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운수를 만난 사람이 행운아일진대 문재인 대통령이 바로 그런 행운아이다. 이런 행복한 운수는 6·25라는 동족간의 살육전에서 싹이 텄다. 대한민국 군대와 미국 군대가 9·28수복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북진을 계속하다 중국의 떼거리 군대가 물량공세로 수십만 때국 군인을 전투에 개입시키는 바람에 부득이 철수하는 함흥부두에서 용케도 미군군함에 올라 탄 부모가 대한민국 거제시에서 난민으로 정착한 행운이 오늘의 대통령 문재인을 행운아로 만들어 주었다.
경희대학교 대학생 문재인은 유신반대시위로 구속되고 학교에서도 제적되었다. 구속에서 풀려나서 곧장 강제징집 돼 전두환 준장의 여단에 입대했다.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문재인은 해군의 특전병으로 복무하면서 수상 경력까지 쌓는 행운아였다. 31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제적생이었던 그는 1980년 경희대 법학과 4학년 2학기에 복학한다. 그러다 전두환 정권에 항거하는 시위로 또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이때에 그는 구속 상태에서 사법고시 합격통지서를 받는다. 참으로 대단한 행운을 안게 된 것이다.
사법시험 성적이 수석이었지만 학생운동으로 수감되었던 전력 때문에 차석으로 밀리고 지망했던 판사직도 얻지 못 한 문재인은 사시 동기의 소개로 노무현 변호사를 만난다. 소탈하고 솔직한 변호사 노무현을 만난 문재인 변호사는 당장에 의기투합했다. 변호사 동업자가 되기로 작정한 그들은 나이의 차이와 사시의 선후배관계를 극복하는 슬기를 가졌다. 그들은 그 만남을 ‘행운의 운명’으로 명명했다. 그래서 1982년 『변호사 노무현 · 문재인 법률사무소』를 개소했다.
두 사람은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는 결심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재야운동에도 깊숙이 발을 들여 놓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안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노무현 변호사가 5공 청문회에서 대단한 활약을 하면서 유명세를 타게 된다. 노무현의원이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자 문재인 변호사는 민정수석으로 임명된다. 노대통령의 비실장으로 임기 내내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다. 큰 기쁨과 영광을 함께 했다(『운명이다』86쪽).
박근혜 정권이 탄핵으로 무너지고 촛불의 화염이 거창하게 타올라 인권변호사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 문재인, 노무현 정신의 계승자 문재인이 대통령이라는 통치권의 금자탑을 차지하는 행운을 맞았다.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대권을 잡았던 선배 노무현만큼 큰 어려움 없이 그리고 유니크한 정치경력이 없으면서도 엄청난 행운을 차지했다. 그러니 ‘행운아 대통령’이 아니런가.
그런 것만이 아니다. 10여년의 긴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이 애를 써서 유치에 성공한 평창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 대통령이 되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행운도 손 하나 거들지 않고도 얻어냈다. 그걸 계기로 남북정상회담, 나아가 미북정상회담을 주선하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일을 해 냈는가 자랑하고 싶지 않은가. 더구나 이 국제적 행사의 운전석에 앉는 행운까지 독차지할 참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 논의를 할 만큼이나 억세게 좋은 운수를 기뻐한 게 아닌가.
헌데 ‘호사다마(好事多魔)’런가. 옆에서 언제나 시커먼 짜장면만큼이나 때꾹이 묻어있는 ‘때국 사람’ 시진핑이 김정은이 하고 짝짜꿍을 하면서 문대통령의 행운에 모래를 끼얹었다. 재를 뿌렸다. 당장에 문대통령과 김정은이가 정상회담을 갖고 우리나라의 비핵화를 성취하려는 ‘끝판왕’꿈을 산산 조각내고 말았다.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때국’norm 노릇을 자행하겠다는 악의를 만천하에 들춰내면서 운전석을 뺏으려한다. 일종의 역적행위를 자청한 것이다. 거기에 김정은이 덩달아 춤을 추며 어깨를 으쓱댄다. 꼴불견이 되어서 그러는 게다. 이러니 우리의 ‘행운아 대통령’에게는 딜레마가 아닌가.
게다가 미국은 미국대로 하는 짓이 영 믿음직하지 않다. 옛 어른들이 ‘미국은 믿지 못 한다’고 일러 주신 말이 얼핏 머리를 스친다. 정말 그런가. 우리 대통령은 우리나라에서 미·북 정상회담을 하는 게 좋겠다고 요청했는데 요즘 평양이나 몽고 어딘가에서 하고 싶어 하는 눈치이다. 내둥 문대통령의 중개절차를 수용할 듯한 미국이 정녕 믿기 어려운 행동을 한다면 그 또한 우리 ‘행운아 대통령’의 ‘영(令)’이 영 서지 않는 꼴이 되잖겠는가.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대통령의 딜레마가 아닌가. 참으로 지저분해질까 걱정이다.
또 하나의 악재가 대통령의 딜레마로 가중되고 있다.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적폐성 클로즈업이 바로 그렇다. 대기업의 후원으로 해외연수를 다녀온 게 말썽이다. 사회정의를 피가 나도록 외쳐대는 참여연대 출신 조국 민정수석이 엉터리 검증을 했다는 사실부터 부정적인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청와대나 여당은 김기식 ‘두둔작전’에 몰입해서 귀가 막혀 있다.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이 클 뿐만 아니라 대통령의 행운이 바람 빠진 풍선이 될 지경이다. 이 딜레마는 전체 야당의 예리한 타깃으로 부상했다. 정권 초기의 각료임명에서도 국회와의 마찰로 국민이 신물나게 겪었던 불안감을 재탕 삼탕하는 게 곧 딜레마인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존스홉킨스대학에 부설된 한미연구소(USKI)의 소장 축출문제도 대통령에게는 작지 않은 딜레마가 되어 있다. 한·미간의 동맹관계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갈등 현상이 빚어질 조짐이다. 더더욱 야릇한 건 ‘38노스’의 붕괴초래이다. 역시 참여연대 출신 홍일표 청와대선임행정관의 강압작품으로 들어났다. ‘38노스’는 대공정보의 첨단기구이다.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관찰해서 보고해주는 기관이다. 이걸 없애면 북한의 공작상황 정보망은 먹통이 돼버린다. 간첩 하나도 잡지 않고 있는 국정원의 조무래기 정보 보다 훨씬 정밀하고 신속한 적국동태상황 인폼(information)이 주저앉고 만다. 이게 대통령의 딜레마가 아니고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