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천안시 “법인 승인 기준 완화 어려워” 난색

사마리아인은 종교적인 차이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에게 늘 이방인으로 배척받아 왔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오히려 강도를 당한 행인에게 선행을 베풀며 이스라엘 민족에게 경종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해도 제도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방인.
충남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에 위치한 장애인거주시설 ‘사랑과 평화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순 원장의 심정도 다르지 않다. 방임 속에 비참한 생활을 하던 지적장애인들을 외면할 수 없어 뛰어들었지만, 충남도나 천안시로부터 보조금을 전혀 받지 못해 수년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여성 지적장애인 10명이 지내고 있는 이 시설은 지난 1997년 교회 목사 A씨와 그의 아내가 설립해 운영해 왔다. 하지만 시설은 열악했고, 운영·관리는 허술했다. 중증장애인을 비롯한 지적장애인 10명이 쓰레기가 가득한 채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방 한 칸에서 지내고 있었다.
3년 전 회계 멘토링을 위해 방문했다 이런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김재순 원장은 우선 이들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시설 인수를 결심한다.
때 마침 천안시는 당시 97세로 고령 시설장인 A씨에게 공문 등을 보내 타인에게 시설 운영권 양도를 권고한다. 인수에 나선 김재순 원장에게 A씨는 7억 원이라는 터무니없이 높은 비용을 요구하지만, 김 원장은 명의로 빚을 내면서까지 그 돈을 지불하고 2016년 5월 인수하게 된다.
“당시 건물 상태를 봐서는 3억 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방치되고 있는 지적장애인들을 하루 빨리 구해야겠다는 생각에 모든 돈을 끌어 모았죠. 그렇게 인수하고 가장 처음 한 것이 청소였어요. 쓰레기만 10톤이 나왔다니까요.”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랑과 평화의 집’이 법인시설이 아니다 보니 국비는 물론, 천안시와 충남도의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천안시는 충남도의 매칭예산이 없어 지원이 어렵고, 충남도는 지자체가 보조금을 부담해야 한다며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 입소자들로부터 받는 운영비로 운영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실정은 행정기관에서 바라보는 눈과 달랐다.
“10명의 장애인 앞으로 들어오는 기초수급과 생계지원비 800만 원으로 한 달을 꾸려나가야 하는데, 직원 4명 등 인건비로만 800만 원이 들어가요. 이밖에 월 평균 100만 원 정도 되는 후원금으로 공과금, 식비 등 기타비용을 쓰고 나면 얼마 남지 않거든요. 적자일 때도 있고요. 천안시 복지재단까지 찾아가 겨울철 난방비 지원을 요청해봤지만, 지원 근거가 없어 거절당했어요.”
이런 난관의 타개책으로 김 원장은 법인 승인을 제시한다. 시설이 법인 승인을 받게 되면 운영 보조금을 지원받고, 더 많은 생활지도원들이 입소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입소자들의 생계지원비, 후원금 등 현재 운영비만으론 역부족인 상황도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다.
한때 2000~3000만 원의 예치금을 내면 관계자 판단 하에 개인 신고시설을 법인화 시켜줬던 충남도가 인원·규모에 따른 시설장의 적정자산 보유액을 기준으로 삼는 기존 지침을 따르면서 법인 승인이 어려워지게 됐다고 김 원장은 토로한다.
그럴 경우 이 시설은 현금 보유액 2억 원을 포함해 총 자산 7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허나 이미 시설 인수비용을 위한 채무도 상당한 상황에서 이 금액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 김 원장은 매달 현재 4억 원이 넘는 부채에 대해 이자만 갚아 나가고 있는 상태다.
개인시설 법인전환 논란 한창…충남도 입장변화 기대

이런 문제는 ‘사랑과 평화의 집’뿐 아니라 충남의 모든 개인신고시설들이 겪는 어려움이기도 하다. 그나마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지내며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충남도의 입장변화에 대한 기대를 걸게 한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천안시 직산읍 장애인복지시설 ‘등대의 집’에서 열린 충남도 보건복지정책 현장시찰에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이뤄진 바 있다.
이 자리에서 구본영 천안시장은 양승조 복건복지위원장에게 “장애인거주시설 11곳 중 법인시설 5개만 국비를 지급받고 나머진 시비로 충당 중이다. 시설기준에 실질적인 운영평가를 반영해 국비지원이 확대되도록 힘써 달라”고 건의했다.
또 ▲정부의 소규모시설 중심 정책에 따른 인건비 인상폭 국비 지원 ▲소규모시설 인력 및 지원체계 마련 등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개정 ▲소규모장애인시설 운영비와 인력지원 확대 등의 요구가 제기됐다.
이에 당시 양승조 위원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전달받은 장애인 시설 관련 요청과 건의는 면밀히 검토해 정부정책과 예산에 반영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나 법인전환 기준 완화는 찬반이 극명한 사안이다. 법인전환 요건을 완화했을 경우 자칫 시설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행정기관에서 법인전환 여건 완화 여론에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안시 관계자는 “김 원장의 선의와 열정은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법인 승인을 받으려 했다면 이를 염두에 두고 설립 초기 때부터 요건을 제대로 갖췄어야 했다”고 안타까움을 내비췄다.
충남도 관계자 역시 “시설 운영자가 보조금에 기대려고 하면 안 된다. 무리하게 법인 승인을 받은 뒤, 시설이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고 경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 당시 예치금을 받고 법인승인을 내줬던 것은 당시 개인시설 양성화 기조 등에 따라 일시적으로 관계자 재량으로 처리됐던 것”이라며 “예치금을 받고 법인 승인을 해주는 것은 차후 시설장이 소득을 늘린 상태에서 관리소홀과 운영태만을 일삼을 빌미를 줌으로써, 입소자들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도 크다”고 지적했다.
한편, ‘사랑과 평화의 집’은 입소자를 기존 10명에서 1~2명 늘릴 계획이다. 인원이 늘면 기준에 따라 생활지도원도 충원돼야 한다.
충남도와 천안시는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지침에 따라 입소자 충원 기준을 협의하는 과정에 있으며, 사랑과 평화의집이 안정적으로 인원을 늘릴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