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책 '지중화'···동시다발적 공사, 긴 복구 기간 '한계'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의 지붕, 오래된 슈퍼간판, 굵고 가는 전선이 뒤엉키면서 조각난 회색 하늘. 폭염이 한 풀 꺾인 8월 30일 오후, 대전시 동구 가양동의 한 주택가 골목의 모습이다.
이처럼 뒤엉킨 전선들로 동네의 미관이 저해되는 광경은 대전시 중구와 동구 등 원도심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정비되지 못한 거주 환경과 정체돼 있는 도시 이미지를 주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욱 크다.
'전선 거미줄'은 1990년대 중반 종합유선방송 개시된 이후 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 사용이 급증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퍼졌다. 1999년 정보통신선을 한전 전봇대에 걸 수 있도록 허가가 난 뒤로는 기존 전선에 각종 통신선과 케이블 TV선과 장비가 함께 매달리게 된다.
이 골목에서 자영업을 운영 중인 주민 A씨는 “여러 전선들이 복잡하고 지저분하게 연결돼 있어 지나다닐 때마다 보기가 매우 거슬린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대전시 도시경관과 관계자도 “복잡하게 엉킨 전선들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전국적으로 공통된 점”이라며 “국토부나 정부차원에서 이를 정비하고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공감했다.
문제는 뒤엉킨 전선이 도시 미관을 해치는데 국한되지 않고 화재사고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올해 대전서 전선 발화사고 8건···우천 시에만 3건

대전시 소방본부에 따르면 올해 발생한 총 826건의 화재사고(8월 30일 기준) 중 전기적 요인에 따른 사고는 234건(28.3%)으로 요인별로는 두 번째로 많았다.
이 중 전신주·건물옥상·건물사이 등 전선의 누전이나 합선으로 발생한 사례는 8건에 달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총 900여만 원의 물적 피해를 냈다. 수치로만 보면 위험성이 크지 않게 보이지만, 원도심 지역 대부분이 정비되지 않은 전선 거미줄에 노출돼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언제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이례적으로 대전지역에 집중호우 시에는 위험성이 더욱 높아진다.
실제 호우경보가 발령됐던 지난달 26일, 중구 은행동에서는 지중변압기 저압부 내부 전기배선이 끊어지고, 건물 사이 전선이 지중에서 연결되는 지점에 빗물이 유입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또 27일에는 대덕구 덕암동에서 전신주 변압기에서 발생한 불로 인근 건물로 연결된 전선 5m가 불에 타는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까지 불이 옮겨갔을 경우 자칫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은행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배모(69)씨는 "밤 10시 30분께 당시 비가 엄청나게 오고 있었는데, 밖에서 수상한 소리를 듣고 나가서 화재를 발견하고 119에 신고했다"며 "국과수로부터 화재 원인을 기다리는 중이긴 하지만, 뒤엉켜 있는 노후된 전선에서 언제 또 화재가 일어날지 불안하다"고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옆 건물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박모(53)씨도 "직접 화재를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비가 왔을 때 이런 사고가 또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미줄 전선 덩치 키우는 주범 '폐선'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거미줄 전선은 덩치를 키우고 있다. 여기에는 통신선으로 쓰였던 폐선이 한 몫을 한다. 거주자가 이사를 가는 등 가입을 해지하게 되면 폐선이 되는데, 통신사에서 이를 제대로 철거하지 않고 연결만 끊은 채 남겨두는 경우가 상당하다.
한국전력(이하 한전)에 따르면, 119나 한국전력으로 폐선 신고가 접수되면 한국전력 배선팀이 현장을 방문해 선을 직접 제거하거나 해당 통신사를 불러 조치토록 하고 있다. 거주민이 먼저 민원을 접수해야 조치가 되는 시스템이다.
한 통신사 인터넷 설치기사는 "사용자가 (폐선 제거를) 요청해야만 현장에 나가 조치를 해주고 있다"며 "한전을 비롯한 타 통신사들과 연계해 폐선을 철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련 법령은 따로 없다"고 말했다.
이 폐선들이 더해지면 거미줄 전선은 전기사고 외의 안전사고에도 큰 위협요인이 된다. 지나가던 트럭이 폐선에 엉켜 전봇대가 넘어지고, 차량통행에 방해가 돼 접촉사고 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동네에 위급한 화재라도 발생했을 때는, 신속한 화재진압과 구조를 위해 1분 1초가 아까운 절제절명의 순간에 소방차 진입을 제한하는 장애요인이 된다. 일부 지역의 경우, 노후된 전선이 지면과 불과 2m 높이 밖에 안 되는 위치까지 늘어진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대전시 소방청 관계자는 “전선이 심하게 얽혀있거나 지면 가까이까지 늘어져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그런 현장에 도착할 경우, 사다리를 펴는 공간과 각도 등을 확보하기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땅 속에 묻는 '지중화'…막대한 비용 소요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까. 전봇대를 철거하고 전선과 통신선 등을 지하에 묻는 지중화(地中化)가 하나의 처방이다. 신도시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전선이 지중으로 설치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2년 7월 출범한 세종시(조치원 지역 제외)에는 전봇대가 없다. 전선이 100% 지중화 돼 있다.
하지만 기존에 설치된 전선을 지중화 하는 건 쉽지 않다.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전 대전세종충남지역본부(이하 대전본부)에 따르면 전선을 땅 속에 매설하는 데는 1㎞당 30억 원 정도가 든다.
또 전선과 통신선은 지하에 매설하지만 고압전기를 220V로 변환하는 변압기나 전류 차단 개폐기는 지상에 설치해야 한다. 그만큼의 지상 면적을 확보해야 한다. 한 번 고장 나면 복구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에 가깝기 때문에 단계적인 지중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지자체와 한국전력의 한 해 예산만으로는 대전시 1개 구에서 복수의 지역에 동시에 지중화 사업을 실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급한 곳을 중심으로 우선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동구와 함께 가오동에서 산내로 넘어가는 방면 도로에 지중화 작업을 마쳤다"며 "1년에 한 번 지자체로부터 지중화사업 신청을 받아 내부심의를 거쳐 시·자치구와 한전이 설치비용을 1대1로 부담해 사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