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은 양측의 축구 게임과 같다. 재판부(판사)는 심판이다.
민사도 그렇지만 형사 사건의 경우는 게임이 확연하다
한쪽 선수는 재판을 건(공소를 제기한) 검찰이고, 한쪽은 피고인이다. 그러나 검찰은 형법의 전문가이지만, 대개의 피의자는 형법이나 재판에 무지한 민간인이기에 전문가인 변호인에게 대신 싸워줄 것을 의뢰한다.
룰에 준할 때 당당한 게임이고 유무죄를 가리는 것이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는 것이다.
![업무상 위력여부로 유무죄가 가려질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7/5490_7660_640.jpg)
17일 현재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심리로 열리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54.불구속)의 재판은 사건공판준비기일 두 차례, 공판기일 여섯 차례 등으로 모두 8번의 재판이 진행됐다.
안 전 지사의 사건은 '업무상 위력'의 실체를 입증하려는 검찰과 이를 막아내며 결백으로 맞서는 안 전 지사 측의 치열한 공방 가운데 후반으로 치닫고 있다.
재판부는 앞으로 집중 심리로 속도를 내 '권력형 성범죄' 실체 규명에 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는 '업무상 위력'을 놓고 검찰은 유죄를 입증하는데, 안 전 지사 측은 결백호소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의 혼란은 증인들마다의 극과 극의 증언 때문이다.
피해자 김지은 씨(33)의 증인들의 증언과, 안 전 지사 측 증인의 증언이 180도 다르다.
김 씨 측 증인들은 안 전 지사에 대해 "억압·권위적"이라는 증언을, 안 전 지사 측 증인은 "수평·민주적"이라는 대조적인 증언을 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성범죄"라고 규정했다.
안 전 지사가 업무상 자신의 감독 아래에 있던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를 위력을 이용해 간음했다는 것이다.
안 전 지사 측은 이와 다르다. 안 전 지사 측은 "그런 행동(성관계) 자체는 있었지만, 의사에 반한 것이 아니었고 애정 등의 감정 하에 발생한 것"이라며 "검찰이 주장한 위력은 존재하지 않고, 위력이 있었더라도 성관계와 인과관계가 없으며, 성범죄 의도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각 행위나 반응, 위력의 구체적 내용, 피고인이 위력을 어떻게 이용했고 피해자가 어떻게 의사 제압을 당했는지를 볼 것이라며 앞으로 이런 부분에 집중해 변론을 펼칠 것을 양측에 주문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피고인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범위를 넘는 근거 없는 풍문 등에 의한 사생활 침해 변론은 제한하겠다"며 "피해자에 대한 힐난성 신문도 불허한다"고 밝혔다.
재판에 들어가자 증거가 빈약한 풍문이나 피해자 또는 증인에 대한 힐난성 신문이 나왔다.
◇ 안희정의 '업무상 위력' 법정 공방

계량화되지 않고 표현도 어려운 안 전 지사의 업무상 위력은 추상적이어서 재판부는 그의 위력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했는지 밝히려고 대선 경선 캠프나 충남도청에서 모습을 보려고 했다.
검찰 측 증인들은 "안 전 지사는 조직 내 왕 같은 존재였다", "안 전 지사의 캠프는 선배들의 성폭력이나 폭력 등이 자주 일어나는 억압적·권위적 분위기였다", "안 전 지사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결정됐다", "그가 나타나면 주변이 위축됐다", "주변에 '예스맨'만 있었다" 등 증언들을 내놨다.
반면 안 전 지사 측 김 씨 후임 수행비서, 전 비서실장, 안 전 지사 부인, 도청 공무원 등은 상반된 주장을 했다.
이들은 "안 전 지사가 화를 내거나 호통친 일은 없다", "캠프 내 성폭력·폭력은 보거나 들은 적 없다", "실수해도 가볍게 지적한 다음 나중에 챙겨줬다", "일이 끝나면 '고맙다, 애썼다' 등 격려해줬다", "고압적이라든지 무리하게 일을 시킨 적이 없다" 등의 얘기를 쏟아냈다.
검찰 측과 피고인 측 증인들이 상반된 경험담과 인상, 평가를 제시한 것 뿐이기 때문에 고소인인 김지은 씨에 대한 안 전 지사의 평소 태도, 직, 간접적인 경험, 일관된 진술 여부가 재판부 판단에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김지은'에 대한 2차 피해 우려=재판이 거듭될수록 김 씨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 행실 등에 관심이 커져 2차 피해 우려도 나온다.
공판준비기일에서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이 "(김 씨에겐)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것으로 보이는 여러 태도, 행동, 객관적 정황이 있었다"고 밝혀 예견됐던 일이다.
안 전 지사 측 증인들은 "성폭력이 있었다는 시점을 전후해 김 씨 태도에 변화가 없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활기찬 메시지를 보냈다", "다른 직원한테 당한 성추행은 잘 털어놨다" 등 김 씨의 '피해자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법한 증언을 여럿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여과되어야 할 내용이 공개되고, 보도됐다.
여기에다, 김 씨가 안 전 지사를 흠모했거나 이성으로 좋아했다는 진술도 이어졌다.
![시름에 잠긴 안희정지사[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7/5490_7663_1654.jpg)
안 전 지사 부인 민주원 씨가 "김 씨는 제 남편을 위험에 빠뜨릴 사람 같았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반해 검찰 측 증인들은 "김 씨 별명은 '일의 노예'였다",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쓰레기통이나 간식 통도 김 씨가 챙겼다" 등 김 씨의 성실한 업무 자세를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김 씨의 업무 태도에 대해선 일부를 제외한 피고인 측 증인들도 같은 의견을 냈다.
안 전 지사 측 증인 진술 중에는 사실관계보다 느낌, 개인적 평가, 전해 들은 이야기에 과하게 의존하거나 김 씨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재판부의 제지도 받았다.
검찰도 무리한 반대신문이나 증인과 언쟁을 벌이는 듯한 질문으로 제지를 받기도 했다.
다만 공개 증언한 증인이 피고인 측은 7명인데 검찰 측은 2명에 그쳤다.
이에 따라 김 씨 측이 "2차 가해"라고 주장할 만한 내용도 더 많이 노출됐다.
![[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7/5490_7662_1236.jpg)
◇1심 이달 중 종료, 내달 선고 전망=안 전 지사 사건은 지난 3월 5일 김 씨의 최초 폭로 때부터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유력 정치인의 성 스캔들'이어서 관심이 뜨거웠다.
연초부터 들불처럼 번진 '미투 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된 안 전 지사는 가장 큰 정치적 권력자다.
재판이 시작된 뒤 안 전 지사 측이 검찰 측 증인의 증언이 사실과 다르다며 증인을 모해 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씨 측은 "전형적인 성범죄 역고소이자 본보기 응징"이라고 비판하며 공방도 벌였다.
재판부는 이목이 쏠린 이번 재판을 7월 중 집중 심리할 뜻을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16일 제6회 공판기일을 열어 비공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후 23일에는 제7회 공판기일로 예정돼 있으나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다. 피고인 안 전 지사에 대한 신문이 이뤄질지, 검찰이 구형량을 밝히는 결심 공판이 될지 불투명하다.
재판부는 이달 중 결심 공판이 진행되더라도 시간을 갖고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