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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용의 뉴스창] 안희정 재판 '진료기록 보도' 알권리냐, 인권이냐
[신수용의 뉴스창] 안희정 재판 '진료기록 보도' 알권리냐, 인권이냐
  • [충청헤럴드= 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18.07.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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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의 성폭력 의혹 사건 재판을 언론이 보도하면서 충남도청 김지은(33) 전 수행비서의 개인 진료 기록 등을 상세히 공개, 선정적 행태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김 씨의 진료 기록을 강조한 보도 외에도 범행 수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보도 역시 문제로 꼽혔다.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의 재판은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 11부(부장판사 조병구)가 지난 6일 오전 10시 다음날 오전 1시45분까지 증인 신문을 16시간동안 진행 하는 등 두 번째 재판까지 마친 상태다.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수행비서 성폭력 의혹으로 재판 중인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9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모두 4차례 성폭행하고 여러 차례 추행한 혐의(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은 지난 2일부터 오는 16일까지 7차례 열릴 계획이다.

민언련(언론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6일 낸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안 전 지사 공판 보도와 관련 문제로 ▲피해자 김 씨의 진료기록 부각 ▲신체 부위 언급과 범행 수법 묘사 ▲가해자 변명 여과 없이 전달 등 3가지를 지적했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민언련은 지난 2일부터 4일까지 주요 신문, 방송, 통신사 등이 안 전 지사 공판 보도 전반을 점검했다.

민언련이 첫 번째로 꼽은 문제는 김지은씨의 진료기록을 보도에서 공개한 것이었다.

민언련은 이 가운데 SBS가 '안희정 첫 재판 공방…"덫 놓은 사냥꾼" vs "법적 책임 없어“(7월 2일)' 온라인 기사를 통해 '원치 않은 성관계에 의한' 비정상적 출혈이 있었다는 김 씨의 진료기록을 처음 공개했다고 설명했다.

민언련은 이데일리는 제목과 소제목에 '원치 않은 성관계'(7월 2일)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했고, 중앙일보는 '김지은이 제출한 산부인과 진단서엔'(7월 3일)이란 표현을 썼다. 국민일보는 모든 키워드를 넣어 '"원치 않은 성관계에 의한 출혈" 김지은 산부인과 진단서 들여다보니'(7월 3일)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지적했다.

월간조선과 조선일보도 각각 '산부인과 진단서 증거로 제출'(7월 3일), '산부인과 진단서 제출한 김지은씨'(7월 3일)라는 내용을 제목에 담았다.

민언련은 이와 관련 "국민일보와 조선일보가 보도 제목에 가해자로 지목된 안희정 전 지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오직 김지은 씨 이름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지적했다.

방송사들도 마찬가지다. YTN은 '뉴스통', '뉴스타워'(모두 7월 3일)에서 김지은 씨 진료기록을 언급했고, MBN '뉴스빅5'(7월 3일)는 별도의 자료화면까지 만들었으며, OBS도 '오늘뉴스'(7월 3일)에서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민언련은 "해당 진료기록은 김 씨의 피해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로, 사건과 무관한 자료는 아니다"라면서도 "동시에 진료기록은 개인의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는 내밀한 정보를 담은 자료이기도 하다. 의료법에는 진료기록 열람 및 사본 발급 요건이 별도로 명시돼 있다. 즉 피해자가 진료기록을 법원에 제출했다는 이유로, 언론이 마치 '허가'라도 받은 그 내용을 앞 다퉈 무분별하게 보도하는 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국민일보의 "목욕할 때도 휴대폰 소지" 김지은씨가 받은 '안희정 보좌 매뉴얼‘(7월 3일), 동아일보의 "덫 놓은 사냥꾼" 법정서 안희정 몰아붙인 검찰(7월 3일), 서울신문의 ’검찰 "안, 사냥꾼처럼 덫 놓고 위계 악용" 질타 등이 피해자의 상태나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저지른 수법을 상세히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과도한 서술은 피해자에게 사건을 다시 상기시켜 2차 가해를 유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민언련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장을 'vs' 구도로 나열한 보도와 '학벌', '고학력자', '장애인', '애정관계' 등 안 전 지사 측이 내놓은 주장을 앞세운 보도역시 문제라고 규정했다.

민언련은 "성폭력 사건 가해자의 일방적 주장을 전면에 부각한 보도는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잘못된 사회적 통념을 확대 재생산할 위험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 전 지사 측이 '성폭력 없음'을 주장하기 위해 김지은 씨가 '장애인도 아동도 아닌 결단력 있는 고학력 여성'이었다는 점을 부각한 것은 그 자체로 비판받아 마땅한 행태"라며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쓰고, 심지어 제목으로까지 부각하는 것은 부적절한 보도 태도"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와 여성가족부(장관 정현백)는 지난달 8일 '성폭력·성희롱 사건, 이렇게 보도해 주세요!' 책자를 발간해, ▲잘못된 통념 벗어나기 ▲피해자 보호 우선 ▲선정적-자극적 보도 지양 ▲신중한 보도 ▲성폭력 예방과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기 등 5가지를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공감기준으로 제시했다.

기사를 작성할 때 주의사항으로 10가지를 들었다. 먼저 ▲피해자 등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게 주의할 것 ▲피해자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거나 직접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방식보다는 피해자를 보호하기에 적합한 보도방식을 고민할 것 ▲사실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신중하게 보도할 것 ▲성폭력·성희롱을 근절하기 위해 피해를 유발하는 조직문화와 사회구조, 피해자 보호와 구제 대책, 예방 대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도할 것 등을 권장했다.

피해야 할 태도는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 사생활(습관·기호·질병·장래희망·성적 이력·주변인들의 평가 등) 보도를 삼갈 것 ▲피해자의 피해 상태를 자세하게 보도하거나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보도를 하지 않을 것 ▲피해자에 책임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보도를 하지 말 것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자극적으로 묘사하거나 사건 심각성을 희석하는 보도를 하지 말 것 ▲가해자의 변태적 성향, 절제할 수 없는 성욕 등을 지나치게 강조해 사건 원인이나 범행 동기에 관해 잘못된 통념을 심어주는 보도를 피할 것 ▲사건 당사자에 대한 잘못된 사회통념을 갖게 하거나 확산하는 보도를 하지 않을 것 등 6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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