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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한의 직언직설] 극치로 내달리는 오만과 편견
[윤기한의 직언직설] 극치로 내달리는 오만과 편견
  • [충청헤럴드=윤기한 논설고문]
  • 승인 2018.05.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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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한 충청헤럴드 대기자(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영문과교수.시인,평론가. 세종TV대표)
[충청헤럴드=윤기한 논설고문]

영국 소설 『오만과 편견』이라는 게 있다. 일찍이 우리말로도 번역된 이 소설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얌전하고 온순한 여류작가의 작품이다. 19세기 영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이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난데없이 큰 부자가 이 마을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가난한 베넷 집안의 둘째 딸 엘리자베스는 이번에 이사 온 부자 청년 다아시로부터 청혼을 받는다. 엄청난 재산과 지위를 가진 그의 너무나 오만하고 냉랭한 인상에다 지나치게 거만한 청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의 청혼을 거절한다.

당시의 영국사회에서 여자가 신분상승의 기회를 잡는 것은 부유한 남자와 결혼 하는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는 가장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이다. 이러한 행운을 무작정 팽개칠 만큼 어리석지 않은 에리자베스의 엉뚱한 편견이 다아시와의 갈등현상을 만들었다.

다아시의 오만은 처음에 목불인견일 정도로 심각했다. 엘리자베스의 열등한 신분과 그녀와의 결혼이 자기 가문의 수치라고 생각하는 다아시의 자존심과 오만이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만들었다. 오래지 않아 두 남녀 간의 태도가 일대 변혁을 맞아 결혼이 성사되고 해피엔딩의 결말을 이룬다.

잘 난체(prudery)하며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경우 오만하다는 비난을 받는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이 오만이라는 단어가 붙어 다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 드루킹 댓글 사건이라는 핫 이슈의 탁류에 휘말려 있는 더불어 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그 중 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자신은 극구 부정하고 있지만 세상의 눈초리는 그의 행동과 언사에 집중되어 있다. 아직 젊은 혈기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 뉴스 커메라의 눈이 포착해서 텔레비전 방송에 등장시킨 화면은 그의 태도가 엘리자베스의 망막에 들어온 다아시의 행동보다 더 오만스럽다.

그게 다름 아닌 그의 평범한 일상적 태도라 해도 그 행동에 스며있는 오만 끼는 감춰지지 않는다. 본시 인간은 속에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 우리 선조들의 속담은 물론 현대 심리학에서 논하는 잠재의식으로 보아서도 아무리 억지로 감추려 한들 마치 헤벌어진 옛 여인들의 고쟁이처럼 주책없이 들춰나기 마련이다.

독일의 의사 심리학자 프로이트를 비롯한 정신분석학의 대가들이 주창하는바 속물의 행동거지는 잠재의식이 수면상으로 부상하는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그런 행동이 계속 반복될 때 그것은 물리학에서 자주 떠드는 관성의 법칙에 따른 못 된 버릇이기도 하다.

더구나 경상남도 도지사 선거의 후보로 뛰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나오는 건 지 몰라도 김경수 후보의 언사도 ‘대포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너무나 고루할 정도로 흔해 빠진 포퓨리즘의 범주를 벗어나 1969년 7월 20일 인류역사상 최초로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 탐색에 성공하고 달의 표면에 인간의 발자국을 남긴 우주인 닐 암스트롱보다 더 강렬한 언어구사를 서슴지 않는다.

마치 자신감이 강뚝을 넘쳐흐르듯 단호하고 호탕한 어투에다 지나치게 사무적인 인상을 풍기는 발성이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공감을 촉발시키는 게 아니라 되레 과잉표현이 가진 허장성세의 액슨트로 당황하게 만든다.

자기 딴으로는 힘껏 내지르며 내로라하는 말투지만 그건 아무래도 밑천까지 날리는 시골 돌파리 도박장 멤버가 악을 쓰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특검이 겁나지 않으며 당당하게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이 조폭 앞에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려가며 덤벼보자고 큰소리하지만 오히려 하얗고 가느다란 팔을 내미는 추태와 다를 게 없다.

하기야 빈손을 자초했다는 비아냥을 받는 경찰이 김경수 의원을 뒤늦게 소환해서 스물 세 시간이나 참고인 조사를 했어도 별 소득이 없는 모양이다. 댓글 조작 지시나 보좌관의 금품 수수 등에 관련된 의혹을 모두 부인하는 김 의원의 말만 듣고 말은 것 같다.

살아 있는 대통령의 과거 비서관을 감히 무어라 멋대로 대할 손가 하는 게제가 아닌가. 잘못하다가 불똥이 튀어 오는 위험부담에 경찰은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귀착점이 아닌가. 상식으로 치부해 버리는 게 속 편하다는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드루킹에 보낸 기사주소는 정치인의 공유 패턴이라고 우겨대며 받은 메시지 내용은 보지 않은 채 회신만 했다는 그의 주장을 믿는 바보가 이 나라에 얼마나 있는지 궁금하다. 그러기에 ‘면죄부 소환’이라는 막말의 책망을 들어도 말뚝 싸다고 하는 게다.

초등학교 1학년생도 들어주고 믿어주지 않을 소리를 경찰청장이라는 사람이 지껼여 댔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적인 사건(historic remark)이 아닐 수 없잖은가. 그러니 김 의원을 비롯한 그룹의 저명인사들이 말이나 행태에 있어서 오만의 극치로 달려가고 있는 게 아닌지 정말 궁금하다.

그들의 행태를 싫어도 바라보아야하는 국민은 엘리자베스의 편견을 이겨내지 못할 건가. 아니다. 댓글조작은 결코 수월한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거대 춘사(椿事)가 아닌가. 특검으로 기필코 사건해부를 제대로 해야 마땅하다. 큰소리친 김의원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오만의 극치가 다아시의 변모로 새로운 인식전환을 가져와 엘리자베스의 편견이 해소되듯이 말이다. 그래야 부라보, 치어즈를 외칠 수 있을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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