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 자모(alphabet)의 필기체 쓰기가 부활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했다. 반갑고도 놀라웠다.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손 글씨 쓰기 소식이기 때문이다. 미국 신문 워싱턴 포스트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미국 동부에 있는 뉴잉글랜드(New England) 6개 주 가운데 하나인 코네티컷(Connecticut)주 댄버리라는 곳에 있는 역사박물관이 최근 필기체 쓰기 여름 캠프 개최를 보도했더니 학부모들과 어린이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미국만이 아니고 영국에서도 성행 중이란다. 환영해 마지않는 행사이다.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이 자꾸만 줄어드는 추세에 손 글씨 쓰기가 부활한 소식은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그동안 산업화 사회가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어 기계만능주의에 희열을 맛보면서 유토피아 세상을 구가해 왔다. 글 쓰는 기계인 타자기(typewriter)의 발명으로 손 글씨, 즉 펜글씨가 천대를 받았다. 빠르고 깨끗하게 글씨를 찍어내는 타이프라이터의 위력은 금세 인간의 손끝을 무디게 만들었다. 잉크와 철필이 밀려나면서 학교에서 연필마저 내동댕이쳐지는 불운을 맞았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편하게 도와줬다.
이 위대한 발명품 타자기에 사로잡힌 미국인들은 아주 편리한 문화생활을 영위하는 행복을 만끽했다. 그런 행운은 학생이나 성인이나 손 글씨를 마다해서 대학생의 노트북은 벌레가 그려 놓은 궤적처럼 글씨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럴 때 우리는 글씨 재주 좋은 면서기가 엄청난 대접을 받았다. 모든 문서가 그의 손 글씨로 기록되었으니 문맹이 많았던 시절에 그의 파워는 대단했다. 그래서 면서기의 달필을 부러워하며 연필 심지가 부러질 만큼 힘들여 글씨공부를 해왔다. 미국학생들에 비해 우리 학생들의 손 글씨가 훨씬 예쁘고 똑바르고 정갈했다.
그러다 쾌속 질주하는 기계문명은 드디어 아나로그(analog)를 뒷전으로 물리치고 디지털세대를 열었다. 타자기는 물 건너간 고물이 되고 컴퓨터가 득세를 했다. 내 경우에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에 최신형 전자동 타자기를 구입해 한동안 사용했지만 지금은 무용지물 신세가 되어 서재 귀퉁이에 처박혀 있다. 그런 타자기의 불행이 행여 손 글씨 쓰기를 재현하는 은혜라도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컴퓨터의 만능재주에 그냥 허물어져 만사휴의(萬事休矣)가 돼버렸으니 그 운명 일러 무삼하리오. 그런데 갑자기 영미국에서 손 글씨 쓰기 운동이 일어났다니 괴이(怪異)타 할꺼나.
손으로 글씨를 쓰는 일은 어쩌면 귀찮고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기계에 비해 더디고 부정확하고 불충실할 수 있다. 허나 손을 움직여 글씨 쓰기를 하면 타자기나 컴퓨터를 두드려 쓰는 것 보다 뇌의 활동에 주는 영향이 훨씬 크다. 치매 예방이나 치료에 손놀림 운동을 권장하는 이유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화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은 이른바 육필 글씨를 외면하기 일쑤이다. 그러다보니 편지쓰기가 줄어 길거리 우체통을 구경하기 어렵다. 새해맞이 인사로 보내던 연하장이라는 것을 받아보고 써 본 적이 까마득하다. 그래 인정까지 메말랐잖은가.
돌이켜 보건데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배우기 시작한 영어공부에 억눌렸던 시간이 매우 지루하고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 지금도 우리의 영어교육이 전근대적 방식을 탈피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으로 보이는데 내가 겪은 영어공부는 너무나 무지막지(無知莫知)한 것이었다. 우선 영어독본(English Reader)이 문어체 일변도이다 싶이 어렵고 재미가 없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영작문이라는 괴팍한 교습이 필수였다. 읽고 뜻을 풀어 익히기도 어려운데 영어로 문장을 써보라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러웠다. 천자문 외우기도 전에 과거시험 보라는 식이다.
거기에 발음기호라는 걸 배워야 한다. 독본을 읽기도 쉽지 않은데 영어 낱말의 발음을 일러준다는 글자를 따로 배운다. 독본 글씨와 비슷한 게 있는가 하면 웬 쇠꼬챙이 같은 글자가 섞여 있어 마냥 헷갈린다. 그나마 우리말 우리 글씨처럼 하나하나 꼬박꼬박 소리를 내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글자는 소리를 내지 않아야하고 또 어떤 건 된소리로 읽어야 하는가 하면 길게 느려 빠지게 소리를 끌어가는 것도 있고 애슨트라는 것도 따져가며 읽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러니 영어시간은 애당초 따분한 과목으로 치부하고 마는 학생이 늘어났다.
그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 게 영어공부였다. 펜맨십(penmanship)이란 게 또 성가셨다. 이게 바로 손 글씨 쓰기 학습이다. 영어필기체를 쓰고 또 써야했다. 그래도 이건 그런대로 재미나기도 했다. 처음에 동그라미를 왼쪽에서부터 시작해 쭉 이어가며 연습한다. 쪽 고르게 그려나가야 선생님의 알밤을 이마에 맞지 않는다. 그런 과정을 합격한 다음에야 알파벳을 펜맨십 연습장에서 써보게 된다. 나는 이 과정을 좋아했다. 인쇄체의 무미건조한 시각 보다 훨씬 수려하고 얼핏 예술성이 있는 듯해서 그랬다.
아직도 서신왕래가 계속되고 있는 미국 대학 모교의 전 외국인상담실장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열심히 익혔던 영어필기체(스펜서체)보다 더 멋스럽고 아담하게 글씨를 써 보낸다. 편지를 받을 때마다 신기하게 여겨지고 심미적인 감상을 한다. 아무리 기계가 편의적 혜택을 준다 해도 손 글씨의 매력은 이길 수 없다. 과거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니스트가 어느 날 갑자기 원고지 대신 컴퓨터로 글을 쓰겠다고 해서 내심 거부감을 가졌었지만 이제 나 자신도 컴퓨터로 이 글을 쓰고 있다. 인생무상이 아니라 원고지 무상이 된 셈이다. 누렇게 바랜 원고지 뭉치가 눈을 흘기는 것 같다.
모든 게 생멸변전(生滅變轉)한다는 불가의 법언이 아니라도 간악한 인간의 성정은 뭔가 자꾸만 바뀌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도 억세게 요란을 떨던 크리스마스 이브가 시들해지고 초코릿 장사꾼들이 떠들어 대던 바렌타인즈 데이가 잊혀져가고 다가올 빼뻬로 데이도 숨넘어갈 정도로 젊은 연인들을 놀려대지만 언제 시들해질지 모른다. 그렇듯이 컴퓨터의 마력이 언제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하지만 손으로 글씨를 쓰는 작업은 언제든 쉽고도 간섭 없는 기계나 매한가지일지니 모처럼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손 글씨 편지 한 장 써 보내는 정성을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