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53)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수행 여비서 김지은씨(33)가 안 전지사의 1심무죄 판결 후 사법부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 씨는 이날 오후 5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350여 개 여성·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결성한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이하 시민행동)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못살겠다 박살내자'는 이름의 집회에 보낸 편지형식의 입장문을통해 사법부에 대한 심경을 공개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사건 무죄에 분노한 시민들이 집회를 열고 사법부와 수사기관을 규탄하기 위해서 열린 집회다.
![김지은씨 법률대리인 정혜선 변호사[사진출처= 법률신문 켑처]](/news/photo/201808/6137_8497_224.jpg)
집회에서 김씨를 변호하고 있는 정혜선 변호사가 김 씨의 입장문을 대신 읽었다.
김 씨는 “살아있겠다고 했지만 건강이 온전치 못하다. 8월14일(선고일) 이후에는 여러차례 슬픔과 분노에 휩쓸렸다”며 “죽어야 제대로 된 미투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야 할까 라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안 전 지사의 재판부를 향해 “저는 경찰과 법원의 집요한 질문에도 성실히 대답했다. 그런데 안희정에게는 왜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썼는지 묻지 않았나, 왜 가해자에게는 묻지 않으면서 제 이야기는 듣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김 씨는 "세 분 판사님들은 제 목소리를 들었나. 검찰이 재차 확인한 증거들을 봤나. 듣지 않고 확인하지 않으면서 왜 묻나. 왜 내 답변은 듣지 않고 가해자 말은 귀담아듣는가"라며 재판부 판사 3명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하는 판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며 "바로잡을 때까지 이 악물고 살아있겠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거듭 계속 살아서 끝까지 싸우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씨는 “여러분이 권력자와 상사에게 받는 그 위력과 폭력은 제가 당한 것과 같다”며 “제발 함께 해 달라”고 강조했다.
안희정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활동가 오 모 씨는 "1심 재판부는 새 입법이 있으면 해결될 거라고 했지만 틀렸다"며 "피해자에게서 찾은 단서 하나하나, 가해자 측 증인들이 일방적으로 말한 것을 피해자의 '예스'로 읽었다"고 법원을 겨냥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피해 말하기인 ‘#미투’ 이후 네차례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열었던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는 주제로 집회를 열었다.
이날 집회는 원래 한 주 뒤인 25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나 안 전 지사의 무죄 선고 이후 앞당겨졌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 혐의 사건 무죄 선고를 규탄하는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8/6137_8496_1752.jpg)
집회에는 “안희정은 유죄다, 사법부도 유죄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성범죄자 비호하는 사법부도 공범이다”, “피해자 옆에 우리가 있다”는 붉은색 판에 흰 글씨의 응원구호가 물결을 이뤘다.
김 씨에 대한 지지와 안 전지사에 대해 무죄를 내린 법원과 수사기관에 대한 분노의 대열이 점차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날도 선글라스와 모자로 폭염더위에 맞선 여성들은 집회 시작 전인 오후 4시30분쯤 부터 모이기 시작해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를 채웠다. 집회 참가자들은 크게 늘어 약 7000명(집회측 추산)이 모였다.
당초 1차선에 앉았던 참가자들은 오후 5시반 쯤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서대문역으로 향하는 4차선 도로중 3차선을 가득 메웠다.
앞서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2주기였던 지난 5월 열렸던 4차 끝장집회에선 2000명이 모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씨가 무대에 올라 “재판정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우리의 자리는 여기밖에 없다”며 “우리는 조각나서 구석에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참가자들은 경찰의 폴리스 라인을 3차로로 스스로 밀고 열었다.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이야기 했다가 되레 명예훼손으로 역고소 당한 최영미 시인은 두번째로 무대에 올라 “이 판결을 지지할 수 없다”며 “김지은씨는 진술을 번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희정은 비서실을 통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했다 이후 합의에 의한 관계는 아니었다고 했다. 또 소송이 시작되니까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말했다. 두번이나 진술을 번복한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어야 하냐”고 되물었다. 최시인은 8살에 어머니의 남자친구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당했던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의 시 ‘그래도 일어서리라’를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