들의 불만이 커져가는 가운데 일부 극좌파 정치인들의 '백인들로부터 농장을 빼앗자'는 선동도 보태진다. 이런 상황에서 백인 사회는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나기도 한다. 케이프 타운을 제외한 다른 지역은 관광객들이 여행을 꺼릴 만큼 위험한 곳으로 인식되어 있다. 한번 잘못 접어든 역사의 과오를 바로잡는 것은 이렇듯 험하고 어려운 일이다. 
만델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어 바른 정치를 하고, 사회적 갈등만 해소된다면 남아공은 훨씬 더 평화롭고 풍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듯 심각해져 감에도 불구하고 만델라 대통령을 이은 흑인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모두 입으로는 그의 유지를 받들겠다고 떠들어대지만, 속으로는 오로지 자신의 가족과 일가붙이에게 특혜를 부여하고,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현재의 대통령도 비리로 인해 법원에 재판 계류 중이고,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자리를 유지하면서 뻔뻔한 짓을 계속한다고 한다.

워터프론트
워터프론트

여기서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한국인교포 젊은이가 흑인 변호사를 친구로 사귀게 되었는데, 그의 집 파티에 초대되었다. 으리으리한 궁전과 같은 대저택에서 산해진미가 차려진 가운데 호화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친구가 자기 집의 차를 보여주겠다며 지하 차고로 안내하여 따라가 보니, 대당 몇 억씩을 호가하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등 명품 외제차가 7대나 있더란다. 이에 크게 놀라자 친구는 ‘뭐 이쯤으로 그리 놀라나’하는 듯이 자기 어머니에게는 전용 비행기도 3대나 있다고 말하더란다. 알고 보니 그의 어머니는 현직 장관이었다.
어떻게 장관의 월급으로 이런 초호화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만으로 그칠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정치 지도자들과 국민들도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지 않으면 안되리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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