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의 정치 1번지라 불리는 천안시가 요즘 더불어민주당의 구본영 현 천안시장 전략공천을 둘러싸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 구 시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형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전종한 천안시의장과 김영수 천안시의원 등 예비후보자가 있음에도 중앙당이 공천했기 때문이다.
구 시장은 김병국 전 천안시체육회 상임부회장으로부터 2500만 원을 받은 것과 체육회 인사권 개입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구속적부심에서 보증금 2000만 원 납입 및 거주지 제한을 조건으로 기소 전 보석으로 석방된 상태긴 하지만 언제 기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충남도당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중앙당으로 공을 넘겼고, 중앙당은 구 시장이 다시 검찰소환 조사를 받은 다음 날인 27일 그를 전략 공천했다. 그러자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적폐청산을 운운한 민주당이 구 시장을 둘러싼 각종 비리의혹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는커녕 전략공천 카드를 사용했다는 것은 65만 천안시민을 우롱하고 무시한 처사”라며 “선거에 승리할 사람을 내세우기 전에 깨끗하게 정치할 인물에 대한 검증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시장과의 천안시장 후보 경선을 준비했던 전종한 의장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의 악재에 이어 상대 경쟁후보로부터 무차별적인 공격의 빌미로 작용할 것”이라며 “구 시장의 스캔들이 확산되고 있고,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결국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유한국당 충남도당은 말할 것도 없이 “내로남불의 결정판”이라며 구 시장의 천안시장직 사퇴를 촉구했다.
천안갑 예비후보들이 보여줬던 ‘자중지란(自中之亂)’ 성격과는 또 다른 공천 후유증이다. 민주당이 내세운 ‘가치’가 훼손됐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타격을 줄 수 있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구본영 카드’…“일단 이기고 봐야”
민주당은 이번 6.13지방선거를 문재인 대통령과 촛불정부의 국정 동력 창출의 계기로 만들자고 외친다. 촛불정부의 탄생에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기조가 담겨 있다. ‘적폐’ 가운데에는 도덕적 사명과 법치국가의 정의를 뒤로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 최우선으로 챙겼던 기득권의 부정부패가 청산대상 1순위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후보자 공천 과정에 도덕적 잣대를 엄격히 적용했다. 특히 안 전 지사의 여비서 성추행 파문 이후, 미투(#Me too)운동 대상자 등 도덕적 결함이 폭로된 후보들은 법적 판단 여부와 상관없이 선거판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충남의 박수현을 비롯해 여비서 폭행 혐의로 제명된 부산 사상구청장 강성권 예비후보. 보좌진이 수사선상에 오른 이유로 현직 시장임에도 낙천된 최성 경기도 고양시장 등이 그렇다. 이런 발 빠르고 엄정한 대처로 수많은 도덕적 악재에도 50%대를 넘는 민주당의 지지율은 유지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구 시장의 전략공천은 많은 의구심을 갖게 한다. 기존의 결정과 상반된 결과다. 민주당은 왜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
정가에서는 민주당 중앙당의 여론조사 결과, 구 시장이 아니면 상승세의 박상돈 한국당 후보에 승리할 수 있는 민주당 후보는 없다고 나온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알려졌다. 또 공천에서 배제된 구 시장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염두에 둔 것 같다. 충남 최대 도시인 천안에서 구 시장의 지지자들이 대거 이탈할 경우, 자칫 천안시장뿐 아니라 충남도지사 선거도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싸움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카드’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설사 구 시장이 당선된 이후 보궐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일단은 이기고 보자’는 전략이 깔려있다. 역시 선거는 이기고 봐야 하나 보다.
그동안 보수정권을 향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부르짖던 민주당의 모습이 새삼스럽다. 이것이 ‘촛불민심’에 부응하는 민주당의 태도란 말인가. 여론의 따가운 눈총이 단순히 ‘누가 공천을 받았냐’의 문제 때문인 것으로만 여기면 안 된다. ‘어떤 과정을 거쳤나’의 관점에서 명분을 상실했다는 점을 떠올려야 한다.
충청권 민주당 지지율 대폭 하락…민심 이반 조짐

이를 반영하듯, 최근 의미 있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 23~27일 성인 2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충청권(대전·세종·충청) 지지율은 전국 평균(52.2%)보다 12.7%p나 낮은 39.5%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주 대비 13.1%p나 떨어진 수치며, 전국 8개 권역 중 대구·경북(29.0%) 다음으로 가장 낮다. 남북정상 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70%(전주 대비 2.2%p 상승)를 회복한 것이 무색해 진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충청지역의 경선 부작용과 주요 인사들의 도덕적 문제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반면 한국당은 충청권에서 29.4%를 기록하며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이는 대구·경북(38.8%)보단 낮지만 부산·경남·울산(27.7%)보다는 높다. 한국당 지지층 사이에서 ‘해 볼 만하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1일 오후 민주당 공천이 확정된 구본영 현 시장과 양승조 충남지사 후보, 이규희 천안갑 국회의원 후보, 광역·기초의원 후보들은 ‘천안 원팀(One Team)’을 구성하고 천안태조산공원 ‘천안인의 상’을 참배했다. 흐트러진 지지층을 다잡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들이 말하는 ‘원팀’, 지지자들이 바라는 ‘원팀’은 공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끼리만 손잡은 ‘보여주기식’이 아닐 것이다. 승자와 패자, 그리고 이들의 경쟁을 바라본 시민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원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