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한 충청헤럴드 대기자(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영문과교수.시인,평론가. 세종TV대표]](/news/photo/201805/4284_5901_3744.jpg)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말이 있다. 정성들여 쌓아온 일이 허사가 됐을 때 우리 조상들이 항용 쓰던 말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미북 간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다가 느닷없이 취소가 되었다.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오늘 하루 종일 대한민국의 종편방송이 이 문제를 가지고 법석댔다. 정부도 어제 밤 11시가 넘어서 NSC를 소집했다고 한다. 회담중단이 당혹스럽고 유감이라는 반응으로 표현됐다.
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폭파한 직후에 내놓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난데없는 회담취소 폭탄선언은 전 세계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우리나라로서는 모처럼 평화 무드가 무르익어가는 환상에 젖어 있던 꿈을 깨버리고 말았다. 문재인 식 ‘운전자석론’이 삐거덕 거리는 소리를 내게 됐다. 일부러 미국까지 날아가 한미정상회담이랍시고 두 나라 대통령이 단독회담을 하고 온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놀라운 일 아닌가.
내가 일찍이 ‘행운아 대통령의 딜레마’라는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문재인 정부를 아주 멋지고 신나게 거들어 주었다. 대선의 승리를 비롯해서 평창 동계올림픽이나 패럴림픽까지 매우 순조롭고 편안하게 진행되었다. 그 화려한 과정을 디딤돌로 삼아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인 이벤트로 우리를 흐뭇하게 위로해 주었다.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만남이 참으로 아름다운 그림처럼 우리 가슴을 어루만졌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평화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정경이 눈을 부시게 빛났다. 금방 손에 잡히는 대어를 기대하며 억세게 불러대는 ‘한반도’의 평화가 이 작은 땅덩어리를 덮어씌우기를 못내 그리워했잖은가. 그렇게 부풀어 오른 행복감이 채 충만 되지도 않았는데 웬 뚱딴지 같은 미북정상회담 결렬인가. 이 얼마나 쑥맥 같은 짓인가. 한참 전부터 북한 인사들의 언동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촉발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내 예상이 적중한 게 되레 속상한다.
북한의 외교라인이 성급하고 무모하게 미국 측에 맹랑하고도 쑥맥 같은 소리를 해왔다. 외무성 제1부상이라는 김계관이나 그 밑의 미국담당 최선희가 무례한 발언을 마구 쏟아냈다. 미국의 볼턴 보좌관을 얼간이로 몰아치고 미국의 압박이 계속되면 회담무산이라는 막말을 먼저 꺼내들었다. 오죽하면 북한이 미국에 대해 무시무시한 분노와 공개적인 적대심을 들어냈기 때문에 회담취소를 하게 되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어이없어 했겠는가. 미국과 미국의 리더들을 어린이 노리개 감으로 여겼던 것인가. 착각은 자유라지만 너무 크게 착각한 게 아닌가. 작년 7월 30일 SJC에 등재한 칼럼 「애숭이의 놀이개감」이 새삼스럽다.
정치적인 논리로 따질 것도 없이 이 번 사건은 정녕 돌대가리(bone head)의 오산에서 유래한 게 틀림없다. 정상적인 사고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괴팍스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둔한 언행이 저지른 역사적 춘사(椿事)가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국과 북한이 이른바 1대1의 비교수치는 대등한 입장이 아니다. 국토면적이나 국가주민이나 심지어 군사력에 있어서 북한이 미국과 상대하기에 너무나 버거운 수치에 머문다. 아이들 말투로 두 정상의 체구마저도 볼품없는 중량이 아닌가. 장소팔이 웃을 대비수치란 말이다.
그러니 이 삐뚜러진 마당을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가. 지금 대한민국의 종편 방송은 대거 출동해서 운동장 정리 작업을 문재인 대통령의 영단에 기대야 한다고 뭇 패널들을 앞세워 떠들어댄다. 백가쟁명으로 묘안 제시에 급급하다. 그게 당초에 운전자 역할을 맡는다고 호언장담한 탓에 다들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문 대통령의 운전기술이 워낙 출중하니 그리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허나 비즈니스 맨 트럼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중국의 멘토를 받는 김정은도 만만하지 않을 게다. 시 주석이 있으니 그렇잖은가.
하지만 영국 시인 셸리의 말대로 겨울이 오면 봄은 아주 멀어지는가. 일년 중 섣달그믐은 바로 다음 해 초하루를 앞서 있다. 어설픈 언사로 또다시 일을 망쳐버릴 위험성이 농후한 김계관의 말투로 미국에게 기회를 줄 테니 어쩌고 하는 버릇을 고치지 않으면 새로운 선의의 국면전환은 어렵다. 기왕에 엎지른 물은 잘 닦아내는 수밖에 없지만 말이라도 곱게 하며 조용히 그리고 차분히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세계의 평화와 우리의 행복을 맞이할 정도의 정성을 드리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게 아닌가.
윤 기 한(충남대 명예교수, 전 충남대 대학원장, 시인,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