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피해자의 행동이 여러가지인 만큼 ‘피해자의 일관성있는 진술을 깎아 내릴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는 3일 강제추행·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진 모 갤러리 대표 A 씨에 대해 무죄로 본 원심을 깨고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 법정구속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가 피해자 김지은 씨의 피해 전후 행동을 근거로 김 씨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과 180도 대비된다.
A 씨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피해자 B 씨가 추행을 당한 뒤 즉각 항의하지 않았고 A 씨와 헤어진 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을 무죄 근거로 들었다.
![서울중앙지법 전경[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9/6494_9020_741.jpg)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는 경우 객관적으로 신빙성이 없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는 한 (피해자 진술을) 함부로 배척해선 안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또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 피해자가 겪을지 모를 불이익 등을 고려해보면 추행 이후 B 씨가 항의하지 않았다는 태도는 피고인의 행동이 추행에 해당하는지와 관련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해석했다.
재판부는 문자메시지 발송과 관련해서도 “성범죄 피해자의 행동방식은 피해 당시 상황이나 피해자의 처지, 피고인과의 관계, 피해자의 성격적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진술의 신빙성을 깎아내릴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봤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나왔다. 지난달 말 평택지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된 조기흥 전 평택대 총장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조 전 총장은 성추행 사실이 없으며 설사 있었다 해도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추행당한 뒤 타인에게 피고인을 칭찬한 사실이 있지만, 이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고통을 떨치기 위해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애쓴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비동의 강간죄 입법 형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09/6494_9022_1314.jpg)
서울중앙지법과 평택지원의 이 두 판결은 ‘피해자다움’이라는 신화를 배격하고, 권력형 성범죄를 제재하려는 입법 취지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런 가운데 안 전 지사 사건 항소심을 맡게 될 재판부도 왜곡된 통념이나 가치판단에서 탈피해 법과 증거에 따라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한편,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3일 '거부 의사에 반하는 강간죄' 도입을 골자로 하는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성적 자기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동의하지 않는 성관계도 강간의 하나로 처벌토록 했다.
법원은 그동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저항한 경우에만 성폭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왔다.
이 대표는 국회 정론관에서 법안발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어 "동의가 없다면 성관계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사회 상식이 돼야 한다"면서 "이 법안은 노회찬 전 원내대표가 발의를 준비해온 법안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