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故) 이만섭 전 국회의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90년대 초,중반 쯤 이었다. 대전 본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서울로 발령 난 때다. 그 분 역시 제 14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막 끝냈을 무렵이다. 국회의장을 지냈지만 당시 국회의원이었다.
그는 그 무렵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청와대와 불편한 관계였다. 청와대에서 날치기를 해서라도 어떤 법들을 바꾸라고 요청을 받았지만, 그가 ‘노(NO)’를 했던 것이다. 여권과 정부, 심지어 YS까지 대놓고 이 전 의장을 공격했었다.
그분을 만났을 때는 그분 말대로 날치기를 하지 않는 바람에 전반기만 의장을 마친 때였다. 그 분은 여권이 그 감정으로 비토하는 바람에 물러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저런 끝에 ‘여권의 공격이 아직도 여전하다’는 말을 던졌다. 그 분은 “비난, 비판할 사람한테 해야지, 난 기자 출신이야... 안 그런가? 비판할 자격을 있는 자만이 비판하라고 해라”고 했다.
비판할 자격. 무엇이냐고 했다. 그 분은 “기자할 때 이기붕이 보고 면전에서 물러나라고 한 게 나 아니냐. 국회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이 국민을 위한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심의하고 의결한다. 국회에서 날치기라니. 내가 정치하는 동안에는 그런 일이 없다”고 했다.
YS로부터 서슬퍼런 날치기 요청이 있지 않느냐고 했더니 노코멘트다. 이어 “내 생전에는 날치기가 없다. YS든 누구든 안 된다. 그럴 자격이 있어야지.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사정이니 뭐니 해도 난 깨끗하다“하고 끝을 맺었다.
20년이 훨씬 지난 일이다. 일선 기자로 뛰면서 그분의 ‘비판 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비판을 하라. 나는 그런 자격이 있는가’를 마음 깊이 외쳤다.
정치부 기자만, 충청권 정치담당기자에서 여야 중앙당,국회, 청와대까지 20년 가까이 뛰면서 나는 그분의 ‘비판할 자격’을 되새겼다. 야당논리에 휩싸여 여당과 정부를 독하게 탓할 만한 자격이 있는가, 구태에 빠졌다고 정치인에게 비판, 비난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약한 자를 위한 다는 명분으로 권력자나 고위층, 부유층만 색안경을 쓰고 본적이 없는가... 그런 나를 볼수 있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국회의원 재직시절 처신을 놓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그가 지난 19대 국회의원 때 금융기관 등 피감기관 예산으로 세 번이나 해외를 다녀온 것이 논란이다. 그와 청와대, 여권은 관행이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야당은 로비에 따른 외유 등으로 비판하고 있다.
지난 국회 때 국회 정무위원으로 야당 간사를 맡아 2014년 3월과 2015년 5월 한국거래소와 우리은행,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예산으로 각각 우즈베키스탄과 중국·인도, 미국·유럽 출장을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제1 야당은 자유한국당 등이 피감기관의 로비에 따른 외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바른미래당역시 사퇴해야한다고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보수진영은 청와대에서 그를 발탁하면서 밝힌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개혁의 동력이 될 도덕성이 있는 적임자라는 설명은 허구이고 도덕성의 근간을 스스로 무너뜨렸다고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급기야 그는 8일 해명자료를 냈다. 그는 “(해당 기관이) 국회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거나, 현장점검을 위해서 갔던 공적인 출장이었다. 출장 후 어떤 영향도 받지 않고 엄정함을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KIEP지원으로 출장을 다녀온 이후엔 오히려 국회 상임위에서 예산 삭감과 지부 설립 불승인 조처가 이뤄졌다고 한다.
그는 “국민의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죄송한 마음이 크다”면서도 공적인 목적의 출장이었다고 했다. 그것이 김 원장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 이유야 어떻든 국회의원이 국회 예산이 아닌 피감기관 돈으로 출장을 간 것 자체가 부적절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사퇴 요구도 정면 거부한 것이다.
물론 그의 해명에 수긍이 가는 면도 없지 않다. 우즈베키스탄과 중국 출장의 경우 기간이 2박3일로 짧았다. 또 상대국 참석자에 맞는 사람이 가야 한다는 기관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피감기관의 비용이었기에 부적절하지만 공익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야당 등이 주장하는 미국과 유럽을 다녀온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출장에는 구체적인 해명이 필요하다. 그가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 운영이 불투명하다고 문제가 제기하자, KIEP가 그런 답을 내놨다.
KIEP가 “그러면 직접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잡아 달라”며 김 원장과 당시 여당 의원(당시 새누리당 의원)에게 요청해 이뤄졌다. 그런 와중에 의혹을 가진 다른 의원은 막판에 출장을 철회했고, 그만 보좌진을 데리고 유럽까지 모두 9박10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김기식은 누구 인가. 그는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관행과 부패청산을 외쳐온 대표적인 개혁주의자다. 그릇된 접대 관행을 막자며 ‘김영란법’ 도입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정치부기자나 금융계에서는 ‘금융 저승사자’로 불렀다. 청와대는 그래서 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 개혁의 동력이 될 도덕성이 있는 인물이라고 발탁배경을 설명했었다.
여기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는 시민운동가이며, 부정과 그릇된 관행을 타파에 나선 시민운동가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더 철저한 개혁가의 자격이 있어야했다. 기업·기관의 ‘로비’는 당장의 성과는 물론 보험성(?)이 있다. 암묵적인 이익도 포함된다. 우리는 만연한 그릇된 관행을 아예 없애기 위해 몇 만 원짜리 식사와 선물, 경조사비까지 선을 그어 제한했다. 이른바 2016년 9월28일부터 시행하는 ‘김영란법’이다. 국회에서 그 법 도입을 주도했던 바로 그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피감기관 돈으로 국외출장을 다녀왔다. 그의 뛰어나고 성실한 의정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었던 국민에게 실망이 아닐 수 없다.‘국회의 관행’이라지만, ‘관행’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외부 지원의 국외출장을 국회의원 혼자서, 그것도 보좌관의 출장경비까지 지원받아 간 사례는 흔치않다.
그 중에도 유럽에 간 것은 더욱 설득력이 없다. 그는 KIEP 유럽지부 설치를 검토하기 위한 것으로, 다녀온 후 지부설립에 반대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KIEP의 로비를 거절했다는 말인데, 그런 의도를 알았다면 처음부터 가지 말았어야 옳다.
청와대등 여권내 전반적인 기류는 비판적인 세력이 문제를 부풀리는 측면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유 적법성에 따른 문제와 국민들이 요구하는 윤리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는 꼼꼼히 따졌어야 했다.
그가 맡은 금감원장은 금융기관을 감독하는 위치에 있는 만큼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따졌어야한다. 일각에서 나도는 말처럼 허술한 인사검증은 아니었는 지 말이다. 금감원장 자리는 막중하다. 그 자리는 57개 은행, 62개 보험사, 799개 증권·투자자문사 등 금융회사 4500여 곳을 감독한다. 그런 자리를 인사권자인 청와대가 혹시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닌 만큼 더 촘촘히 살펴야 했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그의 드러난 문제 등을 재검증해 금융권과 국민이 고개를 끄덕이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