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조에게는 대쪽의 선비 냄새가 풍긴다. ‘외유내강’의 전형이라는 것이 그의 주변사람들의 평가다. 부드러움 속에 매 순간 단호함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이번 충남도지사 출마 결심와 당선이 그의 이같은 성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빨간불에 서고 파란불에 간다’ 는 그의 좌우명 역시 한마디로 선비 스타일스럽다. 양 당선자는 “이처럼 간단한 사회 규범조차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기본 원칙을 지켜야 큰 원칙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자 신념이고 정치 철학이다. 선비의 청빈함을 강조하는 그의 전재산도 6억1225만 원(2018년 제7회 지방선거 공개자료기준)에 불과하다.
![더불어 민주당 양승조 충남지사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지지자들과 환호하고 있다[사진 =안성원기자]](/news/photo/201806/4631_6434_536.jpg)
천안시 광덕면에서 태어난 양승조(1959년생) 당선자는 인근 천안보산원초와 천안광풍중학교를 졸업했다.
‘수재’소리를 듣던 그는 유학자인 선친 양태석(작고)의 바람대로 서울 유학길에 올라 중동고에 이어 성균관대에 입학한다.
사법고시는 그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지만, 6전7기 끝에 1995년 37회(연수원 27기) 사법고시에 합격, 고향 천안에서 변호사를 개업한다.
출마를 통한 정치입문은 2004년 제17대 총선이다. 열린우리당 천안갑에 출마한 양 당선자는 당당히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는 내리 4선을 기록했다. 민주당 후보가 충남의 같은 지역에서 내리 4선은 양 당선자가 처음 세운 기록이다.
법률가인 양 당선자는 초선이였던 17대 전반기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일한다. 하지만, 후반기 상임위를 보건복지위로 전환한 뒤 4선을 거치는 동안 줄곧 보건복지위를 고수했고, 20대엔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소명으로 생각한 양 당선자의 결심이다.
정치인 양승조가 부각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당시 수십차례의 공개적 약속을 파기하고는, 정운찬 총리 등을 내세워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부쳤다.
양 당선자는 2010년 1월 15일 국회 삭발에 이어 22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양 당선자의 단식투쟁은 당시 민주당 내 수도권 지역 의원들의 세종시수정안 '동조' 분위기에 쐐기를 박았고, 국회 법안표결을 반대로 이끌었다.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를 있게 한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치인 양승조에게 충남도지사 출마는 정치인생 2막의 결단이다.
1700만 촛불정신은 충남 최초의 내리 4선의 더불어민주당 중진 정치인에게 그에 걸맞는 큰 역할을 요구했다. 엄중한 시대적 흐름 속에 충남지사에 도전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양 당선자 역시 지난 14년간 자신을 키워준 충남의 요구를 흘러보낼수 없었다.
선거기간 국회의원 불사퇴 약속을 지키라는 시민단체가 반발도 있었지만, 민주당 경선을 통해 도민들의 출마요구를 재확인한 양 당선자는 당당히 맞섰고 압도적 지지로 제38대 충남도지사에 당선됐다.
민주당 충남도당위원장, 당대표 비서실장, 사무총장, 최고위원,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거친 동안 양승조 당선자는 스스로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가 그동안 키워 온 꿈은 ‘더 행복한 충남’이다. 충남의 새로운 미래 ‘대한민국 복지수도 충남’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220만 충남도민 가운데 단 1명의 낙오자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양승조의 꿈이 이뤄질지 자못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