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제안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1987년 외교문서 중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의해 밝혀졌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당시 김경원 주미대사가 최광수 외무장관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그해 12월9일 백악관에서 미소 정상회담 때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한반도에서 중립국가 창설 및 완충지 대화'에 관한 북한의 제의를 담은 비공식문서를 전달했다.
김경원 전 주미대사(1936-2012)는 평남 진남포 출신으로 뉴욕대와 고려대 교수를 거쳐 1975년 39세에 대통령 국제정치담당 특보로 임명됐다. 1980년에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발탁됐고, 주유엔대사를 거쳐 1985∼1988년 주미대사를 지냈다.
![북한이 지난 1987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에게 제안한 사실이 밝혀졌다.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레이건 대통령이 미소군축합의안에 서명하고 있다[사진=디플로머시제공]](/news/photo/201803/3147_4063_5738.jpg)
문서는 '한반도 완충지역 설정 및 중립국 창설을 위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제안'이라는 제목이다.
북한은 문서에서 ▲남북한 병력의 각각 10만명 수준 감축 및 단일민족 군대로의 통합 ▲핵무기 및 외국군 철수 ▲불가침 선언 및 휴전협정의 평화조약 대체 ▲군사조약을 포함한 모든 대외조약 및 협정폐기 ▲연방공화국이 단일국호로 국제연합에 가입 등을 제의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 문서를 기계적으로(dispassionately) 직접 건네주면서 "북한으로부터 받아온 것"이라고만 설명하고, 북한의 이같은 제안에 대한 소련의 입장은 별도로 전하지 않았다.
이에대해 레이건 대통령도 별다른 반응없이 이를 전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미대사는 "미 측은 소련이 북한의 요청을 받고 마지 못해 이를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정상회담시 동 문서를 미측에 전달했다는 사실을 통보해주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최 장관에 보고했다.

미 측은 "이 문서가 대외적으로 알려질 경우, 향후 한반도 문제 관련 미소간 협의에 심각한 영향을 가져올 우려가 크다"면서 "'문서 전달 사실과 그 내용이 절대 대외에 알려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재차 당부했다고"도 전했다.
김 대사는 "이후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미소 정상간 비공식 오찬에서 북한측 제의를 검토했는지 물었으며, 이에 콜린 파월 당시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아직 검토하지 않았으나 곧 검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고 보고했다.
최 장관은 김 대사에게 전보를 통해 "북한측 제안은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는 우리측 입장을 밝혔다.
최 장관은 "남북한간 문제는 남북 당사자간 직접 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가능한 문제부터 토의함으로써 실적을 쌓아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이어 "남북 외무장관 회담을 통해 양측이 희망하는 모든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방안"이라고도 언급했다.
그러면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상호 신뢰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한 바 이를 위해서는 북측에 의해 일방적으로 중단된 기존 대화의 재개도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측의 이같은 입장도 미 국무부를 통해 소련 측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