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인권과 신상에 관한 보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자라면 초보 때부터 인권과 타인의 명예에 관한 사건사고 기사 등에서 귀가 따갑게 듣는 얘기다.
보도할 때는 당사자의 인권과 명예 손상이 없도록 해야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허위는 물론 편파, 왜곡, 과장, 축소보도는 지양되어야 하고 각 언론사 기자 윤리 강령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인권 침해나 명예 훼손을 당해 언론을 불신하고 있는 터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스캔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향후 진행될 재판부터 비공개로 진행해 혹시 언론보도를 통해 벌어질지 모를 인권 침해와 명예 훼손을 막아달라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가 뉴스가 되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미디어 오늘 켑처]](/news/photo/201811/8046_11147_4251.jpg)
여 수행비서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항소심이 21일 시작됐다. 그러나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이날 오전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언론이 2차 가해와 여론재판을 이끌고 1심 재판부가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판했다.
<미디어 오늘> 보도에 따르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피해자(정혜선 변호사)등 153개 단체가 꾸린 공대위가 기자회견에서 주장한 요지는 이렇다.
공대위는 1심 재판 때 언론 보도가 안 전 지사 측근의 피해자 음해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피해자 김지은씨 측 증언은 비공개로, 안 전 지사 측 증언은 공개로 진행된다는 비대칭 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것이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사진=연합뉴스]](/news/photo/201811/8046_11149_4836.jpg)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이 아무리 공정하게 보도하려 노력해도 이번 재판 보도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면서 "언론이 이 한계를 언급하지 않고 안 전 지사 측 증언만을 전했고, 국민은 편향된 정보를 받으면서도 주요 쟁점을 모두 아는 착각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안 전 지사 증인으로 출석한 후임 수행비서 어모씨는 포털사이트에 피해자를 비방하는 댓글을 1000여 개 달아 검찰에 넘겨졌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달 말 어씨 등 안 전 지사 측근 2명과 누리꾼 21명을 인터넷 명예훼손·모욕 등의 혐의로 검찰 송치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역시 “어씨는 피해자 비방글을 올리고도 당시 법정에서 증언했다. 피해자 비난과 음해가 증언의 옷을 입고 7번 발언됐다"고 말한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고 비판했다.
당시 언론은 어씨 발언을 ”안희정‧김지은 격의없이 대화, 깜짝 놀랐다”, “김지은, 안희정에 대거리하기도”, “안, 권위적인 사람 아냐” 등 제목으로 보도했다.
어씨는 현재 안희정계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진이다. 또 다른 측근 유모씨는 현직 인터넷협회 간부이며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며 피해자 비방글을 올려왔다.
김언경 처장은 “언론이 양측 공방을 선정적으로 받아써 2차 가해하려면 차라리 이 사안을 보도하지 않는 편이 사회적으로 유익하다”고 말했다.
![정혜선 피해자 변호인단 변호사가 21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의한 직장 성폭력 사건 2심 대응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미디어오늘 켑처]](/news/photo/201811/8046_11148_4650.jpg)
공대위는 1심 재판부가 언론의 2차 가해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도 꼬집었다.
당시 검찰과 피해자 지원 변호인단이 2차례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으나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조병구)는 피고인 공개 재판을 결정했다.
공대위는 “재판부가 피해자를 실시간으로 비난할 공적 환경을 조성했다. 모든 증인 심문이 다 끝난 7월 13일 저녁 늦게야 언론에 자제 요청했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2심 재판부가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선 피해자 변호인단 변호사는 “피해자 증언만 비공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피해자뿐 아니라 전체 재판 비공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단 단원들에게 상습 성폭력을 가한 혐의를 받는 연극 연출가 이윤택씨 재판은 ‘피해자 인적사항 노출 우려’를 이유로 공판준비기일과 보석신청 건 심문기일을 제외하고 모두 비공개로 이뤄졌다고 <미디어오늘>은 보도했다.
공대위는 “1심 재판부의 법리 오해와 사실 오인, 성 인지 감수성 부재 등으로 무죄 판결했다면 항소심 재판부는 정의로운 판결로 이를 바로잡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재판 일정은 이날 공판준비기일에 정해진다.
한편,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를 상대로 지난해 7월29일부터 올해 2월25일까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4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1회, 강제추행 5회를 저지른 혐의로 지난 4월 기소됐다. 1심은 “업무상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취지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