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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의 월요편지]세번째 찾은 자코메티전시에서 '좌장'을 배우다
[조근호의 월요편지]세번째 찾은 자코메티전시에서 '좌장'을 배우다
  •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 승인 2018.04.23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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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전 대전지검장,부산고검장, 법무법인 행복마루 대표변호사)

4월 15일 11시 저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을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열리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 전을 세 번째 관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2018년 4월 2일 자 월요편지에서 한 번 더 자코메티 전을 관람하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하였습니다. 첫 번째 관람에서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았고 두 번째 관람에서는 자코메티의 인생을 보았습니다. 저는 궁금했습니다. 세 번째 관람에서는 과연 무엇이 보일까?

아침인데도 관람객이 줄을 설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이날이 전시 마지막 날이어서 언제 다시 한국을 찾을지 알 수 없는 자코메티의 대작을 보기 위해 많은 관람객이 찾은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저도 그중의 한사람이고요.

이미 두 번 관람을 하여 어디에 무슨 작품이 있는지 어떤 벽에 어떤 글귀가 쓰여 있는지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지난번 꼭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기억에 담아두지 못한 글이 적힌 벽면 앞에 섰습니다. 그 벽면의 글은 카메라 발명 이전과 이후의 미술의 변화를 단순하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1838년 카메라의 발명/ 미술의 역사는 카메라 발명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이전 : 사물의 형태를 재현한다/ 이후 : 사물의 본질을 표현한다/ '사진이 발견된 이후로는 나는 사람을 똑같이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초상화를 그리지도 만들지도 못한다' 자코메티/ 이전 : 로댕의 [걷고 있는 사람] 1878/ 이후 :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 1960"   

 


그리고는 모든 작품을 건너뛰고 저는 한 작품을 찾아 달음박쳤습니다. 그 작품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 작품은 제목이 [앉아 있는 남자의 흉상 (로타르 Ⅲ)]인 높이 67센티미터의 남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입니다. 독립 전시실에는 똑같은 모습의 청동 작품과 석고 작품이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 마주 보고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푸른빛의 청동상보다는 황톳빛의 석고상이 더 마음에 끌렸습니다. 그것은 첫 번째, 두 번째 관람 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왠지 석고의 따뜻한 색깔이 저를 잡아당겼습니다. 마침 중년의 한 여성 관람객이 정면을 차지하고 있어 저는 그분 왼쪽에서 서서 감상을 시작하였습니다.

엘리 로타르는 1964년과 1966년 사이에 모델을 섰던 자코메티의 마지막 작품의 주인공입니다. 사진작가였던 그는 1930년대 유명 잡지의 사진작가로 상당한 명성을 누리기도 하였지만 성정이 불안했던 로타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빚 때문에 투옥되기도 하고 친구들이 경제적으로 도와주면 술과 여자로 탕진하였습니다. 자코메티는 그런 로타르를 자신의 모델로 씁니다.

자코메티는 타락한 로타르에게서 역설적으로 위대함을 찾아냅니다. 그가 가진 특유한 슬픈 시선을 발견한 것입니다. 제가 자코메티 전을 세 번째 관람을 하려 한 것은 그 눈빛 때문이었습니다. 한 5분이 지났을까요. 저는 로타르의 눈을 계속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제 옆의 그 여자분도 계속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저보다 먼저 와 있었으니 얼마나 서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분 역시 로타르의 눈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또 5분이 지났습니다. 저와 그분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로타르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저 역시 석고처럼 자리에 서서 로타르의 슬픈 눈빛을 통해 로타르와 대화를 계속하였습니다. 작품은 불필요한 것을 모두 덜어내고 깡마른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진기가 발명된 이후 사물의 형태를 재현하기를 포기하고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게 된 미술의 특징을 온전히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실제하는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을 걷어낸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타르는 패배자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코메티는 그 인간 패배자의 몸덩이에서 하나둘 잘라내고 걷어내 그 안에 오롯이 남아 있는 그의 고유한 슬픈 눈빛과 그 눈빛을 지탱하고 있는 최소한의 육체를 찾아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조각은 발견입니다.

얼마가 흘렀을까요? 아마 족히 30분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아직도 로타르와 눈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로타르의 그 무엇이 그녀를 석고로 만든 것일까요. 저는 서서히 발을 옮겼습니다. 발을 뗀다는 행위가 이렇게 의식을 하여야 이루어질 정도의 무거운 행동임을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자코메티 전을 왔으니 이 작품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자코메티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도 그 작품에 경배는 하여야 합니다.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로타르의 흉상을 30분 보고 만나는 [걸어가는 사람]은 너무도 경박합니다. 저는 1분 만에 그 방을 나와 버렸습니다.

몇 년 전 불안증세가 있어 심리상담을 받았던 것이 있습니다. 그때 그 나이 지긋한 여자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조 변호사님은 늘 어디론가 달려나갈 자세입니다. 두 다리를 고정하고 한곳에 머물지 못하시죠. 더군다나 좌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죠. 아마도 그런 삶의 자세가 조 변호사님을 성공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머무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도 느끼고 사랑도 느끼는 것입니다. 앞으로만 달려나가려는 사람에게는 불안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평생을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요.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코메티의 말처럼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약점을 잘 알기에 로타르 흉상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입니다. 이제는 [좌정]하여야 할 시기입니다.

"좌정은 직립이라는 인간만의 특권을 포기하라는 명령이다. 좌정이라는 행위에는 자유로운 두 다리를 묶어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라는 수련의 의미가 담겨 있다. 좌정은 또한 두 눈을 감는 행위를 수반한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외부의 어떤 자극에도 꿈쩍하지 않기 위한 훈련이다. 좌정하고 눈을 감으면 자신의 본 모습이 등장한다." 자코메티 전 평론을 쓴 배철현 교수의 최신작 [수련]에 나오는 말입니다.

저는 너무 오래 걷기만 하였습니다. 가끔은 걷기를 멈추고 좌정을 하여야 합니다. 평생 해 본 적이 없는 좌정은 저에게 너무도 낯선 행위입니다. 그날 로타르의 흉상에서 좌정을 배웠습니다. 그와 만난 30분은 관람의 시간이 아니라 제 인생을 성찰한 좌정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야 왜 제가 본능적으로 자코메티 전을 다시 보고 싶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좌정]을 배우기 위해 로타르 흉상이 간절히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자코메티 전은 볼 때마다 다른 것을 만났습니다. 첫 번째의 자코메티의 작품을, 두 번째는 자코메티의 인생을, 세 번째의 조근호의 인생을 만났습니다. 제 생애 언제 로타르 흉상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슬픈 눈빛의 기억은 늘 저에게 좌정의 필요성을 일깨워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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