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인권조례가 결국 6.13지방선거의 표심을 가르는 정치이슈로 변질된듯하다. ‘인권’의 본질과 갈등의 봉합을 고민하기 보다는, 찬·반 여부로 편을 가르고 표밭을 경계 짓는 선거판의 가늠자로 전락했다.
28일 충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는 공교롭게도 인권조례 찬·반 단체가 각각 오전과 오후 기자회견을 가졌다.
먼저 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지방선거 혐오대응 전국네트워크’의 ‘혐오 없는 선거 평등한 충남만들기 선언’에서는 “선거철이 되자 혐오 표현과 선동이 아무런 제재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구체적으로 “어제(27일) 천안에서 열린 구국기도회에서는 학생인권조례가 성관계·임신·출산을 조장한다고 왜곡하고, 인권조례가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인권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며 “서산에서는 후보자들에게 관련 질의를 하면서 인권조례 폐지 방향의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혐오 선동 행위가 감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선관위는 후보자의 혐오발언을 엄중히 경고하고 인권위는 신고센터를 마련해 실태를 파악하고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혐오발언을 확산시키는 후보는 적극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충남도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압도적인 수적 우위로 폐지안을 처리했듯이, 인권조례 찬성측도 정치적 실력행사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어서 충남기독교총연합회는 이인제 한국당 충남도지사 후보와 이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도지사 선거를 중도 사퇴한 김용필 충남도의원을 지지한다고 표명했다.
이들은 “이 후보만이 인권조례 폐지 찬성과 대법원 제소 취소를 공약으로 발표했다. 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섰던 김 의원의 대승적 결단(이 후보에 대한 지지)은 충남의 잃어버린 8년의 종결과 인권조례폐지 완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행보”라고 치켜세웠다.
이처럼 ‘인권·시민단체 vs 보수기독교단체’였던 충남인권조례의 찬·반 갈등은 선거판으로 옮겨지면서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진영’ vs ‘자유한국당과 보수 진영’의 이분법적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민주당 ‘찬성’ vs 한국당 ‘반대’…당론화 경향 뚜렷
실제로 6.13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인권조례 찬·반 입장은 당에 따라 뚜렷이 나뉜다.
이날 KBS 대전총국에서 열린 충남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양승조 민주당 후보는 “누구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인권조례가 필요하다”면서 “충남인권조례는 지금의 야당 의원이 절대 다수인 지난 2012년 만들었는데, 야당 의원들이 주도해 폐지했다. 도민들에게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이인제 후보는 “동성애를 양성화 하는 나쁜 조례”라며 “동성애자를 학대하거나 처벌하자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를 인권으로 포장해 조장하는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고 받아쳤다.
사실 한국당 후보들은 이미 본격적인 선거활동에 들어서면서 인권조례 폐지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박상돈 천안시장 후보는 지난 23일 “성소수자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를 빙자해 보편적 인권이 아닌 특정 정치세력의 도구가 되어버린 나쁜 인권조례를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상욱 한국당 아산시장 후보 역시 28일 충남도의회에서 통과된 ‘인권조례 폐지안’을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시민들과 충분한 논의나 사회적 합의 없이 ‘성적지향’, ‘성정체성’ 등 동성애를 옹호하고, 조장하는 듯한 문구를 삽입해 일방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은 잘못됐다. 앞으로 동성애 논란을 야기하는 인권조례에 대한 반대운동에 힘을 보탤 것”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이날 또 우리아이지킴이 학부모 연대는 아산시청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아산시 인권조레의 조속한 폐지를 위해, 장기승 후보를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아산시 기초의회 가선거구에 출마한 장 후보가 충남도의원 시절 청소년노동인권센터 위탁 동의안 부결, 충남학생인권조례 제정 저지, 충남인권조례 폐지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였다는 게 그 이유다.
인권조례의 가치, 승자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운명

현행 선거제도는 ‘승자 독식’ 구조다. 이긴 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다. 인권조례가 선거판의 쟁점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본래의 가치와 취지와 무관하게 이런 정치적 논리로 존폐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주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선거 후보자가 사회 이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극명한 찬·반 대립 상황에서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도구로만 사용되는 건 위험하다.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 쪽이 적이 된다. 한 표가 아쉬운 후보자들이 인권조례와 관련 소신발언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처럼 사회적 합의를 찾기 위한 치열한 노력 없이 정치적 논리로 선거 승리자에 의해 인권조례의 존립이 결정된다면, 잠재적인 갈등의 씨앗만 키울 뿐이다. 이미 우리는 세월호사건, 미투(#Me too)운동 등을 통해 사회의 본질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될 때 얼마나 소모족인 논란이 일어나는 지 겪어왔다. 인권조례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기자가 답을 내릴 수도 없다.
다만 정치의 미덕은 내편을 만드는 기술, 즉 ‘소통과 협의’, ‘대화와 설득’에 있음을 기억하자. ‘힘의 논리’라는 색안경을 벗고 본질을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인권에는 색깔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