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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의 쓴 소리 칼럼] JP.'정치는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더니
[신수용의 쓴 소리 칼럼] JP.'정치는 국민을 편하게 하는 것'이라더니
  •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발행인(전 대전일보대표이사,발행인)
  • 승인 2018.06.25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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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발행인(전 대전일보대표이사,발행인)
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발행인(전 대전일보대표이사,발행인)

어느 날 오후,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총재로 있던 자민련 마포당사에서 만났다. 몇몇 사무처 직원만 있으니 적막감만 들었다. 그의 방에 들어섰을 때 붓글씨를 마치고, 마르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가 쓴 글씨는 ‘思無邪(사무사)였다. DJP내각제 연합이 파기되어 자민련 일부 의원들이 ’JP화형식‘ 운운하던 때였다. 그에게 ’사무사‘를 쓴 이유를 물었다. 그는 “갑자기 그런 마음이 들어... 논어에 나오는 얘기야. 생각이 바르면 사악함이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전에 있던 신문사에서 서울 취재 책임자로 파견되는 바람에 JP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한 달에 서, 너번씩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소속의원들과 같이 있거나, 기자들 여러 명이 함께 만났다. 재수 좋게 이날은 JP의 차를 타고 단둘이 저녁까지 먹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했다.

-정치인들, 국민과의 약속 안지키니 불신할 밖에

그래서 고향 부여 얘기, 공주고 얘기, 초등학교 교편을 잡았던 얘기, 육사에 들어간 얘기, 6.25 전쟁 얘기, 5.16 사태얘기,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1980년 서울의 봄 때 얘기, 부정축재자로 몰려 재산환수와 한동안 영어가 된 얘기, 신군부 얘기, 1987년 대선출마 얘기, 사촌처제인 박근혜와 소원해진 얘기 등등 5시간 이상 대화를 나눴다.

JP께서 23일 영면했다는 부고를 받고 옛 취재수첩을 찾으니 기억나는 몇 대목이 있었다. 그에게 정치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게 정치인데, 통치자나 정치하는 사람들이 잊고 살아. 정치인들은 표를 얻고는 권력을 막부려. 국민을 우습게 알고 약속도 안 지켜.”라고 했다.

그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이냐’고 되묻자 “알아서 판단해”하며 부정하지 않았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왜 맨날 2인자 소릴 듣느냐. 너무 우유부단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가 우유부단하다고? 천만의 소리, 그랬으면 5.16이란 운명을 건 거사를 결행했겠느냐”고 인정하지 않았다.

신문에 내지 말라는 주문을 여러 차례 하던 생각이 난다. 그는 “내가 (박정희) 대통령하고 거사 후 10여 년간, 아니 10.26으로 죽을 때까지 신뢰는 변함이 없었어. 그런데 통치자아래 재주꾼들이 ‘김종필이가 이랬더라, 저랬더라. 하면서 참소(讒訴)하니까 나를 견제한 거지”했다.

정치는 상대가 적이 아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고 했던 말도 했었다. “나를 대통령과 떼놓으려고 이간질 한 사람이 내부의 적이야. 초기에 김형욱, 그리고 이후락이 그 짓들을 했어. 거기다가 4인방 알지? 길재호, 백남억, 김성곤, 김진만의 패거리가 내부의 적이야”했다.

-정치권력은 내부의 적이 생기는 법

그는 “내가 3선 개헌과 유신헌법제정에 반대했어. 부(否)를 던졌지. 이를 놓고 대통령이 난리가 난거야. 오라고 해도 안 갔지. 맘대로 해라한 거야. 내부에서 김종필을 혼내 줘야한다고 꼬드긴 거야. 그랬더니 우리 형(김종락. 전 야구협회장. 전 한국타코마회장)이 청와대에 불려간거야. 세 시간 동안 별의별 욕과 화풀이를 당하고 오신거야”했다.

그는 “어느 정도였냐면 글쎄 김형욱 이가 정보부장 할 때 (김성곤이 김형욱이 에게) 역정보를 넣는 거야. '네 자리를 아무개가 노리고 있다더라. 위에서 조종하는 것은 김종필이라고 하더라.'는 식이야. 그러니 발끈한 김형욱 이가 대상자가 누구든지 불러다가 반죽음시켜 보내곤 했어. 권력은 그런 거야".
청와대에 불려 갔다 온 형님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었다. JP는 “형님은 중국 주은래 (周恩來)를 배우라고 했어. 모택동(毛澤東)밑에서 일하던 주은래를 보며 정치하라 고했어. 그 말에 절대 공감이야”했다. 그러더니“사실 중국에도 그때 모택동이보다 월등히 머리가 좋고 샤프하고 학교를 많이 다닌 이는 주은래였어. 그래도 그 밑에서 아무 불평 없이 죽을 때까지 봉사했거든. 형님의 주신 얘기를 평생 간직해”라고 설명했다.

JP는 “차기, 차기라는 말에 엄청난 시련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박정희)은 그렇지 않았지만 은행에 다니던 형님이 쫓겨나고, 심지어 부여 국회의원선거유세 때 기관원을 풀어 차기 대통령은 김종필이다 하는 얘기를 들었느냐를 살피러 다녔어. 나만 빼고 모두다 불려가 실컷 두들겨 맞고…….”하며 씁쓰레했다.

친박(친 박정희)과 비박(비박정희)의 게임은 갈수록 노골화됐다. 그는 “어느 정도냐면 박 전 대통령이 추앙하는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었어. 충무공은 임금의 총애를 받지 못했어도 충신이었다는 거지. 아산 현충사를 갈 때마다 일부러 청와대에서 알리고 갔었어. 나는 충신이 아니라는 거지. 별의별 탄압과 견제를 당했어”했다.

JP는 “3선 개헌 반대, 제 1기 유신헌법 반대에 이어 1978년 제2기 유신헌법도 반대했어. 그러나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지. 주은래처럼. 그런데도 성웅이순신 같은 충신을 요구해와 나도 답했지. 광화문 덕수궁에 세종대왕의 동상을 세운거야. '임금을 하려면 저런 임금이 돼야 한다.'고 말이야. 그런 의미가 있는 건데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 그게 나라에 대한 충성이야."했다.

내부의 적이 무섭다는 얘기에 대해 더 물었다. 그는 “5.16을 주도한 대통령과 나, 나는 초심이 변하지 않았어. 참된 소리 간언(諫言)을 잘 듣던 대통령이 어느 날부터 누구는 이렇고 식의 참소에 흥미를 갖게 됐어. 4인방 패거리에 싸여. 나는 대통령에게 5.16정신을 잊지 말자는 약속을 철저히 믿었는데 내부의 적들의 이간질에 박 대통령이 넘어가 10.26이 된 거야”했다.

-모택동때 주은래처럼 살라는 형님 얘기가 신조

사촌처제인 한나라당 박근혜 의원과의 관계가 서먹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당이 그러니까(다르니까)”하고 웃어 넘겼다. 이어 “4인방에 둘러싸인 (박정희)대통령이 집(관저)에가서 예리(김 전 총리의 큰 딸)아빠 때문에 일을 못해먹겠다고 자꾸 하니까. 심지어 최아무개 목사와 이상한 소리를 들리니 최를 내보내자고 한 뒤(박근혜) 거리를 두더라”고 했다.

그는 “내가 처음 공개하지만 신군부실세 노태우한테 그랬어. 남영동 지하실서 부정축재조사를 받는데 그가 왔더라고. 총리님이 하실 말씀이 없느냐고 하기에, 전두환이와 신군부를 막 비판했지. 그 사람은 내가 살려달라고 할 줄 알았는지 당황해 하더라고. 마지막 할 얘기는 ‘당신하고 전두환이 하고 평생 꽉 붙어있어라. 조금만 틈이 생기면 둘 다 나보다 더 심한 꼴이 된다. 내부의 적이 재주부리는 게 권력이다’하고 말했지”했다. 나중에 5공, 6공이 그렇게 됐지 않느냐고 했다.

3김 씨(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정치를 지역주위에 안주하는 낡은 정치라고 한다고 하자 “양 김 씨는 해당된다. 그들은 영. 호남을 붙들고 대통령을 했으니까. 영. 호남이 설치니까 충청도도 모이자 한 것이지. 1987년부터 우리는 산업화가 아닌 민주화도 가능했기에 그럴 만도 했다”고 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 사람들은 나보다 국민들에게 사과를 해야 해. 아니면 충청도 사람들에게라도 용서를 구해야지. 내각제 약속을 해놓고 안 지켰어. 91년 한사람(YS)은 내각제 각서파동으로 당무를 거부하며 ‘틀물레짓’을 했고, 한사람(DJ)도 국민 앞에 내각제 개헌을 해놓고 상황을 들어 ‘몽니’를 부렸다고 내가 했지”라고 했다.

그는 “(3김씨는 )세 사람 모두 정치 골목대장이야. 나름대로 시대를 이끌었지만 미래를 키우지 못했지. 그 골목에서는 대장이면서 다음 대장을 못 키웠어. 그게 불행해. 다행히 골목대장이 있으니 구상유취(口尙乳臭)나는 조무래기가 덜 설치지. 골목대장이 사라지면 골목마다 내부싸움이 복잡해질 걸”했다.

그래서 그는 ‘정치란 국민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굶주리고 배고프던 시대를 산업화, 공업화로 극복했으니, 이제 참된 민주주의를 해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얼굴색만 변하지 속마음까지 안 변할 거라고 혀를 차던 모습이 선연하다.

-선거 참패한 보수야당 자중지란에 교훈.

향년 92세의 한국정치사의 한 획을 그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 그가 남긴 ‘정치권력 싸움은 내부의 적이 만든다’는 명언이 지금 우리 정치권 그대로다. 특히 그의 상징인 보수의 울타리에서 지금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그렇다. 말로만 민생을 외치지 아직도 계파긴 간의 혈투는 내부의 총질이나 다름없다.

친 박정희, 비 박정희간의 권력 대결의 6,70년대 패거리 정치 문화. 그런데도 반세기 가까운 지금 제 1야당인 한국당내 친 박근혜대 친 이명박 내부 분열은 여전 하다. 6.13지방 선거를 통해 나타난 민심을 읽고 나서도 '내부의 적'으로 갈라져 벌이는 꼴은 반드시 궤멸 된다. 

영면에 들어간 JP에 대한 사후 평가는 극과 극이다. 4.19혁명을 거쳐 5.16에 이르는 혼란 속에 민주화 대신 경제화, 산업화를 택해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토양을 만들었다는 긍정평가가 그 하나다. 다른 면은 인권. 독재. 장기집권과 3김 정치의 폐해 등은 상반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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