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충남논산에 사는 성폭행 피해 부부 자살사건의 가해자에게 1. 2심에서 내린 무죄가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대법원은 이른바 ‘충남 논산 성폭행 피해 부부 동반자살’[본보 3월3일, 4일, 22일,4월4일 보도] 사건에 가해자로 의심받는 이에대해 유죄취지로 대전고법에서 재판을 다시하라는 것이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31일 강간·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B씨(38)의 상고심에서 강간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사진은 충남논산 성폭행피해자 부부자살사건을 상세히 보도한 충청헤럴드 기사[사진=충청헤럴드 켑처]](/news/photo/201810/7569_10488_5646.jpg)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기에 부족하거나 양립 가능한 사정이 있는데도 피해자 진술을 의심해 그 증명력을 배척하고 무죄로 본 원심 판단에는 법리를 오해하고 사실을 오인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야경[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켑처]](/news/photo/201810/7569_10480_2614.jpg)
‘충남 논산 성폭행 피해 부부 동반자살’ 사건의 공소내용은 이렇다.충남 논산의 폭력조직 조직원인 B씨는 자신과 가까웠던 A씨가 해외출장을 가자 지난해 4월 A씨의 아내를 불러내 가족에게 위해를 가할 것처럼 협박하고 강간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사건 전후 A씨의 아내 태도를 이유로 피해자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 강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신 B씨가 폭력조직 후배들을 폭행한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구체적 협박 내용과 이를 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진술하지 않는다. 사건 전후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힌 피해자 모습도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불륜 사실이 발각될 것을 염려해 남편에게 허위로 피해를 말했을 여지도 있다”는 등의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 부부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지 4개월 뒤인 지난 3월 전북 무주의 한 캠핑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죽어서도 복수하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함께 목숨을 끊었다.결 이유를 밝혔다.
A씨 부부가 떠난 뒤 2심 재판부도 1심 판단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 대법정[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켑처]](/news/photo/201810/7569_10481_2717.jpg)
대법원은 31일 1.2심과 달랐다. 피해자의 피해 증언에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은 수사기관에서부터 제1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될 뿐만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며, 비합리적이라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 원심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이유도 피해자의 구체적인 상황이나 피고인 B씨와 남편 A씨의 관계 등에 비춰보면 반드시 배치된다거나 양립 불가능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원심이 피해자 진술 신빙성을 배척한 것은 성폭력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성인지 감수성’을 결여한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재판부는 사건 전후 피해자 모습에 대해서도 “B씨와 신체 접촉 없이 각자 떨어져 앞뒤로 걸어간 것뿐인데, 원심이 이를 두고 ‘피해자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이지 않고 나아가 폭행·협박 등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고 판단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성폭행 사건 심리의 원칙을 판시했다.
![대법원 1층 실내에 서있는 가인 김병로 선생의 조각상[사진= 대법원 홈페이지 켑처]](/news/photo/201810/7569_10482_2832.jpg)
대법원은 “우리 사회 가해자 중심의 문화 등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이어 “강간죄 성립을 위한 가해자의 폭행·협박 여부는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피해 당시 처했던 구체적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나중에 보니 피해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