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남북전쟁이 치열했던 1863년때 일이다. 미 동부 버지니아 스파트 실바니아에서 남군과 북군이 극렬히 대치했다. 남·북군은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기 위해 군가를 힘차게 불렀다. 북군 군악대가 ‘성조기의 노래’를 연주하자, 남군 역시 ‘딕시’로 맞섰다.
곧 벌어질 격전을 앞두고 양군사이에 긴장에 휩싸였다. 이때 북군의 군악대가 ‘즐거운 나의 집(홈 스위트 홈)’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친 양군병사 모두 함께 따라 불렀다. 이는 곧 대합창이 되었다. ‘즐거운 나의 집’의 합창은 눈물로 얼룩져 전장터에 울려 퍼졌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오라 하여도, 내쉴 곳은 작은 내집 뿐이리. 내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피고, 새우는 집 내집 뿐이리’. 이 노래가 양군 병사들이 전의(戰意)를 잃고 집을 그리워하게 했다. 결국 양군 지휘부는 24시간 휴전을 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고향 집에 편지를 쓰게 했다.
이전까지 남군과 북군 간에 죽고, 죽이는 살육으로 얼룩졌던 비극이 이 노래로 달라졌다. ‘즐거운 나의 집’ 대합창을 계기로 양군 지휘부 간에 만남도 이뤄졌다. 그 뒤 끝이 안보이던 남북전쟁은 가정을 그리워하는 장병들에 의해 ‘전쟁’이 아닌 '평화'로 번져갔다.
-고향의 봄으로 환송행사 가진 남북정상
노래를 지은 이는 존 하워드 페인이다. 그는 1852년 알제리에서 숨졌다. 미국은 남북전쟁 중에 평화를 만들어 낸 페인의 시신 인도를 요구했다. 알제리는 묵묵부답이었다. 미국은 끈질기게 무려 31년 동안 설득, 페인의 시신을 군함에 싣고 뉴욕으로 인도했다. 대통령과 내각이 뉴욕항에 나가 모자를 벗고 온 국민도 조의와 환영을 표했다. 미국의 평화는 이렇게 만들어 졌다.
우리도 '2018 남북한 정상회담’을 지난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시간동안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환송장에서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을 남북이 함께 부르고, 박수를 치며 '한 겨레, 한 민족’임을 확인하는 감동을 연출했다.
이렇게 남북대화는 분단된 70년 동안의 대립과 반목에서 벗어나 평화와 화해의 첫 걸음을 시작했다. 정상은 “통 크게 합의해 세계에 큰 선물을 주자”(문 대통령),“새 역사를 쓰는 출발선”(김 위원장)이라고 했다. 그런뒤 무려 13개 항에 합의했다. 29일에 추가로 '북핵시설 5월 폐기 때는 대외 공개하겠다'는 뜻과 '서로 다른 남북간 시각도 서울에 맞춰 통일하겠다'고 발표도 했다.
남북정상회담은 4주 후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간의 북핵 폐기를 논의할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의 75분에 이르는 전화 통화에서도 강경하던 미국측의 입장이 남북정상회담의 평가와 함께 상당히 유연해졌다.
현장에서 취재한 후배 기자들의 얘기나, TV로 생중계된 회담장면을 보면, 김 위원장은 회담이 임하는 자세가 확연히 달라졌다. 28일 북한 주요 매체들이 정상회담 내용도 그대로 전했다. 정상 만찬에 김정은·이설주 내외가 참석한 일도 유례 없던 일이다. 대화에 나서겠다는 김 위원장의 신년사 이후 평창동계올림픽을 거쳐 남북정상회담까지 북한 행보가 파격적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적 대결완화는 큰 획
두 정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핵 없는 한반도, 더 이상 전쟁인 없는 한반도라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올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에도 동의했다. 이를 위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첨예한 긴장을 완화하고 전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무력도 서로 사용하지 않는 불가침 방침도 확인한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가을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갖기로 하는등 일단 성공적 합의에 이르렀다.
회담 뒤에 가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이같은 내용의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을 내놨다. 두 정상의 결단과 합의로 분단과 대결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중대한 계기를 마련했다. 이 합의에 한반도 주변 4강은 물론 국제사회와 국내에서도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모든 야당으부터 긍정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전쟁, 핵, 미사일 등의 트라우마에 있던 우리에게 반가운 일은 군사 대치가 완화된다는 점이다. 환영할 일이다. 그렇다고 '한겨울 개나리가 꽃잎을 열었다고 봄이라고 못하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판문점 선언만으로 당장 통일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제 시작인 까닭이다.
왜냐면, 판문점 선언은 선언 만이 아니라 실천이 전제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긴장완화와 협력, 그리고 평화를 기대했었다.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과 2007년 10.4 정상회담이 그 교훈이다. 그래서 어떤 평화선언도 확실한 이행이 담보되지 않는 한 평화를 장담할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첫걸음 뗀 한반도 평와와 협력, 비관도 낙관돟 금물
알다시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때도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을 합의했었다. 그중에도 2007년 회담 때는 문 대통령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합의를 지켜봤다. 그런데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살벌한 남북대결 구조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다 아는 대로다.
판문점 합의가 북한이 지난 25년간 되풀이 해 온 핵·미사일 도발과 위장평화 공세와는 전혀 다르다. 전문가 중에는 이번 합의가 있다해도 북한이 쉽게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를 입증할 책임은 북한측에 있다. 우리의 ‘비핵화’와 북한측이 생각하는 ‘한반도 비핵화’의 차이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북정상 만남은 의미가 크다. 같은 민족이면서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지난 70년간 희생과 피와 눈물, 비용은 따질 수 없다. 국력을 평화와 번영에 모아야 되는데도 허비한 그 역량을 볼 때 두정상의 만남 자체로 긍정적이다.
이제 시작인 것에 지나친 낙관도, 과도한 비관도 금물이다. 합의문에 다행스런 조항들이 적지않다. 그렇지만 이럴 때 일수록 향후 남북관계에서 대한민국의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세계를 향한 개방과 협력의 지향점이 있다. 그리고 법치와 인권 등의 가치가 있다.
반대로 과도한 비관이나 당리당략에 의한 셈법으로 부정하는 일도 위험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7일 ‘김정은 위원장이 불러주는 대로 쓴 위장쇼’, 29일에는 “한번 속으면 속인 놈이 나쁜 놈이고 두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고 세번 속으면 그때는 공범”이라며 깍아내렸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덟번을 속고도 아홉번 째는 참말이라고 믿고 과연 정상회담을 한 것일까”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 역시 “어처구니가 없다.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이 막연히 한반도의 비핵화만을 이야기했다”가 고쳤다.
-지금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할 때
홍 대표나 나 의원의 표현은 자유겠지만, 지금은 '비관'할 때도, '부정'할 때도 아니다. 물론 북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속았기에 홍 대표나 나 의원의 글에 공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첫 걸음을 뗀 4.27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폄하하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은 한반도의 명운을 가를 중대 전환점에서 전쟁을 막는 일이 시급하다. 또한, 평화와 번영을 꾀하는 일이 우선이다. 남북정상은 7천만 겨레 앞에서 분단과 전쟁,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때문에 6.13 지방선거가 코앞이라도 여야가 초당적인 협력이 필요한 것이 지금이다. 힘을 합쳐 군사적 충돌위기와 대치, 한ㅂ반도 긴장을 누구려뜨리는 것이 먼저다. 여기에 남북으로 흩어진 이산가족들의 절규,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의 낙심을 헤아릴 때인 것이다.
리더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래서 올바른 일을 하는 것과 옳은 일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올바른 일을 누구나 할 수 있기에 리더가 필요없다. 옳은 일인가를 아는 것은 리더에게 필수이다. 위기관리능력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한반도 명운이 무엇인 지를 아는 일은 정치리더들의 임무이자 책임이다. 탓만하지 말라. 국민들은 ‘홈 스위트 홈’, ‘고향의 봄’을 부르는데 그저 탓하고 뒤에서 깎아내리기 보다 당리당략을 거두고 협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