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용 충청헤럴드 대표이사.발행인(전 대전일보 대표이사.발행인)]](/news/photo/201810/7496_10391_4642.jpg)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5.9 대선 다음 날 곧바로 취임했다. 초 여름밤, 개표 뒤에 당선이 확정되자 마자 우린 새 대통령을 맞았다. 두 달전 현직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탄핵된 후 헌정중단의 우려를 씻어줬다. 약식으로 진행된 취임식였지만, 국민의 기대를 부풀게 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명문이었다. 그는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다”고 시작했다. 그의 취임사 곳곳이 감동적이었다. 국민적 분노와 울분, 개탄에 마음조린 국민들에게 희망의 대목들이다. 그때 “이번 선거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우리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함께 이끌어 가야 할 동반자다.”, “저는 오늘부터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저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 한 분 한 분도 저의 국민이고, 우리의 국민으로 섬기겠다.”고 했다.
-감동과 호응,그 찬사받은 취임사의 기억들.
그러면서 “저는 감히 약속드린다. 2017년 5월 10일, 이날은 진정한 국민통합이 시작되는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분열과 갈등의 정치도 바꾸겠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끝나야 한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며 덧붙였다. 참석자는 다음 대목을 듣고 더 크게 박수를 쳤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 권력기관은 정치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겠다.”, “전국적으로 고르게 인사를 등용하겠다.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시원 시원했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다.”,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다. 과정은 공정할 것이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소외된 국민이 없도록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항상 살피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이 취임한 지 18개월이다. 취임사를 읽은지 이제 내일 모레면 19월 째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이 밝힌 그 감동적인 명문들은 다 이뤄졌을까. 취임사처럼 의제들이 제대로 추진 되고 있을까. 박수를 받은 통합과 공존의 대한민국이 됐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여느 정권과 달리 인수위원회가 없이 집권했다. 그런데도 국민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늘 단상(壇上)아래에 있던 단하의 서민들과의 눈높이를 하려는 노력에 감동도 했다. 권력기관들의 권위적인 틀을 깨기 위한 조치들도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그 취임사를 떠올리면 훌륭한 말들이 지켜지고 있는 지 궁금하다. 국민통합만 해도 그렇다. 가진 자나 덜 가진 자, 높은 자리에 있는 자나 그렇지 않은 자, 권력자나 비권력자,특정지역 사람과 다른 사람, 진보나 보수, 여야가 상대를 존중하며 살아가느냔 말이다,
또한 권력기관들도 독립했을까. 아니 그릇된 관행이나, 한 쪽에 치우친 권력, 그 업무들은 취임사처럼 바로 잡혔을지도 의문이다. 검경수사권 독립이라든지, 공수처 신설이라든지, 감사원의 독립이라든지 정권만 바뀌었지 그대로다.
어느 언론인 후배이자, 전직 의원의 말마 따나 야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대접하고 있을까. 문 대통령은 취임 초 여야간 ‘협치(協治)’를 약속했다. 그 약속은 한달도 지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갔다.
-인수위 없는 출범, 국민통합. 협치.탕평인사 약속은.
그 ‘협치 파기’의 책임은 야당일 수도 있다. 약속은 상대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 이행은 더 가진 자가 더 내놔야 이뤄진다. 더 가진 자가 더 내놓는 것이 덜 가진자를 포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청와대나 여당은 권력을 더 가진 자니, 발목을 잡는 다고 할게 아니라 더 내놔야 약속이 지켜진다.
또 하나. 문 대통령은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인재가 고르게 등용하고 있을까. 아니 모든 이에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되가고 있는지 의아하다. 문 대통령에게 이를 묻는다면 어떻게 답변할 지 궁금하다.
29일 마감된 올해 국감에서 각 상임위별로 지적된 ‘낙하산 인사’가 그것이다. 시중여론에 ‘캠코더 인사’라는 신조어다. 대선 캠프사람, 코드보은인사,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를 공직에 앉힌 것을 말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인사 못지 않다.
과거 이명박(MB), 박근혜 정권은 이랬다. MB 정부 낙하산인사를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이라고 했다. MB 취임 첫 해 임명된 공공기관장 102명 중 절반이 넘는 58명이 ‘고소영’ 출신이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33개 공공기관 가운데 31개 기관장이 교체되거나 공석이 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낙하산 인사는 ‘서수남’(서울대-교수-영남) 인사라고 불렀다. MB정부에 이어 같은 여당내 후보로 당선된 박근혜 전 대통령. 그는 “전문성 없는 인사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모두 허언(虛言)였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첫해 공공기관장을 무려 125명 교체, 이 중 무려는 78명가량이 ‘서수남’낙하산 인사였다.
문재인정부가 어떻길래 ‘캠코더’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을 받을까? 어떻길래 ‘내로남불’이란 공격에 직면해있는가.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강부자 인사’, 박근혜 정권의 ‘깜깜이 인사’를 비판했던 현 정권이 왜 인사적폐 논란에 휩싸였나. 그들은 이 비판이 부메랑이 됐다.
야당의원들이 국감에서 밝힌 현 정부 출범후 임명된 공공기관 최고위 임원 364명의 44%인 161명(기관장 94명, 감사 67명)이 낙하산인사였다. 국회 상임위별로 소관 공공기관 340곳의 신규 상임ㆍ비상임 이사 1,722명을 전수조사한 결과다. 정무위 소관인 산업은행ㆍ중소기업은행ㆍ신용보증기관ㆍ예금보험공사등 금융공기업의 경우 새로 임명된 35명의 임원 가운데 57%인 20명이 낙하산 인사로 분류됐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임명한 경우, 공공기관 임원 178명 중 60.1%인 107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5.0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거나 문 후보 지지를 선언한 인사다. 또는 여당과 가까운 시민단체·지역·노동계 출신 인사다.
-'캠코더' 낙하산 인사...오히려 보수정권보다 많아.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홍역을 치른 문화예술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광부와 문화재청 산하 기관 임원 22명 중 16명이 캠코더 인사로 지목됐다. 코레일과 5개 자회사도 마찬가지다. 임원 37명 중 13명이 대선 캠프, 코드 인사, 민주당 출신이다. 비율로는 35%로, 이는 국토부 산하기관의 평균 28%(129명 중 36명), 전체 공공기관 평균 22%(1651명 중 365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문제는 촛불혁명, 촛불정신으로 섰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인사에 낙하산이 횡행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들의 전문성과 리더십,도덕성을 믿을 수 없기에 말이다. 캠코더 인사의 폐해는 많다. 고용세습 등 조직내 비리를 제대로 감시할 수 없고 온정주의ㆍ연고주의가 판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대통령은 그래서 낙하산 인사를 않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했다. 취임사는 물론 지난해 7월19일 여야 4당대표의 청와대 상춘제회동에서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공기업 등 남은 공공기관 인사에 있어서 부적격자 인사,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23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 때도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반칙과 특권의 상징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이번 기회에 채용비리 등 반칙과 특권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겠다”며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근절’ 의지를 드러냈다.
뿐 만 아니다. 문 대통령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투명한, 공정한 인사를 밝혔다. 그 때 "탕평인사 그리고 통합적 인사다 라고 긍정적인 평가들을 국민들이 내려주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사의 기조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을 약속드리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공직자 인선기준도 제시했다. 이른바 5대 비리(위장 전입,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병역 회피)에 해당하는 사람을 고위 공직자에 등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조각부터 공염불이 됐다.
대전에서 지난 24일 코레일 국감때는 오영식 코레일사장이 국회의원때 낙하산인사를 비판하는 녹음파일도 등장했다. 바른미래당 이학재의원(인천서구갑)이 오 사장의 ‘낙하산 비판’녹음을 틀었다.
녹음파일에는 “낙하산 인사는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피해가 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런 관행을 끊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의원은 “오 사장이 박근혜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그 피해가 다 국민에게 간다"고 말했다. 남이 하면 나쁜 것이고, 본인이 하면 정당성이 있는 것이냐”고 따졌다.
오 사장은 “아, 이게 지금 제 목소리였습니까. ”라며 “제가 들어도 제 목소리는 잘 모르겠다. (들으면서) 말은 참 잘한다고 생각은 했는데…”라고 농담 섞인 답변을 내놨다. 그러자 야당의원들이 나서 국감에 임하는 태도가 진지하지 않다고 질책했다.
-초심잃지 않으려면, 다시 취임사를 읽어야.
오 사장은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는 지양해야 한다는데 저도 동의한다”고했다. 그러나 야당의원이 오의원도 낙하산인사라고 추궁하자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는 “다만 무조건적 낙하산 인사는 나쁘다는 식의 이분법적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2011년 더불어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진표 원내 대표가 당시 MB정부의 낙하산인사를 강경하게 대응했다. 같은당 민병두의원은 지난 2014년 박근혜정부의 낙하산인사 백서를 냈을 정도 였다.
낙하산 인사를 청산해야 할 적폐로 보고 있는 문재인 정부, 문 정부 만큼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지금까지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야당들의 낙하산인사 지적과 언론들의 보도에도 소용이 없다.
최근 조명래 환경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이 그것이다. 바로 보름전 유은혜 사회부총리겸 교육부장관의 인선이 큰 파문을 일으킨 뒤 또 조후보자를 내정했다. 그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과 증여세 납부 고의 지연, 다운계약서 작성 등 나올만한 의혹은 모두 쏟아져 나왔다.
탈법을 이처럼 쉽게 하는 인물이라면 고위공직자로서 영(令)을 세워 국가 중요 정책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의심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그는 부동산 전문가로서 개발 위주 정책과 투기를 줄기차게 비판해 왔다. 그런 그가 정작 뒤로는 부동산 투기에 나선 정황까지 불거졌다. 말과 행동이 따로인 이중적 행태가 아닌가.
문 대통령과 여당에서는 억울할지 모른다. 현 정부와 국정운영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이 내정되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개혁에 적임자라면 이해가 된다. 낙하산이라고 다 같은 낙하산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여당 측 인사 또는 대선 캠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낙하산의 연줄을 탄다는 것은 어불성성이다. 전문성이나 역량에 대한 검증없이 보은 인사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러나 최소한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 만큼은 철저히 자격을 검증해서 사람을 써야한다.
나랏꼴을 엉터리로 만든 보수 정권에게 낙하산 인사 개선을 촉구했던 현 정권이다. 하지만 집권과 함께 논공행상 하듯, 되레 더 많은 낙하산 인사를 일삼은 셈이다. 재차 말하지만 국정철학을 함께하고, '문재인 호' 개혁을 위해 전문성을 갖춘 외부 인사가 필요한 곳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다.
낙하산 인사를 적폐라던 문재인 정부. 그러나 역대 정권의 적폐를 반복하는 일을 현 정부가 하고 있는게 아닌가. 청산되어야 할 적폐라며 정권 때마다 들고 나왔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다시 돌아봐야한다. 변명과 핑계는 안된다.
문 대통령에게 취임 때 초심에서 나온 약속들이 얼마나 이행되는지 묻고 싶다. 국민통합, 협치정치, 공정한 인사, 이 세가지가 어떻게 추진되는 지 듣고 싶은 것이다. 만의하나 1년 7개월 전 취임사에서 밝힌 국민에 대한 약속이 엇나갔다면 각오를 새롭게해야한다. 이를 위해선 초심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러려면 취임사를 다시 읽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