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을 걷다 보면 횡단보도를 자주 만난다. 횡단보도는 보행자가 도로를 건널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보행자가 길의 건너편으로 갈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도 빠른 방법을 마련한 것이다(a crosswalk for pedestrians). 일반적으로 교통신호등과 함께 설치되기 때문에 차량의 통행을 막는다고 인식한다.
그 흐름을 보완하기 위해서 육교나 지하도가 대체시설로 등장한다.
그러나 육교는 오르내리는 불편과 위험이 있고 지하도 역시 침수와 차량저해의 우려가 크다.
횡단보도 때문에 차량의 통행이 일시적이지만 제한을 받는 것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여러 가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가장 쉬운 게 신호등을 설치하지 않는 방법이다. 쉽고도 경제적 부담이 없는 이 방법은 그러나 매우 위험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은 곳에 이 방법을 쓴다. 그런데 이 방법에서 위험요소는 사람이나 차량이나 똑같이 갖게 되기 마련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는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무시하기 일쑤이다. 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가지 않는다.
횡단보도를 본체만체 도로 한 가운데로 직진해서 건너가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하면 차량도 마찬가지이다.
역시 차량 운전자들도 횡단보도를 쉽게 무시해버린다.
신호등이 없으니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가 버린다. 직진 일변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가 손을 들어 주의를 환기해 주어도 으레 그냥 달려 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바로 어제 내가 겪은 고통이다. 척추수술로 정양 중이기에 지팡이를 짚고 걷는다.
지인과의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서둘러 걷는 참이었다.
2차선 도로에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 이르렀다. 연달은 차량의 직진광경에 횡단보도 이쪽 끝에서 얌전히 차량행렬이 중단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 게제가 왔다. 양방향 도로에 차량의 질주가 잠시 중단됐다. 차량의 연속선이 끊겼다. 그래서 지팡이를 내밀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딘 순간이었다.
어느새 검정색 물체가 내 왼 쪽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황급히 손을 들어 아래위로 흔들었다.
엄청난 진동음이 귀를 때린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적신다. 머리가 띵하니 뭐가 뭔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순간의 공포로 신경이 마비되었나 싶었다.
찰나의 위기를 간신히 극복했다. 죽음을 간신히 모면한 것이다.
바로 ‘횡단보도가 횡사보도’가 될 뻔한 경우였다.
고속으로 달려온 자동차 안의 운전자는 20대 애숭이로 보여 마음이 더욱 아팠다. 가증스런 형국이 아닌가.
도대체 이런 게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아니고 무엇인가. 횡단보도에 대한 인식이 아주 잘 못 되어 있다는 반증이 아닌가.
교통사고 일등 국가다운 행태가 아연실색할 지경에 이른 것이 몹시 슬프다. 신호등 숫자가 세계적으로 많은 대한민국의 민낯이 정말 부끄럽다.
지금 두 번째 올림픽까지 유치해서 신이 나 있는 판국에 횡단보도에서의 횡사를 모면한 게 그리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처량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신사의 불청객 불셋(Bull shit)이라는 욕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어느 작고 한적한 대학도시에 교통신호가 거의 전무 상태인데도 그 곳의 미국인들은 교통사고라는 말 자체도 잘 쓰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내가 공부하던 미국대학 언저리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가 꽤 많다. 그렇다고 교통정리를 하는 교통순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네거리 도로에 먼저 들어 선 차량이 우선권을 가지고 먼저 출발하면 그 다음 차례가 되는 차량이 뒤따라 떠나는 순서를 잘 지킨다.
어쩌다 멍청한 운전자가 실수하면 나머지 운전자가 손가락질을 해댄다. 그러니 거기에선 횡단보도가 횡사보도로 둔갑할 일이 전혀 없다.
평화와 자유가 충만한 도시이다. 시민들은 질서와 양보의 아름다움을 잘 알고 잘 지킨다. 그래서 그들이야말로 행복한 국민, 다복한 시민들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적인 피날레를 25일 장식했다. 이를 축하하러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영애이자 백악관 수석 고문인 이방카 여사 일행이 어제 방한했다.
자가 전용기가 아니고 대한항공 일반석을 타고 내한했단다. 훤칠한 키에 낭랑한 음성으로 ‘동맹관계를 확고히 하기 위해’왔다는 도착일성은 매우 의미 있는 발언으로 들린다.
북한의 김영철 부위원장도 25일 오전에 방한했다. 승용차로 통일로를 달려온 모양이다.
미북 양국이 평창의 올림픽을 높이 평가해서 개막과 폐막의 양대 행사를 축하하러 온 것이다. 둘 다 고맙다. 정치를 떠나서 말이다.
선율과 군무와 철학을 디지털 시그널로 휘황찬란하게 만방에 과시했던 개막식의 장엄하고도 진중한 광경 못지않게 폐막식도 역시 대한민국의 저력과 위세를 바탕으로 보다 고귀하고 숭고한 동양적 윤리와 질서와 포용의 도학을 굵은 선과 넓은 줄로 표출하는 성취와 보상의 잔치마당이 되었기를 기대한다.
무법 횡단이 없는 태극 괘를 높게 휘날리는 멋을 보여주기 바란다. 횡단보도가 결코 횡사보도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