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헤럴드 스위스=송경섭 칼럼니스트] “사실 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어” 대학교 4학년, 취업준비를 하던 친구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듣던 말이었다. 수능을 위해 고등학교 3년, 대학생활 4년.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나니 어느덧 먹고 사는 것을 스스로 책임져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리고 앞에 놓여진 자기소개서는 갑자기 내 적성을 물어본다. 생소할 따름이다. 열심히 공부만 해왔었는데. 지원 회사와 본인의 전공 및 적성을 연결시키는 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적성’은 왜 중요할까? 근면하게,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닌가?
여유로운 스위스 생활을 꿈꾸던 ‘이상’과 다르게, 나는 바쁨 속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버스가 조르쥬 파이썬 (Georges Python) 광장에 이르렀을 때, 평소와 다르게 수많은 어린이들과 그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버스에서 내려 곧장 광장으로 향했다. 무대 위에서 힙합 댄스를 추는 아이들, 난생 처음 보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 부스에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 등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다 뭐 하는 거지? 본능적으로 사진기를 꺼냈다. 팜플렛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쓰여있었기에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물어봐야겠다. 눈 앞에 보이는 부스로 다가가서 취재를 시작했다.


프리스비(Frisbee, 프리부르 내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네트워크 단체)에서 자원 봉사중인 니나는 친절하게 본인의 부스를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직업, 행동이 적힌 카드를 보여주고 본인이 선택한 것들을 그려보는 활동을 돕고 있다고 했다.
“스위스에서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요. 그런 시기 전에 충분히 아이들이 일과 직업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점점 더 궁금해졌다. 이 행사의 목적이 무엇일까? 왜 그들은 스스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행사장 한복판에서 나는 관계자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Marion Aysaona (Frisbee 소속, 행사 총괄 담당자)이었다. 그녀와 짧은 일문일답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Q1. 만나서 반가워요. 전 한국에서 온 송경섭이라고 합니다. 프리부르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모여있는 걸 처음 봤는데, 오늘 행사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만나서 반가워요, Marion Aysaona라고 해요. 오늘 열린 행사는 유베날리아 페스티벌이라고 해요. (JUVENALIA는 어린이들을 위해 디자인된 예술적, 문학적 요소들을 뜻한다). 프리부르에 있는 40여개의 청소년 단체들이 모여 댄스, 공연, 운동, 아트 등 수업시간 외 활동들을 선보이고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에요.


Q2. 한국에서는 학교수업과 학원이 매우 중요한데, 왜 수업 외 활동들이 중요한가요?
>아이들은 수업시간 외 활동 에서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바깥 활동에서 말이죠. 아이들은 단체활동, 환경문제, 사회적 활동, 프로젝트 등을 관리, 진행해보면서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형성하죠. 이런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거든요. 동시에 아이들은 이런 활동들을 즐기기도 하구요.
Q3. 그렇다면 오늘 이 행사가 갖는 중요한 이유는 뭔가요?
>외국인들이 보기엔 우리(유럽인)이 일하기 싫어하는 이미지로 보일 때가 있잖아요. 그렇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거죠.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길 바라고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환으로 유베날리아 행사(Juvenalia festival)가 계획된 것이죠. 그래서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겁니다. 또 오늘 행사를 통해서 청소년 단체들은 자신들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본인들의 활동 및 노하우를 교류하기도 하죠.

Q4. 개인적으로 오늘 이 행사를 계획하게 된 이유, 동기가 무엇인가요?
>유베날리아(Juvenalia)는 제가 소속된 프리스비(Frisbee)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진행되는 거에요. 제가 이 곳에서 일하는 첫 번째 이유는 다른 기관들과 수업(Course)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니까요.
그녀의 마지막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좋아하는 것보다, 수능점수가 매우 중요했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대학원 자기소개서 앞에 앉아있는 나도 떠올랐다.
우리 나라는 교육열이 매우 뜨거운 나라다. ‘배움’에 대한 갈망, 중요성은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다. 나 또한 배우는 것의 중요성과 기쁨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수능 공부하는 것만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탐구할 기회가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탐구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방법과 공부방법을 배우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들어와선 방학을 항상 기다렸다.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방학 중엔 내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찾아 다녔다. 수능만을 위해 공부하던 때와 달리, 나는 학교 외 활동에 필사적이었다. 댄스, 프레젠테이션, 문학토론, 대한화공학회 창의설계 경진대회, 대학생 외국인을 도와주는 동아리 등. 이런 활동들은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이다. 그래서 일까? 남들이 고민했던 것만큼 자기소개서를 쓰는 게 막막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수업만큼 수업 외 활동이 나의 적성을 찾는데 매우 중요했단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 이정표가 되었으며, 지금 내가 스위스에 오기로 마음먹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만약 내가 적성에 대한 고민을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수능공부만큼 적성을 찾는 교육을 받았다면 좀 더 수월하게 진로를 결정했을까? 물론 지금의 날 후회하진 않는다. 단지 앞으로의 대한민국 교육이 수학능력시험만큼, 자라나는 학생들이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방식의 보완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스위스의 아이들이 그들의 미래인 것처럼,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