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감과 아쉬움을 감춘 채 1950년 12월 18일 전쟁터로 나가는 신병 아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머니의 떨린 손에는 바가지에 담아온 뭔가를 자꾸 아들에게 내민다. 아들은 차마 북받치는 울음 터뜨릴 수가 없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별(1950.12.18) = 한국전쟁 초기의 전황은 매우 급박하게 전개됐다. 그 때문에 신병 보충 역시 긴급하게 이뤄졌고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입대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입대 직전의 신병이 대구역에서 열차에 오르기 직전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58_440.jpg)
어머니와의 짧은 만남이 영영 다시올 것 같지 않았다. 두툼한 미제(美製) 외투에 작업모 차림이지만 이 병영열차를 타고 탄환이 비 쏟듯 날아드른 전쟁터로 향하는 아들의 심정과 보내는 어머니의 찢어지는 이별.
아들은 '비내리는 고모령'을 내내 부르며 전장터로 향했을 것이다. 모자가 상봉했을 지, 아니면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이 젊은 신병이 지금까지 영면했을 지 모른다.
!['부대 마스코트(unit mascot)'(1950.9.23) = 전쟁이 사람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어린이나 노인, 여성 등 사회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전쟁으로 겪는 고통은 특히 더 컸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 중 일부는 '부대 마스코트(unit mascot)'라고 해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며 부대와 함께 다니기도 했다. 이들 중 몇은 전쟁이 끝난 후 미국으로 정식 입양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속의 소년 역시 부모를 잃고 미군 부대에 들어간 부대 마스코트이다. 소년이 미군에게 커피를 퍼주고 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59_649.jpg)
12,3살 되는 한 소년이 국자로 무언가를 떠서는 군복 차림 미군의 컵에 따라준다. 가을 햇볕에 검게 그을려 야무진 표정이지만 옷차림은 꾀죄죄하다. 양동이에서 뭔가를 퍼주는 이소년은 6.25 전쟁 고아다. 소년은 한국전쟁 '부대 마스코트(unit mascot)' 중 하나다.
전쟁통에 부모를 잃은 고아 중 일부는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을 거들며 부대와 함께 이동했다. 이들 중 몇은 종전 후 미국으로 정식 입양됐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조광, 이하 국편)는 24일 1950년 9월 23일 촬영된 이 흑백사진들을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을 맞아 <충청헤럴드>등 주요 언론에 공개했다.
공개된 자료는 국편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수집한 것으로, 국편 전자사료관 누리집(http://archive.history.go.kr)에서도 열람할 수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남북정상회담과,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간의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이 부쩍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일상과 평화를 담은 사진자료의 의미는 남다르다.
국편 관계자는 자료를 통해 "6.25 한국전쟁 관련 사진자료 중에서 일상과 평화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는 자료를 선별했다"면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진 속에는 6.25가 발발한 지 열흘이 넘은 한 여름에 일가족이 피난을 가는 장면도 잡혔다. 어디서 왔는 지 모를 이 가족은 남편이 개나리 봇짐을, 아내는 세간 살림을 추린 보따리를 이고, 노모는 젖먹이 어린 아이를 업고 남녘을 향했다.
![군인과 피난민(1950.7.7) =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한국군을 비롯해 전세계에서 파견된 군인들이 전선(戰線)으로 급히 투입됐다. 고향을 등진 피난민들은 전쟁을 피해 반대 방향으로 발걸음을 서둘러야 했다. 전선으로 향하는 군인의 행렬과 전선을 피해 피난을 떠나는 피난민의 행렬이 서로 엇갈리는 모습이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0_2126.jpg)
뙤약 볕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신작로에 북쪽 전장터로 향하는 군인 차랑과 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매서운 겨울은 지났지만, 추위는 채 가시지 않았지만 살기위해 피난 중인 일가족의 모습도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인 아들을 앞세우고, 남편은 지게에 세간 살이를 몽땅 싣고, 아내는 머리짐을 지고 표정없이 남녘으로 향했다.
![고향을 등진 피난민 가족(1951.3.1) =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길을 나선 피난민 가족의 모습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통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남이건 북이건 상관 없이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가재도구만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1_3155.jpg)
전황은 중공군 개입으로 1.4후퇴, 흥남철수라는 반전 속에 불안감을 더했다. 시골 집을 뒤로하고 나서는 피난민들, 다시 집으로 언제 돌아올 지 모를 기약없는 출발을 하고 있다.
전국에서 나라의 혼란속에 치안 유지를 위해 통행금지와 신분증 검열이 이뤄졌다.
더구나 곳곳에서 이념대립과 불안, 불신이 팽배하고, 각종 테러와 기물 파손, 인명살상이 자행됐다.
![신분검사(1950.10.15) = 미군 병사가 민간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신분증을 살피고 있다. 이념에 따라 편이 나뉘면서 같은 조선사람끼리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한국이 낯설었던 미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과 불안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우리 사회를 지배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2_3613.jpg)
3년 넘게 계속된 한국전쟁으로, 행방불명과 사상자를 포함한 민간인 피해자는 100만여 명에 달하고 고향을 등져야 했던 사람도 600만여 명에 이른다. 한국전쟁은 이념에 따라 편이 나뉘었기 때문에 심지어는 같은 마을에 살던 사람들 사이에도 불신과 불안, 증오가 팽배했다. 한국전쟁은 단지 정규군 사이의 전투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온한 일상까지 송두리째 흔드는 끔찍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상을 복구하려는 사람들의 의지 역시 끈질겼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곧바로 시장을 다시 열었고, 잿더미 위에 다시 삶의 터전을 지어 올렸다.
![원산의 아이들(1950.10.31) = 미군 점령하의 원산 인근에서 촬영된 사진으로, 부대 인근 마을에 살던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동생을 등에 업은 채로 친구들과 놀고 있는 모습이 수십 년 전의 여느 시골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진이 촬영되고 약 2개월이 지난 후 공산군이 원산을 점령했고, 공산군의 산업 중심지였던 원산은 다시 유엔군의 주요 폭격대상이 됐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3_4455.jpg)
![전쟁의 한편에서는 일상으로 돌아와 삶을 일궜다. 가울 추수를 하는 농민들[사진=국사편찬위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4_528.jpg)
![1951년 7월 8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을 위해 처음 만난 유엔군(오른쪽)과 공산군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5_540.jpg)
![타임지를 함께 보는 북한군, 미군 병사(1951.7.8)[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6_5537.jpg)
![6.25 한국전쟁 발발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유엔이 점령하고, 이어 공산군이 도로 찾는 영욕의 도시 원산. 당시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7_5955.jpg)
![6.25 한국전쟁 발발로 공산치하에 있다가 유엔이 점령하고, 이어 공산군이 도로 찾는 영욕의 도시 원산. 당시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8_25.jpg)
![한강 인도교의 복구[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69_514.jpg)
![북한의 철도 복구 사업{사진 =국사편안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70_719.jpg)
![다시 문을 연 재래시장[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news/photo/201806/4919_6871_918.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