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탁드립니다!
아시다시피 개별 부스에 방음이 전혀 안 돼 기사 작성에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가급적 취재 등 업무와 무관한 대화는 삼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특히, 이곳은 도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기자실인 만큼 무심코 던지는 성희롱성 발언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사오니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 한 출입기자가 -
오늘(17일) 오전 11시쯤 충남도청 브리핑룸 내 게시판에 누군가가 작성해 붙인 글이다. 내용만 보면 단순한 민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벽보가 붙은 내막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고자 한다. 본 기자도 몸담고 있는 언론계의 이야기인 만큼, 어렵게 꺼내기로 결심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올해부터 충남도청 1층으로 이전한 프레스센터는 ‘개방형’을 표방하며 마치 카페 같은 분위기로 꾸며졌다. 방문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사무실처럼 딱딱한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듯하다. 기자 역시 상당부분 공감한다.
그런데 최근 기자실 내에서 불평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기자들이 너무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대화하면서 다른 기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것.
이는 기자실의 특성상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 집중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에게는 집중력을 저해하는 소음이 된다. 반대로 현장감과 속보 경쟁이 치열한 다수의 기자들이 사용하는 ‘공공장소’라는 점에서 여러 소리가 뒤섞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본 기자는 사실 전자에 속한다. 그래서 집중해서 기사를 써야 할 때는 개인적으로 준비한 헤드폰을 착용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이 정도는 서로 간에 ‘상식’ 선에서 통용되는 '이해의 폭'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를 넘어선 소리가 귀에 꽂히기 시작한다.
듣는 이 부끄럽게 만드는 음담패설과 노골적인 광고·구독 요구
위의 벽보가 붙기 전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이다. 그날의 주요 기사거리를 찾느라 집중하는 시간대인 만큼 기자실은 조용하다. 그런데 누군가의 통화 소리가 울린다. 듣기 싫어도 들린다. 저녁 술자리를 예약하려나 보다.
헌데, 표현이 너무 적나라하다. 듣고 있자니 점점 지나치다. “도청 기자들 모시고 갈테니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골라라”, “나이 많은 OO님은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벌떡벌떡 일어날 수 있다” 등의 대화가 이어진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여성 기자의 얼굴을 보기가 민망한 순간이다. 이게 안희정 전 충남지사를 비롯해 온 나라가 미투(#Me too)운동으로 민감한 이 시기에, 공직사회를 견제하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기자실에서 나올 소리인가. 개인 술자리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마치 보란 듯이 높은 데시벨(소리를 측정하는 단위)로 공표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편에서는 노골적으로 광고와 유료구독을 요구하는 대화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광고와 구독청탁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조용한 자리에서 당사자들끼리 대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럼에도 담당 공무원에게 요구를 하거나, 공공연하게 “(광고를 줄 수 없다고 하니) 도청을 출입할 이유가 없네”, “조져야(비판 기사를 쓴다는 은어) 광고가 나온다니까” 등의 대화를 서슴없이 나눈다.
더욱이 이런 대화들은 ‘그들만의 얘기려니’라고 넘기고 싶어도, 매우 크고 또렷하게 들린다. 심지어 그 안에는 수십 년차 기자라는 연세 지긋한 선배들도 있다.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편인 언론계의 관례상,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붙은 벽보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조치로 풀이된다.

개인의 일탈인가, 구조적 문제인가
해당 벽보는 오후 2시 30분 현재 쓰레기통에 구겨진 채 발견됐다. 그 글을 보고 심기가 불편했던 당사자가 기자실을 퇴장하기 전 구겨서 버린 것으로 확인됐다. 글에 공감하기 보다는, 같은 업계의 동료로부터 그런 시선을 받았다는 게 상당히 서운했나보다. 그러나 그 글을 올린 누군가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원인을 개인적인 소양 탓으로 돌려야 할까. 이 글은 벽보를 구겨서 버린 그 사람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기자실을 이전할 때 강조한 ‘개방형’이라는 취지를 어떻게 하면 잘 살릴 수 있을 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기자실은 특정 기자들이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도민의 알권리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위해 혈세를 들여 만든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사용돼서도 안 된다.
실제로 브리핑이나 간담회에서 몇몇 기자가 질문을 독점해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쪽 업계에서 “누구든 기자가 될 순 있지만, 아무나 기사를 쓰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기자실이라는 공간과, 이곳에서 이뤄지는 기자회견, 간담회 등을 ‘공공재’로 바라봐야 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특정인을 비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이번 기회로 그동안의 관례를 구겨서 버리자. 기자실(브리핑룸)이라는 공공의 영역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우리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