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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충남공주 윤석금회장,6년만에 코웨이 다시 품다.
[휴먼스토리]충남공주 윤석금회장,6년만에 코웨이 다시 품다.
  • [충청헤럴드=신수용 대기자]
  • 승인 2018.10.29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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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의 대표적인 기업인 윤석금(73). 그가 온갖 어려움과 수모를 헤치고  6년만에 잃었던 원조 정수기업체 코웨이(전 웅진코웨이)를 되찾았다.

업계에서 자금난으로 되찾기는 허망한 꿈이라고 했지만, 그는 그간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꿈을 이뤘다.

항간의 몹쓸 소문과 차가운 시선, 그리고 말못할 시련을 다 이기고 한국의 렌탈사업의 효시라는 코웨이를 품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에서 코웨이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에서 코웨이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웅진그룹 윤회장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플레이스에서 코웨이 인수 관련 기자간담회를 통해 "코웨이 매각 5년 7개월 만에 다시 사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웅진씽크빅은 사업 다각화를 위해 코웨이 주식회사의 주식 1천635만8천712주(22.17%)를 1조6천849억원에 양수한다고 이날 공시했다.

웅진-스틱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MBK파트너스와 주식매매계약(SPA)를 체결했다.

주당 인수 가격은 10만3천원으로 매각 당시 5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MBK는 2013년 1월 코웨이 지분 30%와 경영권을 1조1천억원에 인수하고서 두 차례의 블록딜과 자본재조정, 배당과 이번 지분 매각까지 합쳐 모두 1조원가량의 투자이익을 거두게 됐다. 추가로 올해 경영에 따른 배당도 받는다.   

자료-웅진그룹[도표=연합뉴스]
자료-웅진그룹[도표=연합뉴스]

코웨이(옛 웅진코웨이)는 1989년 윤석금 웅진 회장이 설립한 생활가전기업으로 국제통화기금(IMF) 부도 위기 때 윤 회장이 직접 대표이사로 경영해 키웠다.

렌털이라는 새로운 사업시장을 만들고 코디서비스를 론칭했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비데, 안마의자, 매트리스 등으로 시장을 확대해 25년간 업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다 그룹의 경영 위기로 2013년 1월 사모펀드인 MBK에 넘어갔다.

웅진그룹이 다시 코웨이를 인수하면서 자산총계가 2조5천억원에서 4조5천억원으로 늘어난다

 ▶윤석금은 누구=충남 공주시 의당인 그는 1960년대 말 군 제대후 창경원에서 1회용 즉석 촬영사를 시작으로 1971년 부산에서 브리테니카 백과사전 외판원을 거쳐 지금의 자리로 오른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충청출신 재경 명사모임인 백소회 임덕규 총무(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은 <충청헤럴드>와의 통화에서 윤 회장에 대해 "그는 살아있는 세일즈맨의 성공신화, 불굴의 한국인이자 충청인"이라면서 "많은 나라 대통령과 수상, 총리, 재벌총수를 만나봤지만 분명한 경영철학과 끈질긴 집념이 있는 글로벌 리더"라고 평가했다.

재기에 성공한 윤석금 웅진그룹회장[사진=충청헤럴드DB]
재기에 성공한 윤석금 웅진그룹회장[사진=충청헤럴드DB]

그는 브리테니카 입사 한달 만에 국내판매 1위, 1년 만에 세계 54개국 세일즈맨 중 판매왕을 차지하며 출판 영업계의 스타가 되었다.

지난 1980년  35세가 되던 해 직원 7명과 자본금 7,000만원으로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씨크빅 전신)을 설립하면서 경영자로 직접 나섰다.

신군부에서 그해  7월 ‘과외 금지법’이 시행되자 당시 과외금지로 직접 과외가 힘들어 진다는 점에서 착안해 과외 강사들의 수업 내용을 녹음해 ‘헤임고교학습’을 만들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어 우리문화를 담은 ‘어린이마을’, 5,000만권이 판매를 기록한 ‘웅진위인전기’, 국내 최초로 우리의 자연을 기록한 ‘한국자연탐험’, 회원제 학습지 ‘웅진아이큐’ 등이 잇따라 성공하며 국내 출판 시장 1위 기업으로 등극 시켰다.

윤석금 회장의 도전은 계속됐다. 1987년 12월 ‘웅진식품’을 설립했다. 이듬해 11월에는 ‘코리아나화장품’을 설립하고 화장품 방문판매를 도입하여 3년만에 업계 2위로 만들었다.

이어 1989년에는 웅진코웨이의 전신인 ‘한국코웨이’를 설립해 정수기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때부터 사세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990년 대 초 '월간 웅진여성'을 창간해 운영하다가, 김영삼(YS)전 대통령의 최측근인사에 대해 AIDS(후천성면역결핍증)감염오보로 파장을 빚자 사회적 책임을 지겠다며 폐간하기도 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로 국내 소비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정수기 판매가 줄자,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직접 웅진코웨이 대표이사로 내려가 경영하는 감동을 줬다.

그때  정수기를 직접 판매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렌탈서비스’와 ‘방문 관리 시스템’(코디제도, Coway Lady)이라는 렌탈비즈니스 시장을 국내에 새로이 도입한 것이다.

부담없는 가격에 생활가전을 사용하고 싶었던 국내 시장의 니즈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이 사업은 10년 만에 가입자 수 110만 명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우는 등 큰 성공을 거두게 됐다. 
웅진식품역시  주식인 쌀을 이용한 '아침햇살'이라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면서 연간 1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우리의 마실 거리를 상품화 해 연속 히트를 시키며 당시 음료업계 3위의 회사로 성장시켰다.

 이후 새한(현 도레이케미칼)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2011년에는 32개 계열사를 두고 연 매출 6조원의 국내 30위 권 대기업으로 도약했다. 

윤회장은 2012년까지  웅진을 생활환경가전, 건설레저, 식품, 금융, 소재, 태양광 사업까지 15개 계열사에 매출 6조원대의 그룹으로 성장시키며 승승장구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극동건설과 새한(현 웅진케미칼), 타이거월드(현 웅진플레이도시), 서울저축은행도 그룹 안에 편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극동건설등이 그룹의 재무상황을 악화시키면서 2012년 10월 지주사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윤 회장 본인도 1,000억원대 배임 행위로 회사에 피해를 주고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등 시련을 겪었다.

다행히사법부는 윤석금 회장이 본인의 사재 1,800여억원을 서울저축은행 등에 출연해 서민과 계열사의 피해를 줄인 점, 횡령, 세금포탈, 차명주식 등 악성범죄와 사익추구를 위한 개인비리가 없는 점 등을 인정했다.

하지만 서울저축은행 위기에 계열사가 자금을 투자한 것이 배임으로 판정 났고 법정 구속 면했지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웅진은 주력 계열사인 웅진코웨이, 웅진식품, 웅진케미칼 등을 매각해 채권자의 현금 변제율을 최대한 높였고, 1년 4개월만에 기업회생절차를 종료하는 기록을 세웠다.

2년여 전인 지난 2016년 6월에는 기업회생절차 종료 2년만에 법정관리 채무의 98%를 6년 앞당겨 조기 변제하는 등 윤 회장과 웅진그룹 임직원들이 합심해 회사의 위기를 적극적으로 극복했다. 
올 연초에는 코웨이와의 경업금지가 해지되자 웅진렌탈을 론칭하며, 국내 정수기 시장에 재 진출했다.

윤 회장은 코웨이를 떠나 보낸지 만 6년만에 재 인수를 진행한다.  '웅진씽크빅-코웨이' 합산 3만 3,000명의 국내 1위 방문판매 신화속에 재기를 이뤄냈다.

윤 회장측 한 관계자는 이날 <충청헤럴드>와의 통화에서 "6년간 뼈아픈 시련과 경험을 얻었다"면서 "누구나 다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윤 회장의 뛰어난 경영철학과 멀리 보는 시야, 어떤 어려움도 조급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고 부단한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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