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충남 보령에 사는 A씨(56)는 지난 해 2억원이 넘는 외제 수입차를 샀다가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서해안고속도로로 서울을 가다가 충남 당진을 지날 무렵 갑자기 엔진이 꺼졌다. 1차선을 달리던 중 이어서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수리센터에 연락해 고쳤지만 이후 보름 넘게 운전을 못했다.
맡긴 차를 정비업소에서 찾아 온 그 뒤 1주일 후에, 또 다시 대전에서 돌아 가다가 공주 인근에서 똑같은 고장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주유의 잘못으로 알았다. 차량 회사에서는 그저 대수롭지 않게 알려준 탓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7번 넘게 일어나자 회사에 알려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 당했다.
소비자단체등에 접수하고, 지역 방송에도 보도됐지만 아무런 조치를 받지 못했다.
A씨는 결국 이곳 저곳에서 부품을 갈아 가까스로 타고 다닌다. 그는 이 차를 보고 "저, 수입 고철덩어리를 어떻게 하지"라며 한숨만 쉰다.
#2. 대전의 B씨(41. 언론인)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고속도로는 물론 도로를 주행하면서 시속 90㎞만 높이면 자갈밭 구르는 굉음이 났다. 처음에 이 차의 기능이 그렇거나, 외제 엔진이라 그런 것인 줄 알았지만 직장동료의 같은 급 차를 타 보고는 하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차량 회사의 판매당당 직원에게 알렸지만 돌아온 답은 점검해 보겠다 것 이었다. 다른 차 교환이나 환불은 즉각 거절당했다.
A, B씨처럼 새 차를 구입한 뒤 차량의 고장과 불량으로 속을 태우는 일이 내년부터는 사라진다.
이처럼 차량 구입 소비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이른바 새로 산 자동차에서 반복적으로 고장이 발생하면 차를 교환·환불 받을 수 있는 일명 '레몬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소비자들이 자동차에 문제가 있을 경우 자동차 제조사와 직접 담판을 짓거나 민사 소송 또는 한국소비자원의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내년 1월부터 차량구입소비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이른바 새로 산 자동차에서 반복적으로 고장이 발생하면 차를 교환·환불받을 수 있는 일명 '레몬법'이 시행된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11/7804_10772_530.jpg)
12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이런 내용을 담은 '자동차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
법에 따라 해당되는 차량은 ▲인도된 지 1년 이내이며 ▲주행거리가 2만㎞를 넘지 않고 ▲새 차의 고장이 반복될 경우 자동차 제작사가 이를 교환 또는 환불해 주도록 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교환·환불 대상이 되는 차량은 원동기와 동력전달장치,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 주요 부위에서 똑같은 하자가 발생해 2번 이상 수리했는데도 문제가 또 발생한 경우다.
또한 ▲주요 부위가 아닌 구조와 장치에서 똑같은 하자가 4번 발생하거나 ▲주요 부위든 그렇지 않든, 1번만 수리했더라도 누적 수리 기간이 30일을 넘는다면 역시 교환·환불 대상이다.
레몬법은 또 '6개월 입증 전환 책임' 조항도 뒀다. 차량이 소유자에게 인도된 지 6개월 이내에 하자가 발견됐을 때 이는 당초부터 있었던 하자로 본다는 것이다.
법은 앞으로는 소비자가 하자가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동차 제조사가 하자가 없었음을 입증해야 하도록 했다.
이런 경우에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자동차 분야 전문가들(최대 50명)로 구성될 자동차안전심의위원회 (이하 자동차안전심의위)가 중재에 나서게 된다.
자동차안전심의위는 필요하면 자동차 제조사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성능시험을 통해 하자 유무를 밝혀낼 수 있다.
자동차안전심의위가 조사를 거쳐 내린 중재 판정은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다. 따라서 자동차 제조사가 교환·환불을 해주지 않을 경우 이를 강제 집행도 가능하다.
국토부는 "이를 주요 골자로 새로 시행되는 레몬법의 특징은 현행 제도보다 법적 구속력과 전문성이 크게 강화됐다"면서 "레몬법이 시행되면 자동차 소비자의 권익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지난 해 2월 부산 백양터널 한복판에서 고장 난 승용차를 처리하기 위해 경찰관 2명과 차주가 차량을 수백미터 밀고가 안전지대로 이동시키고 있다.[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11/7804_10773_589.jpg)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는 부품이 2만∼3만 개에 달하다 보니 일반 소비자는 차량의 하자 여부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며 "자동차안전심의위는 차량 전문가들로 구성돼 소비자와 제조사 간 이 같은 정보 비대칭을 해소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법 시행을 앞두고 자동차안전심의위의 구성 등 막판 실무 절차를 준비 중이다.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레몬법 시행에 대비해 준비에 나서고 있다.
레몬법이 시행되면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 '하자 발생 시 신차로 교환 또는 환불해준다'는 내용이 담긴 서면 계약서를 써야 하는 등 지금과는 절차도 다소 달라진다.
그러나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춰볼 때 레몬법이 시행돼도 여전히 소비자 권익 보호가 미흡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중재 절차를 밟는 것이 권고 사항이어서 강제성이 없고, 중재 결과에 대해서도 소비자가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경우 기존과 마찬가지로 소송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