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충남지사가 2일 열린 첫 정례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관용차량 교체의 이유에 대해 ‘감정상 문제’라고 이유를 밝혀 성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취임 직후인 지난달, 양 지사는 전임 안희정 지사가 산 지 1년도 채 되지 않고 운행 거리도 4만9000㎞인 기존 카니발 관용 차량 대신 제네시스 EQ900을 새로운 관용차로 구입했다. 뚜렷한 명분 없이 취임하자마자 1억8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차량을 구입했다는 점에서 혈세낭비라는 빈축을 샀다.
기자회견 자리에서 그 이유를 묻자 양 지사는 “인수위 시절 관용차를 교체하자고 한 것은 제가 그런 종류의 차를 타지 않은 것도 있고, 전임 지사와의 여러 가지 문제와 연계해 그 차를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것이 교체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당시에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했다.
특히 “다만 시기에 있어서 적절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면서도 “새로 시작하는 마당인데 전임 지사와의 ‘감정상 문제’가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감정상 문제’라는 말이 화근이 됐다. 업무적인 게 아니라 성추행 혐의를 받는 안 전 지사와의 ‘선긋기’가 목적이었다는 셈.
양 지사는 앞서 안 전 지사가 사용한 관사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런 기조를 보여 왔다. 2150㎡(650평) 대지, 231.08㎡(70평) 규모인 관사는 총 건축비용만 18억4279만 원에 월평균 공과금은 80여만 원이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호화공관’ 논란을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안 전 지사의 성추행 범행과 연관된 장소로 지목되는 만큼 사용하기를 꺼렸다는 후문이다.
이 역시 어찌됐든 도민의 혈세를 들여 마련한 재산이다. 그럼에도 추후 활용계획을 논의 중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방치되고 있다. 예산 낭비라는 비판을 감수하더라도 안 전 지사와 관련된 것은 사용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감정상 문제’로 안희정과 선긋기…혈세낭비 비난 '실검 1위'

문제는 이 같은 양 지사의 태도가 도민들의 눈높이와 어긋났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양 지사는 물론 그의 측근들이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별 문제 아니지 않냐’는 식의 그의 답변이 언론을 통해 전파되자 민심은 공격적으로 돌아섰다.
‘사사로운 감정에 혈세를 낭비하다니’, ‘자기 돈이었으면 그렇게 썼겠는가’, ‘안희정이 그렇게 싫었으면 도지사도 하지 말지’, ‘당선되자마자 도민의 상전으로 군림하려 하느냐’ 등 비난 댓글이 관련 기사와 SNS 상에 쇄도하고 있다.
이날 저녁 JTBC 뉴스에 이 내용이 조명되자 양 지사는 포털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 1위, 메인뉴스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양 지사는 2013년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날린 ‘선친 전철 발언’으로 보수세력의 맹공에 시달린 바 있다. 그의 발언 취지와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재해석 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결이 다르다.
어떤 정치적 해석이나 정당의 공격도 없었다. 오로지 ‘도민의 눈높이’를 가늠하지 못하고 있는 양승조라는 정치인에 대한 회초리였다. 4선 국회의원, 14년의 의정활동을 통해 ‘선비 정치인’으로 불렸던 그로서는 뼈아픈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한편으로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준 도민들이 바라는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지 않았을까.
‘1.9’의 국회의원→‘5.9’의 도지사, 달라진 무게감 인식해야

돌이켜 생각해봐도 답변 당시 양 지사는 후폭풍을 전혀 예상치 못한 것 같다.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늘 신중함을 잃지 않던 평소 모습으로 미뤄 보면, 진심으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달라진 자신의 입지를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에 한 명인 대통령의 무게감을 ‘1’로 가정하면 ▲300명 중 1명인 국회의원은 ‘0.3%’ ▲52명 중 1명(20대 국회 기준)인 4선 이상 국회의원은 ‘1.9%’ ▲17명 중 1명인 도지사는 ‘5.9%’로 볼 수 있다. 단순 수치로만 봐도 그의 정치적 중량은 3배 이상 무거워졌다.
그만큼 주목하는 언론도 많고, 작은 말 한마디로 인한 파장도 크다. 그에 따른 책임감도 무겁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양 지사는 관용차량 비난 여론을 ‘일부 언론의 시각’으로 치부했다. 모든 정치인들에게 해당되지만 특히나, 광역단위의 종합행정을 책임지는 도지사는 작은 의견일수록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소관 법률에 집중하면 됐던 국회의원과 달라진 점이다.
사실 이번 사태 전만 해도 양 지사는 적극적인 소통행보를 보이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던 중이다. 공직사회는 물론, 지역의 각종 기관단체와 지속적으로 간담회를 마련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또 매월 첫째 주 목요일, 정례 기자회견을 갖기로 하고 “어떤 질문에도 숨김없이 대답 하겠다”고 밝히는 등 언론과의 스킨십도 적극적이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지 않았는가. 아무쪼록 이번 신고식이 그에게 ‘쓴 약’이 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