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 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를 당한다는 것’ 이라고 했다. 여기서 정치는 투표, 즉 선거를 등한시하는 경우다. 단테 역시 ‘지옥에서 가장 뜨거운 불구덩이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비되어 있다, 기권은 중립이 아니다. 암묵적 동조다’라고 외쳤다.

함석헌 선생 또한 민주주의의 시작은 투표라고 말했다. 누구나 다 아는 정치인이 선거일에 함 선생을 찾아가 ‘정치를 어떻게 해야 좋은 정치냐’고 물었다. 함 선생이 그에게 투표를 했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도리질하자 함 선생은 그에게 “정치란 가장 덜 나쁜 놈들을 뽑는과정이다. 어짜피 다 나쁜놈들이라고 투표 안하면 가장 나쁜놈이 당선된다”고 답했다.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일이 밝았다. 시.도지사와 시.도 교육감,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앞으로 4년간 우리 지역을 책임지고 이끌 대표를 뽑는 날이다. 지난 1995년 6.27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 이후 7번째 맞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무보수 봉사직으로 시작된 지방자치가 무려 23년을 맞았다. 우리로 치면 청년이 됐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는 지방자치의 무용론과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더욱 성숙된 결과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그 책임은 정치권은 물론이요, 유권자에게도 있다. 전대미문의 전직 대통령의 탄핵과 국정농단으로 일그러진 정치판, 여기에 또다른 전직 대통령의 썩은 내 나는 실태에 모두가 실망한 터다.
유력 정치인과 유명인들의 여성 스캔들, 이른바 미투운동의 태풍으로 선거전은 시작됐다. 심지어 몇몇 정치인들의 오만불손과 막말파문은 쓸어 담을 수조차 없었다.

예상대로 지방선거는 뻔한 싸움으로 시작됐다. 여기에다, 취임1년이 넘는 동안 70%안팎의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로 집권당은 초강세를 보여왔다.
무엇보다 한반도 긴장으로 온갖 위기설에 시달릴 때 해결사로 나선 문 대통령의 안보와 외교가 큰 성과를 냈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문제, 그중에도 비핵화문제는 12일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심 키워드를 찾아냈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대형 이슈가 지방 선거를 모두 빨아들이는 블랙 홀로 이어졌다. 그러니 여당의 압도적 우세로 판세가 일찍 기울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데도 정치권은 한치 앞으로 보지 못한 채 당리 당략에 치우쳐 정쟁만 일삼았다. 그러니 이번 선거가 유독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이다.
좋은 선거, 좋은 정치의 여건을 만들지 못한 것이 지방선거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야 각 정당과 입후보자들은 민생을 감쌀 준비와 주민의 삶을 향상시킬 비전을 현실성있게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그저 돈들여 무엇하겠다, 돈들여 이렇게 바꾸겠다식의 공약 남발이다. 돈들여 , 또 돈들여, 지었다, 부쉈다하는 발전공약만 수두룩하다. 한국매니페스토가 밝힌 자료를 검토해보니 이번 선거에 나선 전국 9000여명의 후보의 공약을 종합하면 1인당 22건의 공약을 냈다고 한다.
유권자가 이러니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선거 막바지까지 정치 공세가 판을 쳤다.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유로 상대 헛점 들추기 등도 유권자를 실망시켰다.
어쩌면 제일 중요하다는 교육감 선거나 지방자치단체를 감시, 견제할 지방의원에 대해서는 유권자들이 출마자가 누군지조차 모른다고 할 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를 통해 풀뿌리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책무가 유권자에게 있다. 아무리 시덥잖은 후보라도, 아무리 허점투성이 출마자 들이라도 유권자는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정치판이 엉터리여서 유권자가 눈물만 흘리고, 화만 내서 안된다. 개탄하고 실망해 모른 척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유권자가 주어진 주권을 행사하지 않고 비난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투표로 올바르게 주권을 행사해야 세상이 달라진다.
낡고 썩은 정치, 서민들의 아픔을 외면해온 정치인들을 이번에 심판해야 옳다. 선관위의 얘기처럼 지난 8-9일 보여준 사전투표율 20.14%의 열기를 이어가야 한다.
투표 참여로 더좋은 민주주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아무 생각없이 투표하는 것도 위험하다. 나와 내 가족, 내 일터의 미래를 위해 유능한 인물, 바른 정책과 공약을 내건 후보를 찍어야한다. 사전 투표를 놓친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기 전에 집으로 배달된 선거공보물을 찬찬히 살펴, 후보를 선택하자.
더 좋은 미래를 위해 투표로 행동하자. 눈물과 한숨도 모두 투표로 심판하자. 그것이 6.13 지방선거가 주는 민주주의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