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람은 도지사, 또 한사람은 그의 수행비서 사이였지만, 결국 형사 피고인과 고소인으로 법정에서 조우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첫 번째 공판기일이 진행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서는 이 형사사건의 피고인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고소인 신분인 김지은 전 충남도청 수행비서가 출석했다.
-폭로후 4개월 만에 만난 안 전 지사와 김지은씨
안 전 지사와 수행비서인 김지은 씨가 '폭로' 넉 달 만에 법정에서 마주한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첫 번째 공판기일이 진행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대법정에는 이 형사사건 피고인인 안 전지사와 고소인 신분인 김지은 전 충남도청 정무비서가 출석했다.[사진=충청헤럴드DB]](/news/photo/201807/5115_7115_165.jpg)
법정 앞에는 재판 시작 전부터 방청을 원하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방청석 46석에 모두 75명이 응모해 당첨되지 못한 일부는 되돌아 갔다.
재판 시작 전에는 시민단체들로 꾸려진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정의로운 판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은 피해자 인권회복과 가해자의 처벌이라는 단순하고도 분명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결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당첨된 시민과 취재진이 모두 입장하고 오전 11시 재판이 시작하기 직전 검은색 티셔츠와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은 김지은씨가 법정에 들어섰다.
김지은 씨는 시민단체 및 법원 관계자들과 함께 곧장 법정 안으로 들어가 방청석 가장 앞줄의 빈자리에 앉았다.
이어 안 전 지사와 그의 변호인들이 입장하면서 재판이 시작됐다.
안 전 지사는 남색 정장과 흰색 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재판부가 피고인의 출석과 주소, 직업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에 차분하게 답했다.
안 전 지사는 출석을 묻는 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의 말에 "예 여기 나와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재판장이 직업을 묻자 안 전 지사는 "현재 직업은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재판장은 "지위와 관련된 사건이므로 `전 충남도지사`로 하겠다"고 말했다.
-재판에서 ..."성폭력" vs "합의된 관계" 치열한 공방
검찰은 공소사실과 관련, "안 전 지사가 차기 유력 대선 후보인 도지사로서 수행비서인 김 씨에 대해 절대적인 지위와 권력을 갖고 있었다"며 "그가 갑의 위치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덫을 놓고 먹이를 기다리는 사냥꾼", "권력형 성범죄 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 "나르시시즘적 태도" 등으로 공소사실요지 설명을 하자,안 전 지사는 안경을 벗어 안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2일 서울서부지법열린 첫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7/5115_7144_00.jpg)
안 전 지사 측은 "검찰이 수행비서의 의미를 과장한다"며 "가령 모두가 `노`라고 할 때 수행비서는 `예스`라고 해야 한다는 식의 얘기는 수행비서의 적극성을 강조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고개를 반쯤 숙인 모습의 안 전 지사는 간혹 손을 입가에 갖다 대는 정도로 움직일 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방청석에서 1시간 45분가량 이어진 오전 공판 내내 노트에 재판에서 오가는 발언 내용을 적는 등 재판을 꼼꼼히 지켜봤다. 피해자 변호사 측은 지난달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김 씨가 직접 방청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오전 재판이 폐정한 뒤 오후 재판을 위해 법정이 휴정한 뒤 안 전 지사 측은 법정 출입문으로 빠져나갔다.
안 전지사가 나갈 때까지 시민단체 관계자 등과 법정에 남았던 김 씨는 출입문이 아닌 출구로 나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오후 재판에서는 검찰이 서류증거를 제시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검찰은 안 전 지사가 고소인 김지은 씨에게 보낸 메시지, 김 씨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진료받으려 한 사실, 김 씨가 매우 성실했다는 참고인들의 진술, 김 씨의 폭로 후 안 전 지사 가족들이 김 씨 사생활을 파악하려 한 정황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 수행비서가 도지사의 말을 절대적으로 따라야 했던 업무 환경을 뒷받침하는 제반 상황, 김 씨가 안 전 지사와 성관계 후 비정상적 출혈이 있어 올해 2월 26일자 산부인과 진료에서 '원치 않는 성관계에 의한 것'이라는 진단서를 받은 사실 등도 증거로 나왔다.
![안희정 전충남지사가 2일 열린 첫 재판을 마치고 서울서부지법을 나오고 있다[사진=YTN켑처]](/news/photo/201807/5115_7145_2215.jpg)
특히 검찰은 김 씨가 충남도청 운전비서 정모 씨에게서 성추행당한 것을 주변에 호소했으나 몇 달간 고쳐지지 않았던 정황을 제시하면서 도청 조직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 극히 낮았고 이에 따라 수행비서가 도지사의 성범죄를 밝힐 환경이 아니었으므로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이 성립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여성과 남성이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경험의 차이에 의해 성과 관련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고 보고, 특정 성별에 유리 또는 불리한 상황은 없는지 등을 민감하게 받아들여 살펴보는 태도를 가리킨다.
안 전 지사 측은 이에대해 "검찰 증거에는 러시아 출장 당시 안 전 지사가 김 씨 옆에 가서 앉는 것을 봤다는 참고인 진술이 있는데 거기에는 안 전 지사가 김 씨 몸을 만지는 것은 못 봤다는 내용이 이어진다"고 반박했다.
또 "단순히 범죄 사실을 부인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며 "피해자로 보기 어려웠던 김 씨의 태도 등에 대한 진술에 관한 내용도 피고인 진술에 포함됐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김 씨는 운전비서의 성추행을 두고 '가장 힘든 일'이라며 주변에 적극적으로 호소했다"며 "피고인으로부터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를 호소한 내용은 없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안 전 지사는 첫 재판을 마친뒤 " 재판부 판사님의 의견도 그렇고, 결정도 그렇습니다. 이 재판의 여러 쟁점 사안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언론인 여러분께 직접 말씀 못 드리는 점 이해 부탁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재판부는 6일 오전 두 번째 공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은 김 씨가 증인으로 출석하며, 김 씨 사생활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