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雲廷)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7일 고향인 충남 외산면 반교리의 선영으로 귀향, 영면에 들어갔다.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1946년 서울대에 입학하기 전까지 충청에서 유년 및 학창시절 20년을 보낸 김 전 총리가 한국 정치사의 한획을 그은 뒤 귀향하는 것이다.
![운정 (雲廷)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7일 고향인 충남 외산면 반교리의 선영으로 귀향, 영면에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6/5015_6979_5012.jpg)
고 김 전 총리의 영결식은 이날 오전 빈소인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진 뒤 서울 중구 신당동(청구동)과 모교인 공주고 교정에서 노제를 지낸 뒤 부여로 향했다.
영결식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와 심대평 전충남지사, 자유한국당 정우택·정진석·안상수 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장례위원장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는 조사를 통해 "김종필 총재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만끽하는 오늘을 있게 한 분"이라며 "산업화의 기반 위에 민주화가 싹 트이고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목숨을 건 혁명과 매국노의 누명을 쓴 한일협상, 두 차례의 외유와 신군부 탄압과 망명의 정치 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가 아니고 무엇이겠나"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모든 고초를 꿋꿋이 이겨내시고 주위를 다독이며 웃으시던 모습에 사랑과 존경 버리지 않을 수 없다"고 추모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는 아들인 나카소네 히로부미(中曾根康弘) 참의원이 대독한 조사를 통해 "선생께서는 초대 한일국회의원연맹 대표를 역임하고 국무총리로서 한일 공동선언을 추진하는 등 한일관계 강화를 위해 시종일관 힘썼다"고 말했다.
그는 "전후 혼란 속에서 하루라도 빨리 조국이 부흥하고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중책을 맡으시며 한시도 마음 편한 날 없이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면 실로 대한민국과 행보를 같이 한 생애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동북아 정세는 큰 전환점에 있다. 일본과 한국은 많은 어려움 극복하며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며 "옛 친구를 떠나보내 참으로 슬프기 짝이 없다"고 밝혔다.
영결식 후 김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는 고인이 살았던 신당동 자택에서 노제를 지냈다.
![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노제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구동 고인의 자택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6/5015_6978_486.jpg)
유족들은 김전총재의 영정과 위패를 가슴에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 고인이 지내던 집안 구석구석을 차분하게 돌았다.
환히 웃는 모습의 김 전총리 영정은 손자의 손에 들린 채 '평생 배필' 고(故)박영옥 여사와 자신의 사진이 가득 걸린 2층 침실, 서재, 그리고 1층 거실과 식당 등을 천천히 돌았다.
곧이어 딸 예리씨 등 유족들은 자택 대문 앞에 멈춰서있는 운구차 아래 수박, 배, 사과, 대추 등을 올린 노제상에 향을 피우고 절을 올렸다.
노제가 열린 JP자택에는 70∼8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정우택·성일종 의원은 노제에도 동행했고, 이웃 주민들도 나와서 노제를 지켜봤다.
이어 고인의 유해는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이 되고, 김 전 총리가 졸업한 공주고등학교와 부여초등학교 교정, 그리고 고향 부여 시내를 거쳐 부여군 외산면 가족묘원으로 향한다.
공주고는 이날 오후 2시께 교문 앞에서 임재관 총동창회장의 추도사와 유인열 공주고 동창회 부여지부장의 추도시 낭송으로 모교와 고향 사랑이 남달랐던 김 전 총리를 애도했다.

이어 김 전 총리를 태운 운구차는 공주고 교정을 돌며 모교에서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했다.
고인은 이어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가 2015년 잠든 곳으로 옮겼다.
김 전 총리는 묘비명 아래에서 지난 2015년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박영옥 여사와 합장 됐다.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부인 고박영옥여사와 합장된 묘역[사진=충청헤랄드DB]](/news/photo/201806/5015_6980_415.jpg)
부인 박영옥 여사가 숨을 거둔 직후 써뒀던 묘비명은 모두 121자로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 짓는다. 숱한 질문에 그저 웃음으로 대답하던 사람, 한평생 반려자인 고마운 아내와 이곳에 누웠노라"고 돼 있었다.

앞서 김 전 총리는 지난 23일 오전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일으켜 순천향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오전 8시 15분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금자탑을 쌓은 충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에 전격 등장한 뒤 초대 중앙정보부장, 국무총리, 9선 의원을 거치면서 '충청의 거목' 역할을 해왔다. 김 전 총리는 역사적으로 산업화에 기여했다는 긍정평가와 5·16 군사 쿠테타를 발판으로 성장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영결식에는 강창희 전 국회의장, 이한동 전 국무총리, 자유한국당 정우택·정진석·안상수 의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